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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Oct 02. 2016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만찬

2012. 라오스 ::: 방비엥

#1. 마지막 만찬 - 고래군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는 마저 환전을 하고는, 여행의 막바지를 기념하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비싼 음식을 함께 먹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고른 메뉴는 스테이크. 강물이 흘러가는 바로 옆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레스토랑에 우린 앉았다.


“오빠 나는 스테끼 먹을래! 스테끼 스테끼!”

“그럼 난 뭐 먹을까요?”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내게 말했다.


“어? 여기 똠얌꿍 있네?”

“그건 또 뭐야? 음식 이름이야?”

“응 태국 음식이야. 그런데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여기에도 비슷한 게 있네. 태국인들은 이걸 보양식으로 먹어요.”

“보양식?! 나 그거 먹을게 그럼!”

“이거 향이 조금 진할 텐데 괜찮겠어요? 여기 라오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태국에서는 향신료 꽤 많이 넣었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보양식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한껏 차올라버린 나는 ‘그 정도야 뭐’ 하는 생각을 품고 그것을 주문했다.주문한 음식 중 우선 나온 것은 그녀의 스테이크. 소고기를 갈아서 넓게 뭉쳐 구워진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고기를 한 조각씩 얻어먹으면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는 시각, 건너편에는 방갈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마 저기에서 자려면 모기와의 전쟁은 각오해야 할 거야?”


나의 시선을 따라잡은 그녀가 말했다.


“게다가 만만찮게 더울걸? 에어컨 없어 저기.”


넓은 레스토랑에는 여행객들이 제법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편 테이블에는 중국에서 온 듯한 남자 네 명과 여자 두 명이 함께 앉아 주문하기 시작했다. 나의 등 뒤 테이블에는 잿빛 머리카락의 백인 한 명이 혼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다.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새우 대신 닭고기가 들어 있었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똠얌카이’라는 음식이다.) 약간 붉은색이 감도는 우윳빛 국물에 닭고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들이 담겨 있다. 국물을 마셔보는 나에게 그녀가 물었다.


“어때요? 먹을 만해?”

“어 괜찮은데? 향신료 내음이 강하긴 한데 괜찮아. 한 번 먹어봐요.”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은 그녀가 말했다.


“처음이라 아직 먹을 만한 거 아니야? 향이 꽤 강한데?”


그런데 그녀의 말처럼 먹을수록 점점 향이 온 몸을 채워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나뭇잎을 입에 넣자 강렬한 향기가 후각과 미각을 마비시켜버렸다.


“으악! 이거 때문이었어, 먹기 힘든 게! 이 나뭇잎! 이거 정체가 뭐야!”


그녀는 그저 말없이 웃으며 자기 앞에 놓인 고기를 한 조각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 사이 강물 위로 어둠이 조용히 내려앉으며 방비엥에서의, 그리고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






#2. 고래군, 첫 동남아 향신료의 맛을 보다! - 미니양


대담하게 똠양꿍을 시킨 고래군의 음식이 나왔다.태국의 똠양꿍보다는 연한 색의 국물.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한 술 크게 뜬 고래군의 표정이 묘하다.


“오빠! 맛이 어때?”

“음.. 먹을만 해”


내가 한 숟가락 거들어 맛을 보니,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들이 어우러진 맛에 고수의 맛과 향도 듬뿍.처음 접한 고래군에게는 꽤나 강한 맛일 것 같았다. 하지만 꿋꿋하게 먹는 고래군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본인이 시킨 음식이니 본인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뜨겁고 동남아향 가득한 똠양꿍 한 그릇을 고래군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싹 다 비워냈다.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뒤 고래군은 말했다.


“그냥 스테끼 먹을걸 그랬나?”






#3. 표정관리 - 고래군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고 지냈던 여행이 이제는 끝나간다. 우리는 일찍 일어나 공항이 있는 비엔티엔으로 돌아왔다. 시내에 들어서자 갑자기 신호등이 보인다. 낯설다. 여행 내내 길은 그저 오거나 가는 것일 뿐이었는데, 도시에 들어서자 가고 싶어도 멈춰야 하는 현실이 피부에 살을 맞대어온다.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멈추고 문을 연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내렸다. 조금 더 가다가 또 멈추고는 또 현지인 몇 명이 내린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우리도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에 내리자고 한다. 문득 창밖을 보니 익숙한 풍경이다. 여행자거리 근처인 것이다. 우리는 버스가 또 멈춰 서자 배낭을 챙겨 내렸다. 다른 여행자들은 그대로 터미널까지 가는 모양이다.


“여기가 어디지?”

“오빠 저기! 저기 라오플라자 호텔이다. 분수 근처에 있던 그거다!”

“그러네? 우리 완전 제대로 내렸네.”

“응! 끝까지 타고 갔어도 결국 다시 여기로 돌아왔어야 했던 거야.”


우리는 작은 식당에 앉아 바게트 샌드위치를 하나씩 먹고는 시내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공항을 지나가는 로컬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시내 터미널 앞 큰길가에는 뚝뚝이 운집해 있었다.목마른 나는 그녀를 이끌고 시내터미널 건너편 편의점에 들어섰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계산하면서 우리는 점원에게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잘 몰라요.’라고 말하는 점원의 표정이 묘하다. 마치 ‘나는 알지만, 말 안 해줄 거지롱!’ 하는 표정. 어이 표정관리 좀 하라고.우리는 시내 터미널로 들어섰다. 가장자리에는 주전부리 등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우린 상인들에게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물었다. 그런데 다들 고개를 저으며 ‘뚝뚝을 타야 해. 택시를 타.’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표정이 ‘나도 알지만, 안 알려줄 거야.’ 하는 거다. 이 사람들 정말 표정관리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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