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Mar 09. 2016

걷다, 걷다, 또 걷다

2012. 비엔티엔 (위앙짠)

#1. 본격적인 여행 첫 날 밤- 고래군


 까만 색 밤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버스 창문 밖으로 간간이 번개가 번쩍이며 보여주는 세상은 빗소리로 가득 차 있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슬리핑버스 안에 누워서 바라보는 바깥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여행이라는 게 쉽고 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이 버스에 누워있는 내가 마냥 작게만 느껴졌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나는 세상에 비하면 정말 작은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와 닿았다.






#2. 본격적인 여행 첫 날 아침- 미니고래


 그들은 호텔 1층에서 첫 날 아침식사를 하며 여행계획을 세웠다. 

“밥 먹고 우리 뭐 할까?”

“우선 어디로 갈지 정해야지. 오빠는 어디부터 가고 싶은데? 남쪽? 아니면 북쪽?”

“당신이 저번에 간 곳은 어느 쪽인데?”

“루앙프라방은 북쪽이야.”

“그럼 북쪽. 나도 거기 가보고 싶어.”

“으음. 그럼 방비엥을 들러서 루앙프라방으로 갈까? 아니면 루앙 먼저 갔다가 방비엥 들러서 비엔티엔으로 돌아올까?”

“뭐가 좋을까?”

“똑같아. 여기서 루앙 가는 시간이 좀 긴데, 갈 때 오래 가느냐 올 때 오래 가느냐 차이.”

“음… 그럼 루앙프라방 먼저 가보자.”

“그럼 우리 밥 먹고 버스 시간 알아보자.”








#3. 본격적인 여행 첫 날 한낮- 고래군


 우리는 지도를 보며 북쪽 버스 터미널을 찾아보았다. 비엔티엔은 라오스 사람들은 사실 ‘위앙짠’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래 이름이 위앙짠인 것이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진짜 이름일 테니까. 워낙 외국인 여행객이 많고, 그 여행자들이 비엔티엔이라고 읽다 보니 외국인이 잘못 부르는 이름을 별로 이젠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일까? 아니면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본 지도에 의하면 북쪽 버스 터미널은 시내에서 아주 멀지는 않아 보였다.


“오빠 그럼 우리 걸어서 가볼까요?”

“그래요 그럼. 재밌겠다.”


 우리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1시간 안쪽 거리 정도는 종종 걷는다. 지도만 정확하다면 북쪽 버스 터미널은 5킬로미터 내외 정도이다. 지도만 정확하다면.

평소 그녀는 내게 말한다. 외국에 나가면 핸드폰, 지갑, 여권만 챙기면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우리는 지도를 따라 처음 가본 도시의 처음 걷는 거리로 나섰다. 하나의 걸음걸음이 모두 처음이다. 낯선 가운데 느껴지는 익숙함은 내가 살아온 것처럼 이곳에서 자기 스스로를 살아내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도시 외곽으로 빠지는 방향인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는 지도에 나온 건물들을 이정표 삼아 길을 걸었다.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저 길인 것 같은데?”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 평소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라면 오래 걷지 못해 짜증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긴 한가보다.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햇살과 무더위마저도 지금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조금 덥긴 하지만, 오히려 햇살이 강해서 그런 것인지 습도는 전혀 없었다. 중간에 마주치는 작은 그늘은 아주 잠깐이지만 무척이나 시원했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날씨 때문에 빠르게 지쳐가는 우리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즐거웠고 행복했다.


약 삼십 분 정도 더 걸었을까? 이 쯤 걸었으면 이제 곧 나올 것이다. 거의 도착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도만 정확하다면. 조금 더 걷자 작은 사거리에 간이검문소가 보이고, 거기 있는 제복을 입은 경찰 세 명이 보였다. 우리는 그들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그들은 웃으면서 우리가 걷던 길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가 방향은 잘 잡고 가고 있었나보다.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며 그들은 웃음 섞인 대화를 서로 나누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의 말을 모른다. 우리는 그들에게 미소와 함께 감사인사를 전했다.


“컵짜이라이라이!”


 우리의 모습이 흥미로웠을까? 그들은 웃으면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던 것일까?

다시 걷는다. 풍경은 흥미롭다. 건물들이 길을 따라 쭉 늘어서 있고, 그 너머는 초원이나 숲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아까 시내에서 왜 인적이 드물었는가를 이제야 깨닫는다. 이 시간에 돌아다니면 위험하겠구나. 복사열 때문에 아마 지금 지면온도는 40도를 넘어갈 것이다. 한국에 비하면 유난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은데, 재밌게도 맑은 하늘 아래 우산을 받쳐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양산이라고 불러야겠지만, 분명 비가 올 때도 사용할테니 우산도 맞긴 할 거야.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목 마르다. 시원한 거 마시고 싶어.”

“저기 가게 있네. 뭐 마시고 싶어요?”

“이 동네 콜라! 콜라가 나라마다 맛이 다르다면서? 여기는 어떤 맛일지 궁금해.”


 검은 색 마법의 물. 그 시원한 청량감이 무더위를 조금은 가시게 해줄 것이라 믿으며 콜라를 한 병 샀다. 한 모금 꿀꺽 마시고 나서 나는 말했다.


“맛이 이상해!”

“오빠 왜! 뭐가 이상한데!”

“너무 달아! 그리고 콜라향이 아니라 체리 비슷한 다른 향도 섞여있어! 탄산은 적어!”


 내가 기대한 맛은 이게 아니었는데…





다시 또 얼마나 걸었을까? 도저히 나오지 않는 버스 터미널. 오기로 걸어온 길은 얼마나 될까? 몇 시간이나 걸어온 거지? 생각해보니 제일 더운 계절, 제일 더운 시간에 걷기로 결정한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방향에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던 그 동네 남자애 하나가 영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동네청년: 어디 가냐 니들?

미니양: 북쪽 버스 터미널.

동네청년: 이쪽이 맞아. 그런데 멀어.

미니양: 많이 멀어?

동네청년: 걸어서 한 시간 넘게 걸려.

미니양: 아 그래? 고마워.

동네청년: 재밌게 놀아라. 안녕

우리: 안녕.


 나는 그녀의 눈빛만으로 우리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뚝뚝 타자. 더 이상 못 걷는다. 왜 걷는 사람이 없는지를 고민해보았어야 했다. 아까 경찰 녀석들 우리 바보라며 비웃는 것이었구나. 애초에 지도가 잘못되었던 거였어. 젠장. 등등.

도로를 따라 달리는 뚝뚝들이 아까부터 우리를 붙들 때 우린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었다.


“No~ Thanks~”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나가는 뚝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의 눈으로 뒤편을 바라보며, 늑대의 귀로 달려오는 뚝뚝의 모터소리를 찾는다.


“부르르릉~ 뚝뚝!”

“Nothern Bus Station!”

“Okay.”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살았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린 곧바로 그 뒤에 올라탔다. 아 이렇게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우린 오래토록 걸었구나. 결국 여기까지 왔지만, 이렇게 뚝뚝을 타게 되어버렸구나. 질주하는 뚝뚝이 10분 정도를 달리자 버스터미널이 보인다. 시내로 돌아갈 때는 꼭 뚝뚝을 타겠다고 나는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착한 그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