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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y 23. 2016

먹자! 먹자!

2012. 라오스 ::: 루앙프라방

#1. 뭔가 먹어야지, 루앙프라방 - 고래군


 우리는 고요하게 흐르는 넓은 강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흙빛과 푸른빛이 섞인 강물은 어쩌면 저녁하늘과도 닮은 것처럼 보인다. 땅을 밟고 물을 마시며 하늘 아래 나는 것을 먹고 하늘 아래에서 잠드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다. 나도, 그리고 다른 누구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이곳 루앙프라방은 아주 오래 전부터 왕국들의 수도였다고 한다. 자세한 역사는 잘 모르지만, 문득 내가 밟고 있는 이 길과 이 땅을 마찬가지로 밟고 걸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기나긴 시간의 흐름이 거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길을 말을 타고 내달렸을 테지. 언젠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이를 안고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어떤 나이든 어부는 메콩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저기 보이는 시장으로 들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처럼 손을 맞잡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 일찍 함께 손을 잡고 들어선 시장은 로컬마켓답게 정말 이것저것 팔고 있었다. 채소 종류도 있고 커다란 고기를 큼직하게 잘라놓은 정육점도 있다. 정육점에서는 피를 받아 굳혀 선지를 만들어 팔고 있다. 메콩강에서 잡아 올렸을 크고 작은 생선도 있다. 큰 녀석은 정말 내 한쪽 팔만한 크기에 내 목만큼 두꺼운 몸통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시장에는 뭔가 이상한 벌레도 팔고, 개구리도 팔고 있었다. 벌레와 개구리…


“오빠 우리 과일 좀 먹을까?”

“여기서?”

“응 그냥 사서 먹으면 되지.”

“껍질 어떻게 벗겨 먹어? 칼 없는데.”

“그냥 빌리면 되지. 빌려주지 않을까? 뭐 먹을래요?”

“나 뭐가 뭔지 몰라. 다 처음 보는 과일들이야. 근데 과일인 건 맞지?”

“네. 과일입니다.”


그녀는 과일입니다 하는 말끝을 길게 늘여 ‘다아아아’ 하면서 웃었다.아기 머리만한 과일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을 치른 그녀는 내게 그 과일 이름이 애플망고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과일을 산 할머니에게 칼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말했다기보다는 몸짓했다. 할머니는 물론이고 그 주변의 모든 상인들이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간신히 의미를 이해한 할머니는 웃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묻더니 작은 칼을 하나 우리에게 얻어다 주었다.라오스 사람들은 정말 잘 웃는다. 낯선 사람에게 보여주는 어색한 미소가 아니라 그냥 편안한 진짜 웃음이다. 그리고 애플망고는 그냥 손가락으로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다. 그곳은 우리의 작은 실수나 무지에 대해 비웃거나 한숨 쉬지 않고 맑은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사는 장소였다.







#2. 과일 먹어야지 루앙프라방 - 미니양


 루앙프라방이 두 번째였던 나는 고래군에게 루앙프라방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또한 이 곳 사람들의 순박하고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고도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아침시장. 세계 어디를 가나 시장을 가면 그 곳 사람들의 일상을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시장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쩌면 여태껏 루앙프라방에서 봤던 라오스 사람들을 다 합친 것만큼 많았다고 할 만큼. 


 이것저것 신기하게 구경하다 문득 과일이 먹고 싶어졌다. 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나의 타겟이 된 건 애플망고. 손가락으로 대충 가격을 묻고, 값을 치르고, 무사히 애플망고 2개를 구입했다. 숙소에 가서 먹을까 하다 그냥 이 곳에서 먹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겨우겨우 칼을 빌려 시장 한 귀퉁이에서 잘 익은 애플망고를 먹기 시작했다.칼로 껍질을 벗겨 입에 한가득 물었더니, 과즙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는 양손에, 입가에 애플망고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오빠, 입가에 과즙 잔뜩 묻었어. 히히히”

“당신도 마찬가지야. 하하하”

“그래? 과즙으로 손 씻은 것 같아.” 


나와 고래군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 아이의 모습 같아서였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엔 그런 것들이 창피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머리가 자라고 창피함을 알아가게 된 지금, 그렇게 본능에 충실한 채로 무언가를 먹기는 힘든 나이가 되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시장 상인들도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우리도 즐겁고, 상인들에게도 웃음을 주었으니, 서로 만족한 유쾌한 아침이었다.







#3. 밥도 먹어야지 루앙프라방 - 고래군


이곳이 한국보다 좋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음식점들이 메뉴와 가격을 가게 앞에 펼쳐 놓는 것과 맥주가 맛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자주 찾은 곳이 강가에 있는 한 야외 레스토랑이다. 닭요리나 볶음밥류, 쌀국수와 같은 식사류와 함께 감자튀김 등의 가벼운 안주, 그리고 음료수와 맥주 등을 판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동안 우리는 종종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 곳을 찾으면 우리는 강가 쪽 테이블에 즐겨 앉았다.이 곳을 처음 찾았을 때 우리는 건너편 풍경과 강물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고, 나는 종업원에게 양 손 검지로 네모를 그리며 메뉴판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종업원이 갸웃갸웃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메뉴판을 달라고 말하자 그는 웃으면서 네모가 아니라 양 손으로 책을 펼치는 동작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내가 갸웃갸웃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녀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메뉴는 네모가 아니라 양손바닥을 책처럼 펼치는 제스처인 것 같아요, 오빠.”

“아 원래 그런 거야?”

“몰라 그런가 봐.”

“아! 그럼 네모는 어쩌면 계산서 달라는 건가봐. 그래서 아까 쟤가 갸웃갸웃했던 거구나.”


밥도 안 시키고 계산서 달라 했으니, 아마 그 친구는 ‘쟤네 뭐지?’ 했을 게 뻔하다. 갑자기 시원한 루앙프라방의 밤공기를 내 얼굴로 다시 덥게 데워버리고 말았다.두 번째인가 세 번째 찾아갔을 때였다. 갑자기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비어라오가 없다면서 메뉴판의 다른 맥주를 가리키며 괜찮겠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지 뭐 하며 그걸로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맥주가 바로 ‘남콩’ 맥주.컵에 맥주를 따르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투명하고 맑은 시원함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맛있다! 뭔가 산뜻한데 가벼운 맛은 아니야!”


‘캬-’ 하는 표정을 보니 그녀도 맥주맛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결국 우리는 맥주를 세 병이나 시켜서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밤공기와 함께 숙소로 돌아와 낮에 사놓은 캔맥주를 잔뜩 마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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