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연극 <햄릿>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작으로 연극 <햄릿>(2016년 7월 12일~ 8월 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준비되었다.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캐스팅으로 인해 일찌감치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대중들에게는 TV 드라마와 영화 스크린을 통해 더 잘 알려진 경력 수십 년의 베테랑 배우들을 홍보의 전면에 내세운 덕분에 관객들의 호응도 꽤나 뜨거운 것 같다.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중견배우 한명구가 막내로서 소품을 양 손에 가득 들고 무대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의 바로 직전 작품(연극 <레드>)에서 보았던 모습과 묘한 대비를 보인다. 배우 한명구가 막내라니!!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이 ‘연출가 이해랑’의 탄생 100주년 기념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화려한 캐스팅은 이번 공연의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그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번 연극 <햄릿>이 철저하게 연출가에 의해 ‘디자인’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굳이 ‘디자인’이라는 표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공연이었다.
1.
우선 무대부터 살펴보자. 연극 공간은 그리스의 원형극장(Amphitheatre), 또는 연행 장소로써의 한국적인 극 공간인 ‘마당’을 연상시킨다. 사실 연출가 손진책이 한국 연극의 정체성에 고민하면서 주목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행위가 발생하는 장소로서의 ‘마당’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2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몇 가지 형식적 특징이다. 우선 이 공연은 극의 시작과 끝이 제기(祭器)로서의 (다양한) 그릇 또는 잔에 담긴 물에 손을 씻고, 하얀 천으로 물을 닦아내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일상적 공간과 비일상적(또는 신화적) 공간 사이의 경계를 건너가기 위해 연행하는 일종의 제의적 행위로 볼 수 있다. 관객들은 각자의 자리에 찾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던 중앙의 무대 공간이 비로소 연극적 공간으로 전환되는 장면을 목격함으로써, 마치 유럽의 중세 수도사와 같이 두터운 후드가 달린 외투를 입고 나온 배우들의 제의 장면에 능동적으로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3.
인터미션을 경계로 해서 이 공연은 1막과 2막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공연시간 때문에 막간의 휴식을 의도했을 수도 있다. 배우들도 대부분 60대를 넘긴 베테랑인데다, 등받이도 없는 자리에 오랜 시간 앉아있어야만 하는 관객들을 충분히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의 인터미션은 휴식이라는 의미보다는 극명하게 다른 스타일로 ‘디자인’된 두 개의 막 사이에 관객들의 인식적 ‘공백’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로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4.
1막은 사실주의적 연극이 제공하는 ‘환각’으로부터 벗어난, 다소 기괴한 분위기로 디자인되었다. 손진책이 이렇게 다소 음산하고 흐릿하기까지 한 몽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는 1막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햄릿의 시각을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가식적이고 비열한 클로어디스, 또는 너무나도 쉽게 전남편인 선왕 햄릿을 망각하는 거트루드의 말과 행동 등은 사실 햄릿의 시각에 비친 인물들의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1막의 무대 공간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의식 세계 내지는 내면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햄릿이 만난 아버지의 유령은 사실 햄릿 자신의 분열된 주체, 즉 자기 자신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1막의 이러한 구성은 다소 표현주의적인 연출 기법으로 볼 수 있다. 표현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무대 위의 인물이나 공간 등은 사실 한 등장인물의 시선에 포착된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클로디어스나 거트루드 뿐만 아니라 햄릿의 친구로 등장하는 세 명의 등장인물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즉 호레이쇼가 가진 무한한 신뢰와 충성이라는 모습, 그리고 이와 대조적인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의 수상한 모습은 사실 햄릿이 그들에게 느끼는 캐릭터인 것이다.
그밖에도 비사실주의적인 요소인 폴로니우스가 들고 나오는 휴대전화기나 햄릿이 칼 대신 사용하는 권총 등의 소품도 이 작품에 표현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5.
1막 종료 이후의 공백(앞서 이야기한 인터미션)을 건너 관객들을 맞이하는 2막은 그 때까지 와는 다른 분위기와 공기가 무대를 채운다.
클로디어스가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몸을 웅크리며 엎드린다. 그리고 잠시 후 손에 총을 움켜쥔 햄릿이 그의 뒤에 서서 총을 겨눈다. 그 순간 전면(前面)에서 한줄기 빛이 흘러나와 두 명을 통과해서 벽에 그림자를 만든다. 그 형태는 마치 무덤을 밟고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여기에 의미심장한 두 가지 상징이 있다. 무덤에 두 발이 잠긴 햄릿의 그림자는 그가 곧 죽음 내지는 파국을 이끌어낼 인물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향하는 지점이 바로 ‘벽’이라는 점이다.
손진책은 관객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는 ‘햄릿=죽음’이라는 사실을 극중 인물들은 모르는 상태라는 극적 아이러니를 2막의 첫머리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 뛰어난 연출가는 최초의 이 아이러니를 토대로 다른 극적 아이러니들을 그 위에 쌓아올림으로써 극적 갈등 양상을 고조시켜나간다. ‘죽음’의 상징이 씨줄이라면, 극적 아이러니의 연쇄를 날줄로 삼아 무대를 디자인한 것이다.
햄릿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우선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을 향한다. 그리고 무대 바깥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 두 사람의 뒤를 잇는 인물은 오필리어와 레어티스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이다. 그런데 앞서 죽음을 맞이한 인물 중 로젠크란츠(손봉숙 분)는 오필리어의 죽음을 알리는 시녀로 다시 등장한다. 또 다른 죽은 이 길덴스턴(한명구 분)과 폴로니우스(박정자 분)는 무덤지기와 그 동료로 등장한다. 이렇게 쌓아올린 극적 아이러니는 ‘죽음’이라는 상징이 집약된 소품인 (성배를 연상시키는) ‘독이 든 술잔’을 중심에 둔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죽은 오필리어(윤석화 분)가 햄릿과 레어티스의 검술 시합을 주도하는 인물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6.
만약 공연이 이 시점에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해도 무척이나 잘 만든 공연으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출가 손진책은 이번 공연 전체에 전이연극적(轉移演劇的 metatheatrical) 성격을 부여한다.
2막의 도입부에서 ‘햄릿’이라는 인물이 ‘죽음’에 대한 상징이라는 점은 벽에 새겨진 ‘그림자’라는 기표를 통해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2막을 이끌어가는 힘이 각인된 소재가 바로 ‘벽’인 것이다.
손진책은 모든 비극이 정점에 이른 그 순간 그 벽을 들어올려, 그 뒤에 은폐되어있던 진실을 드러낸다. ‘인물들의 연극’을 ‘제 4의 벽’ 너머에서 몰래 훔쳐보던 관객들의 자리 또한 사실은 무대 위 공간이라는 진실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연극이 시작할 때 일상적 공간에서 제의적 연극 공간으로 건너갈 때의 행위를 다시 반복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행위의 방향이 빈 객석을 바라본다. 그들의 등 뒤에서 관객들 역시 연극의 한 부분, 또 다른 연극의 인물이 되는 순간이다.
7.
호레이쇼(김성녀 분)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고 보면 처음 햄릿에게 선왕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알린 것도 그였다.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이 사실은 충실하고 믿을 수 있다고 여겨졌던 그가 의도했던 걸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