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너의 이야기야.
훌륭한 극작가의 작품이 좋은 배우들과 뛰어난 연출가를 만날 때 좋은 연극이 탄생한다. 이강백의 이번 작품 <심청>은 어쩌면 당연한 이 명제가 왜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예시가 되어주는 것 같다.
<파수꾼>, <결혼>, <북어대가리> 등의 대표작을 통해 연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극작가 이강백이 새로운 작품을 들고 우리 곁에 찾아왔다. 이번 연극 <심청>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의 고전인 판소리 「심청가」를, 이강백 특유의 알레고리를 통해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연극 <심청>에는 ‘심청’이 기표로서만 존재한다. 주인공은 심청처럼 바다에 던져질 ‘간난’과 그녀를 바다에 던질 ‘선주(船主)’다. 어느덧 자신의 곁에 다가온 죽음을 느끼는 선주와, 그 선주가 마지막으로 살해할 ‘간난’에게 느끼는 정서적 교감과 그들의 갈등이 이 연극의 중심적인 흐름이다.
우선 ‘심청 텍스트’의 기원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해석이 눈에 띈다. 대국(=중국)과 교역하는 선주(船主)는 해마다 어린 처녀들을 서해용왕에게 제물로 바친다. 무지한 선원들을 안심시키는 데는 희생양보다 더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 년 사람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심청전”을 책으로 엮어 대중들에게 유포시킨다. 이강백은 텍스트가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의 기원에 위치하는 욕망을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제물에게 뿐만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자에게도 찾아간다. 선주(船主)가 맞이하는 죽음의 형태가 사실 그가 살면서 수없이 바다에 던져버렸던 그녀들의 죽음과도 같다는 역설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운 ‘나온 시어터’ 공간의 특성과 맞물려 그 죽음이 무대의 경계를 건너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 연극의 절정은 어쩌면 마지막 ‘심청’이 될 제물 ‘간난’을 죽음으로 내몰던 세 아들이 불현 듯 객석을 노려보는 장면이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너희들도 공범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