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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31. 2016

다시 올게, 루앙프라방

2012. 라오스 ::: 루앙프라방 / 방비엥

#1. 안녕 루앙프라방 - 고래군


 애초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에 공항이 있는 비엔티엔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계획도 없이 걷고 돌아다니는 것이 우리의 여행 계획이었다. 우리는 루앙프라방을 뒤로 하고 방비엥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익숙한 짐정리를 마치고, 백팩을 어깨에 둘러멘 다음 나는 그녀를 앞서 먼저 숙소 앞으로 나왔다.숙소 앞에는 진한 회색머리의 백인할머니가 까만머리의 동양인할머니가 함께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색머리 할머니는 태양을 많이 마주했는지 피부가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나에게 빨간 할머니가 문득 말을 걸었다.


“넌 어디로 가니?”

“방비엥으로 가는데, 그 다음은 아무 계획 없어(요).”


그 와중에 그녀가 바깥으로 나와 내 곁에 섰고, 우리는 할머니의 다음 말을 들었다.


“치앙마이 어때? 여기서 배를 타면 치앙마이까지 갈 수 있어.”

“배?(With boat?)”

“응. 하루 자고 나면 아침에 도착해. 치앙마이 정말 좋아. 난 거기서 여기로 왔다가, 이제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야.”

“그래(요). 생각해볼게(요).”


그들은 그렇게 먼저 루앙프라방을 떠나 어딘가로 갔다.







#2. 안녕 루앙. 그리고 안녕 방비엥? - 고래군


 우린 여전히 열 일곱 시간의 버스여행을 잊지 않았다. 터미널 버스는 언제 또 그럴지 몰라. 그렇게 우린 여행자거리의 여행사 몇 군데를 돌아다녔고, 숙소 바로 건너편의 다른 숙소에서 싼 가격으로 내놓은 방비엥으로 가는 승합차를 예약했더랬다. 지도상으로는 방비엥은 루앙보다 아주 많이 가깝다. 그래봤자 5시간 거리긴 하지만.그렇게 도착한 방비엥은 이곳 말로는 ‘왕위엥’이라고 읽는다고 한다. 그럼 원래 이름은 ‘왕위엥’이 맞긴 한데, 영어에 조금 더 가까운 나로써는 쓴 그대로 읽는 게 아직은 익숙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왕위엥’이 원래 이름인 게 맞는 거다.어쨌든 방비엥 버스터미널에 내린 우리는 역시나 기다리는 뚝뚝을 무시하고 일단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내게 가이드북을 펼쳐 보이며 말을 걸었다.


“오빠 이 지도 봐. 뚝뚝 아예 안 타도 될 거리인데? 터미널 바로 옆이 다운타운이야.”

“그러게. 걸어도 될 거리네? 근데 우리 루앙에서 검색해본 그 숙소,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거긴 어떻게 찾아가려고?”

“일단 들어가서 찾아보지 뭐. 정 안 나오면 아무데나 들어가도 되잖아요.”

“하긴. 그럼 우리 걷자.”


 터미널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지도대로 입구에서 좌회전을 한 후 그대로 걸었다. 그런데 주변 풍경이 점점 한적해지는 것이 이상하다.


“여긴 산이 한국이랑 전혀 다르게 생겼네. 저 산들은 아마 아주 오래 전부터 올라가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처럼 생겼어.”

“라오스가 건기가 성수기라서 그 때 오면 방비엥은 유럽 애들이 엄청 시끄럽게 논대요. 맥주 마시고 취해서. 지금은 우기라서 어떨지 모르겠어.”

“사람이 맥주만 마시고 취할 수 있어? 그 전에 배부르지 않나? 난 맥주는 열심히 마셔도 술기운 올라오다가는 마시는 중간에 술이 깨던데? 게다가 걔들은 평소에 독한 술만 마시잖아.”

“몰라요 나도.”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우리 주변은 점점 숲으로 가득한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짙어지고 있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이 척추를 타고 스물스물 기어 올라온다. 그런데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어쩐지 우리 길 잘못 든 거 같지 않아?”

“안 그래도 아까부터 뭔가 좀 이상하긴 해. 저긴 뭐지? 엄청 넓은 건물인데, 호텔인가?”

“음악소리 큰 거 보니까 클럽 같아요.”

“무슨 클럽이 이렇게 외딴 곳에 있어?”

“몰라! 나도 여기 처음 와본 거란 말이야.”

“물어봐야 하나?”

“그래봐야죠 뭐.”


 입구에서 기웃거리는 우리를 보고는 젊은 남자 두 명이 뭔 일인가 싶은지 마중나온다. 그녀가 그들에게 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더니 돌아와서 내게 말했다.


 “아까 터미널에서 반대방향이래.”

“지도는 이쪽이라고 했는데? 그럼 좌회전이 아니라 우회전이었던 거야? 터미널에서 멀대?”

“몰라 나도!”


 문득 내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린 다시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사실 외길이라 길을 헤맬 걱정도 없다. 그저 주변이 너무 한적한 까닭에 불안을 느낀 것일 터이다. 그런데 문득 그녀도 많이 불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온 길 다시 돌아가면 되지 뭐. 중요한가. 어차피 오늘 딱히 뭔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괜찮아 괜찮아. 열 일곱 시간 버스 타는 것보다야 백 배 천 배 낫지 뭐.”


우린 그렇게 길을 거슬러 터미널로 되돌아갔다.






#3. 안녕? 방비엥 - 미니양


 혹시 몰라 가져간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를 보고 자신있게 발걸음을 옮겼던 난 당황해버렸다. 지도를 보고 헤맨 적 거의 없었는데, 아무리 걸어도 다운타운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첫 해외여행이었던 고래군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척척 알아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도저히 다운타운은 나올 것 같지 않고, 누군가에게 물어보든지 뚝뚝을 타야겠다고 생각하며 현지인이 알려준대로 반대로 길을 나오기 시작했다. 길을 돌아 나오는데 문득 옆에 있는 고래군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내가 힘들까봐 배낭까지 바꿔서 메고 묵묵히 옆에서 걷고 있는 그를 보면서, 그동안 혼자 다녔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을 느꼈다고 해야하나? 난 다시 힘을 내서 다운타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략 20분쯤 걸었을까? 봐두었던 숙소 이름이 보였다. 기쁜 마음으로 난 소리쳤다.


“오빠! 저기 승아룬(숙소이름) 이다! 다운타운인가봐.”


그렇게 방비엥은 우리를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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