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Jun 21. 2016

루앙프라방의 아침

2012. 라오스 ::: 루앙프라방

#1. 루앙프라방의 경건함 - 고래군


 우리는 ‘탁밧’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탁밧’은 루앙프라방의 승려들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날 일용할 음식을 얻고, 또 음식이 필요한 이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내게 말해주었다. 혹시 ‘탁밧’이 한국의 ‘탁발(托鉢)’일까? 같은 불교이니까 어쩐지 맞을 것 같다.우리가 큰 길로 나서자 길 양쪽으로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나가는 승려들의 보시에 무엇인가를 조금씩 넣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고요한 아침의 경건한 행렬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며 나는 그녀와 함께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야시장이 서는 거리 쪽으로 걷다 보니 커다란 종이박스를 앞에 두고 쪼그려 앉은 어린 아이가 있고, 그 앞을 지나는 승려들 중 몇 명이 아이의 상자에 아까 받은 음식들을 넣어주는 모습을 만났다.문득 기독교는 배제의 원리를 따르고, 불교는 포용의 원리를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의 신들을 악마의 자리로 끌어내리며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다. 루시퍼만큼 큰 지위의 악마인 바알세불은 사실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이른바 ‘사악한 신’들은 그저 다른 민족과 종교의 신들이었던 것이다. 반면 불교는 이교의 신을 끌어안는다. 수미산의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은 고대 인도의 시바신의 화신이고, 심지어 한국의 불교는 산신과 조왕신까지도 사찰의 품에 포용했다. 라오스 사람들이 잘 웃는 이유는 어쩌면 탁밧을 통해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법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 루앙프라방의 경건함 - 미니양


 난 여행을 다니면서 꼭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무조건 많이 보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은 첫 번째 여행이 끝나고 거의 접어버렸다. ‘나중에 다시 오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그 때 그 때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는 것이 나의 여행 스타일이 되었다. 루앙 프라방에서 꼭 봐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탁밧이었지만, 이른 아침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였기에 눈이 떠지면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 깊이 탁밧이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미니양은 라오스가 두 번째 여행이었다.) 아니면 고래군에게 탁밧을 보여주라는 루앙프라방 부처님의 의도였을까? 이른 아침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렇게 탁밧을 보러 숙소를 나섰다. 


 탁밧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탁밧이 진행되는 동안, 숨죽여 지켜봤다. 눈치없이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어대는 다른 여행자들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거다. 여행을 하면서 최대한 그들의 일상에 피해가 되지 않게 엿보는 정도로만 여행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넌 틀렸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할 권리는 내게 없으니.


 탁밧이 끝날 즈음 박스를 놓고 스님들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날 것만 같았다. 그 아이에겐, 혹은 그 아이의 가족에겐 스님들이 나눠주는 저 음식이 그들의 하루치 양식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잠깐이나마 경험했던 국제개발구호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봤던 시간이었다.







#3. 루앙프라방이 한 눈에 - 고래군


 그녀가 내게 말했다.


“저 산 이름이 푸시산인데, 루앙의 명소야. 오빠가 저기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더운데 산? 더운데? 덥잖아.”

“산 별로 안 높아. 그 정도도 못 참아?”

“더운 건 성별 구분 없이 더워.”

“그래도 가자. 가보면 후회 안 할 거야. 약속할게.”


 여행자 거리 쪽 산의 초입에서 우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동양인들이었는데, 남자들은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들이고, 20~30대로 보이는 여자들 몇 명은 풀메이크업 상태이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내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다.”

“어떻게 알아?”

“여행 가서 풀메이크업 하고 다니는 건 대부분 한국인이라고 보면 돼. 저 사람들 지나보내고 올라가자 우리.”

“왜?”

“내가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한국 사람들이랑 얽혀서 좋은 적이 별로 없었어.”

“응. 그럼 그렇게 하지 뭐.”


 우린 잠시 한국말을 중단하고 그들이 먼저 올라가도록 지나보냈다. 지나보내며 들어보니 정말 한국어를 사용한다. 우린 그들을 다 보내고 나서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자체는 가파르지만 다행히 계단이 놓인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 않았다. 차근차근 올라간 산의 정상에는 입장료를 받는 입구가 있었고, 그 뒤에는 작은 사찰이 있었다. 입장료는 1인 20,000킵.사찰을 조금 돌다 보니 갑자기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와. 루앙프라방이 이렇게 큰 도시였어?”

“응. 우린 여행자 거리만 있었으니까요. 이 풍경을 오빠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정말 좋다. 고마워요. 정말 좋다.”


 내가 감탄하며 바라보는 이 풍경을 저기 사는 사람들은 삶의 터전으로 아무런 감탄 없이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산에 올라 바라보는 서울이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방인. 지금 내가 느끼는 숭고와 경외는 어쩌면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사찰 안의 작은 건물에 커다란 불상이 모셔져 있는 것이 보인다. 한국 사찰의 대웅전 같은 것인가 보다. 이곳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가 보니 북유럽에서 온 듯한 나이가 조금 많은 커플이 그 앞에 앉아 하염없이 불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그들의 고요를 깨트린 모양이다. 미안했지만, 이미 깨트린 김에 나는 불상 앞에 손을 모으고 선 다음 삼배를 올렸다. 백팔배는 무리고. 덥잖아. 물론 여긴 시원하지만. 만약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부처님 또 인사드리러 찾아뵙겠습니다.






 대웅전(?)에서 나와 보니 저쪽이 조금 소란스럽다. 아까 올라온 한국인 무리 중 한 아저씨가 물과 음료수를 파는 가판 앞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큰 소리로 가판을 지키고 있는 아가씨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워터. 물. 워터 몰라? 코리안 달러! 이거 물 몇 병 값이야. 워터 달라고!”


하지만 아가씨는 그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아 진짜 너무하네. 만 원 준대도 물 안 팔아?”


그 아저씨는 입맛을 다시며 결국 물을 그냥 집어갔다. 물을 팔던 아가씨는 그저 웃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에게 물을 들려 보냈다.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몰라 저 아저씨 진상이야. 남의 나라 사찰에 와서 저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건 뭔데? 게다가 한국 돈은 라오스에서 환전 안 돼. 이 나라 사람들한텐 그냥 종이쪼가리란 말이야.”

“그러게. 아까 당신이 여행 가서 한국 사람들 피한다고 했던 이유 알 것 같다.”

“어. 외국 나가면 저런 사람들 많이 보여. 다 그런 건 아닌데, 종종 보여서 애초에 한국인들 피해 다니는 거야.  특히 동남아에서. 동남아 사람들 무시하는 한국 사람들 많거든.”


그렇구나. 나는 나이가 들더라도 저러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만약 아이를 낳게 되더라도 저런 사람은 되지 않게 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먹자! 먹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