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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pr 10. 2016

17시간 사투의 시작

2012. 라오스 ::: 비엔티엔 / 루앙프라방

#1.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 - 고래군


 처음 출발하고 나서는 빗소리와 엔진소리로 버스 안의 작은 세상은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소리가 익숙해질 시간이 지나자 이제 버스를 채운 것은 고요함과 평안한 어둠뿐이었다. 이윽고 덜컹거림마저 익숙해지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에 빠져들었다. 빠르면 열 시간, 오래 걸리면 열두 시간쯤 걸린다고 했으니까, 늦어도 내일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도착하겠지. 이 나라는 참 커다랗고 넓은가 보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긴 시간 버스가 이동할래야 할 수 없을 텐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살아온 세상이 정말로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약간 짧지만 누워있는 편안함이 나를 꿈도 없는 잠의 수면 아래로 조용히 끌고 들어간 것이다.문득 그녀가 나를 조용히 흔들며 깨웠다.


“오빠 일어나. 무슨 문제가 생겼나봐.”

“응? 왜요?”

“버스가 멈췄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스는 시동을 끈 채 멈춰있었다. 바깥은 불빛 하나 없는 어떤 숲이었다. 여긴 어디일까? 지금까지 얼마나 달려온 거지?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본 시각은 밤 열 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버스에는 운전사와 함께 복도에 간이 의자를 놓고 달리는 크루 두 명이 함께 타고 있었는데, 그 세 사람이 뭔가 이야기를 하며 버스에 올랐다 내렸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버스 뒷문 바로 앞 2층에 앉아 있던 영어를 사용하는 남녀가 손을 잡고 버스 바깥으로 나갔다. 미국 억양도 아니고 영국 억양도 아닌 것을 보니 호주나 캐다나 정도에서 왔나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잠깐 나가서 보고 올게요.”


 신발을 꺼내 신고 버스 바깥으로 나왔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하늘은 흐린 모양인지 뿌연 회색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운전사와 크루 두 명이 손전들을 들고 버스 뒤편에서 엔진부분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승객들은 하나둘 내려 그 모습을 지켜본다. 더러는 주변을 서성이며 걷기도 하고, 누군가는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까만 어둠으로 불어넣는다. 이윽고 크루 두 명이 길 저편 가장자리 개울에 커다란 물통을 들고 가더니 그 물을 떠온다. 그리고는 그 물을 엔진부 어딘가에 부어넣기 시작한다. 아마도 냉각수가 새면서 엔진이 멈췄었나보다. 버스는 다시 그렇게 출발했다. 나는 자리에 누우며 그녀에게 냉각수 문제였던 모양이라고, 이제 곧 출발할 것 같다고 말했다.곧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작은 숨소리와 함께 이내 잠이 들었지만, 왠지 모를 불길함에 나는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2.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 - 미니양


 비엔티엔을 떠나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뭐 혼자도 아니고 든든한 보디가드도 옆에 있겠다, 차에서 먹을 비상식량도 있겠다,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마음 편히 잠이 들 수 있었다. 한참동안 꿀잠에 빠져 있다가 고래군의 부름에 잠이 깼다. 고래군은 내게 차가 멈추었다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을거라며, 고래군을 위로하며, 별일이야 있겠냐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다시 침대좌석에 몸을 기대었다. 하지만 그 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내내 시작될 고난(?)들을...







#3.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 - 미니고래


 밤 열두 시가 다 되어갈 무렵 한 마을에 들어선 버스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 앞에 멈춰 섰다. 어느 새 빗줄기는 다시 굵어져 있었다. 바로 옆에서 건네는 말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폭우였다. 그는 잠에서 깨어 있었던 모양인지, 버스가 멈추자 마자 그녀를 깨웠다.


 “일어나요. 잠깐 쉬었다 가나봐.”

 “여기서 밥 먹나 보다. 오빠 티켓 가지고 있지? 아까 버스 티켓에 붙어 있던 게 식권일 거야. 비 많이 오나보네?”

 “응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엄청나게 많이 내리고 있었어.”


 식사는 밥이었다. 거기에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고, 접시에 원하는 것을 담아 먹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버스 안의 가방에서 칫솔에 치약을 묻혀와 양치질을 했다. 그 가게는 식당과 더불어 작은 매점을 겸하는 듯 음료수와 몇 가지 과자, 말린 생선 등을 함께 팔고 있었다. 거친 빗줄기를 온 몸에 두른 채로 크루 두 명이 다시 엔진부에 물을 채웠다. 이윽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그리곤 다시 멈췄다. 또 어딘가에서 물을 떠다 채워 넣고 출발했고, 두어 시간을 달리다가 버스는 다시 멈췄다. 그럼 또 어딘가에서 물을 떠다 채워 넣는 일이 반복되었다.과연 그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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