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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pr 24. 2016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

2012. 라오스 ::: 루앙프라방

#1.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 미니양


 버스는 밤새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주변이 밝아왔다. 해가 뜨고 있는 모양이다


 버스는 산길을 지나더니, 어느 삼거리 마을 중심에 정차했다. 이 곳에서 한참을 쉬어 갈 모양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마을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고래군은 밤새 불안한지 잠을 잘 못 이루는 것 같았는데, 어느 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곤히 잠든 고래군을 깨우지 않고 나 혼자 길을 나섰다. 하지만 버스가 언제 다시 떠날지 알 수 없었기에 마을 구경을 하면서도 계속 버스 쪽을 힐끔거릴 수 밖에 없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마을에서 돈도 얼마 가지지 않은 채 버스가 떠나버리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시장이 보였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있는 상점들은 모두 문을 연 상태였다. 과일도 팔고 맛있어 보이는 꼬치도 팔고, 다양한 먹거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버스가 떠나버릴까 불안한 마음에 마음껏 구경하긴 힘들었다. 결국 시장에서는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버스로 돌아가야 했다. 버스에 올랐지만 고래군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버스도 역시 떠날 줄을 몰랐다.


 심심한 기분에 다시 버스에서 내려 버스 주변을 서성였다. 그러다 언제 루앙프라방에 도착할지 알 수 없었기에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버스 생활(?)에 잔뜩 사다놨던 간식들이 동이 났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시원한 마일로 2개와 먼치킨과 닮은 빵을 샀다. 그리고 고래군을 깨워 간단하지만 든든한 아침을 함께 했다.








#2.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 고래군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무릎 뒤쪽 오금과 목덜미에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해가 뜨면서 버스 안이 더워지고 있는 것이다. 밤새 달려올 때는 몰랐는데, 에어컨은 꺼져있었던 것이다. 조금 달리던 버스가 다시 멈춰 섰다. 앞으로 얼마나 달려야 하는 걸까? 아까 마을에 멈췄을 때가 여덟 시쯤이었으니, 이제 곧 도착하는 걸까?더위를 이기지 못한 승객들은 버스가 멈추자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더위를 식혔다.


 이 길은 무엇인가 공사 중인 것인지 길가에 흙더미가 쌓여 있다. 산 중턱에 있는 길이었는데, 길의 왼편은 가파른 산이었고, 오른편 아래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남자 몇 명이 개울물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옷을 적시기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한 명이 멀미 때문인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편으로 가서 구토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크루 두 명이 개울에서 물을 떠서 버스에 채워넣고, 승객들은 뜨겁게 데워진 버스에 힘겹게 올라탔다. 그런데 닫혔던 뒷문이 버스가 출발하자 그 반동으로 왈칵 열려버렸다. 버스는 다시 멈추고 크루는 버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결국 그대로 출발했다. 버스 문은 덜렁거리다 다시 열리고, 결국 크루 한 명이 뒷문을 붙든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까 구토를 하던 중년 여성분이 뒷문 옆에 달린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구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젊은 여성 한 명이 들어가더니 구토를 한다. 그 다음에는 영어를 쓰던 커플 중 남자가 뒷문 계단에 걸터앉더니 화장실에 들어가 구토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자리는 뒷문 바로 건너편 자리이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누워있는 옆에 와서 구토를 하는 것이다. 인종과 성별, 국적을 떠나서 멀미할 때는 모두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하는 소리도 비슷하고, 향기도 비슷하다. 그리고 모두 내 옆에서 그런다.달리던 버스는 다시 물을 채우기 위해 멈췄다가 출발했다. 버스는 점점 데워지고 있었고, 승객들은 하나씩 우리의 옆에 와서 괴로운 소리를 태며 토했다.


 뒷문은 계속 덜컹거리면서 열려버렸는데, 그나마 달리는 중간에 뒷문이 열리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파른 산중턱에 난 길을 달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멈춰선 것이 몇 번째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쯤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바깥 바람을 숨쉬기 위해 멈춰선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신발을 뒷문 계단에 내려놓고 신다가, 뒷문이 접힐 때 굴러가는 롤러가 궤도에서 조금 어긋나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발로 콱콱 차서 제자리에 돌려놓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확실히 버스 안이 바깥보다 뜨겁다. 창문이라도 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슬리핑버스라서 그런지 창문을 열 수도 없다. 


루앙프라방에는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 다시 버스가 출발한다. 그런데 뒷문이 깔끔하게 닫혀 열리지 않는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뒷문 내가 고쳤어! 아까 롤러 어긋나있는 거 내가 똑바로 해놨는데 문 닫혔어!”“응 그래 잘했어. 그치만 오빠야 더운 것 좀 어떻게 해봐라.”“나는 더운 것도 더운 거지만, 이제 우리 옆에서 그만 토했으면 좋겠어.”“그건 그래.”내가 문을 고쳤다.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전하기에는 뭔가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 옆으로 와서 토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오후 열두 시쯤 되자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길가를 따라 허름한 마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버스는 산길을 벗어나 도시로 접어들었고, 오후 한 시를 약간 넘겨 루앙프라방 터미널에 도착했다.짐을 정리하고 배낭을 챙겨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이 각자의 짐을 들고 버스 주변에서 뚝뚝을 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연대감과 동지의식을 느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결국 도착했네. 진짜 도착한 거 맞지? 어쩐지 도착한 게 현실 같지 않아.”

“도착한 거 맞아요. 저녁 여덟 시에 출발해서 오후 한 시니까… 열일곱 시간 걸렸네.”

“아침 일찍 도착하면 체크인시간까지 뭐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지금 가서 곧바로 체크인할 수 있겠네. 그건 좋다.”

“난 그래도 일찍 도착하는 게 더 좋았을 거야.”


 우린 서로의 손을 잡고 터미널을 걸어서 벗어났다. 기다리고 있는 뚝뚝보다는 바깥에서 잡는 뚝뚝이 조금 더 쌀 것이기 때문이다. 터미널을 벗어나서 여행자거리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니 뒤쪽에서 뚝뚝이 우리를 부른다. 역시 터미널에서 잡아타는 것보다 싼 가격에 우릴 태워준다. 버스에서 벗어난 기쁨을 안고 뚝뚝에 올라타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조마 베이커리 앞에서 내리면 될 거에요.”

 “여기도 조마 있어?”

 “응 있어. 여행자 거리가 조마베이커리부터 시작이라고 보면 돼.”


 열일곱 시간의 사투 끝에 우리는 그렇게 루앙프라방을 여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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