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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22. 2016

본격적인 여행 첫 날

2012. 라오스 ::: 비엔티엔 (위앙짠)

#1. 본격적인 여행 첫 날 - 미니고래


 터미널을 나온 그들은 허기를 느꼈다. 햇살은 여전히 땅 위로 쏟아져 내려 넘쳐흘렀고, 그로 인해 생긴 그림자는 햇살보다 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더위를 떨쳐낸 후 느껴지는 허기는 사람의 기력을 뺏어가는 법이다.그들은 메콩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강 건너편이 바로 태국이라고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 말에 강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 앞에는 넓게 펼쳐진 공원이 있었다. 공원 너머에 강이 흐르고 있으리라.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에는 더위를 달래고자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더러 보였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가족보다는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그늘에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여기가 도시의 데이트 명소일지도 모른다고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럴 지도 모르지. 그럼 우리도 조금 걸어볼까요?”

 문득 그가 말했다.


“공원 너머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 궁금한데, 저 넓은 잔디밭이 햇빛으로 가득한 걸 보니까 저기까지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


 그들은 그대로 길을 따라가면서 식사할 곳을 찾기로 했다. 공원을 따라 흐르는 차도를 걷던 그들 앞에 노천식당이 나타났다. 여러 가게가 한꺼번에 모여서 하는 듯 테이블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음식을 만드는 장소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루앙으로 가는 버스가 8시 차니까, 여기서 배를 채우자. 버스 티켓은 오빠한테 있지?”

“응. 점심밥 먹고 나서 조마 갔다가 짐 찾고, 터미널로 가면 되겠네. 갈 땐 꼭 뚝뚝 타고 가자. 꼭!”


 그녀는 그러자며 그의 얼굴을 미소를 머금고 쳐다본다. 들뜬 그의 표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미소는 어찌 보면 안쓰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대견해하는 표정 같기도 하다.






#2. 본격적인 여행 첫 날 - 고래군


 노천식당에는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아마도 점심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파리가 날아다니고 개미가 더러 보이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의 대각선 뒤쪽으로는 백인남성 한 명과 라오스 여성 한 명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우리는 볶음국수와 닭요리를 주문했다. 사실 그것을 주문한 것은 아니고,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한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짚어낸 것에 불과했다. 식당의 주인아저씨는 영어와 우리말을 전혀 몰랐고, 우리는 그들의 말과 문자를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올 수도 있었지만, 친절한 노천식당은 그래도 내가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을 접시에 담아준 것이다.


 나는 우리의 작은 모험이 성공한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독특한 향과 맛 속에는 익숙한 맛과 향이 들어있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느끼는 이 독특한 느낌은 점점 익숙해질 테고, 나는 아마도 그 맛과 향에 점점 길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은 이렇게 작은 모험으로 연결되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본격적인 여행 첫 날 - 미니양


주린 배는 채웠으니 이제는 더위를 식힐 차례, 나는 그를 조마 베이커리로 인도했다.그가 물었다.

 “베이커리면 빵집인가?”


나는 말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루앙프라방에선 거의 유일하게 에어콘이 나오는 베이커리 카페야.”


나는 지친 그를 자리에 앉히고, 얼음이 들어간 커피를 주문했다.자리에 돌아와 보니, 그는 테이블에 널부러져 있다. 널부러져 있다는 표현이 딱 맞는 자세이다.더위에 약한 사람이 오늘은 어쩐 일로 잘 버티나 했다.와이파이를 이용해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며 우리는 조마 베이커리의 시원한 휴식을 즐겼다. 커피를 다 마신 우리는 터미널로 갈 시각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오빠 여기 혹시 테이크아웃 가능할까?”

“모르겠어. 왜요?”“혹시 되면 리필한 다음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나가면 훨씬 싸게 한 잔 더 마실 수 있잖아.”

“으음. 만약 가능하면 좋겠다.”

“오빠가 한 번 물어봐요.”

“내가?”


 그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계속 부딪혀야만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의 등을 살며시 밀었다. 나는 우선 커피를 한 잔 리필한 후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윽고 그는 테이블을 지나가는 한 남자직원에게 물었다.


 “Excuse me? Can I take this out?"

"Oh. Yes sure."“Please. Thank you!"


 직원은 우리의 잔을 들고 가더니, 곧이어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왔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 기쁜 감정이 마치 옅은 안개처럼 뿜어져 나온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잘 했어. 잘 하네~” (참고로 고래군은 칭찬에 아주 약하다. ㅋ)  







#4. 또다른 경험의 시작 - 고래군


 조마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아 뚝뚝을 타기로 했다. 쏟아지는 햇살이 조금은 가늘어지고 있다. 묵었던 호텔에서 배낭들을 찾아 들고 나오면서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도착하는 슬리핑버스니까, 중간에 배고플 때 먹을 간식을 좀 사가는 게 좋을 거야. 예정 시간은 열 두 시간이거든요.”


 우리는 숙소 뒤쪽의 식당에서 바게트샌드위치를 한 덩이씩 샀다. 그리고 간식거리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문을 열며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맥주!”

나의 외침에 그녀는 나를 흘깃 보며 시원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의 눈빛은 나에게 말을 건네주었다. 

‘물론이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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