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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Nov 30. 2016

안녕, 비엔티엔

2012. 라오스 ::: 비엔티엔

#1. 표정관리 II - 고래군


우리는 근처를 맴돌며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우리가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듣고는 멍한 표정만 짓는다. 헤매다 보니 결국 한 블럭 건너편 쇼핑몰 앞 버스정류장까지 와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정류장 노선도를 봐도 여기 글자만 있어 못 읽겠어. 어떡하지?”

“정 안 되면 그냥 뚝뚝 타야지 뭐.”


그 때 길 저 쪽에서 젊은 아가씨 한 명이 식료품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우리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물어볼까? 에이 아니다. 어차피 알지만 안 알려줘 표정 짓겠지 뭐.”

“그럼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안 되면 그냥 뚝뚝이나 택시 타요 우리.”


우린 그 아가씨에게 다가섰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요?”


의외로 이 젊은 라오스 아가씨는 흔쾌하게 대답해주었다.


“저쪽 건너편 터미널로 가면 탈 수 있어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수많은 버스들 중 무엇을 타야 하는가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아까 터미널에서도 결국 되돌아 나오지 않았던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시 두리번거리며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 모습을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것으로 보았나보다. 갑자기 그 아가씨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더니,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한다.우리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결국 다시 시내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그 아가씨는 우리에게 여기서 타면 된다고 말하고는 되돌아간다. 우린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전했다.


“컵짜이! 그런데 뭘 타야 하는지는 결국 모르는 거네 우리.”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터미널 안의 가게에 가서는 다시 버스편을 묻는다. 그러고는 나를 불렀다.


“오빠! 오빠! 이거 타면 된대! 이게 막차래! 얼른 와요!”

“어? 저기 저 버스? 저거래?”

“응! 이게 공항을 지나가는 건데 막차래!”


나는 신나게 달려서 그녀와 함께 버스에 올라섰다. 우린 요금을 내고, 나는 제자리에 서서 버스 안을 둘러보기 위해 제자리에 멈췄다. 버스 앞쪽 반쯤 되는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있다. 열 일고여덟쯤 되었을 스님과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 그리고 아저씨와 할머니 등이 자리를 채우고는 모두 함께 시선을 모아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그들을 구경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구경의 대상이 되어버렸다.우리는 버스 오른쪽 뒷바퀴 즈음에 있는 좌석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다. 버스는 상당히 깨끗하고, 한국의 시내버스보다 어딘지 모르게 더 새것같은 느낌이다. 조금 둘러보니 여기저기 일본어가 보인다. 그녀는 이 버스가 아마도 일본에서 사용하던 것을 수입해서 운행하는 것 같다고 내게 말해준다. 그러고 보니 시내에 돌아다니는 트럭 중에는 한국어로 된 스티커 등이 붙어있던 것들도 제법 보였었다. 그녀는 내게 이쪽 나라들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중고차를 수입해서 사용한다고 설명해주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우리 여행 중에서도 마지막 여행이 될 공항으로 떠나는 길. 창 밖으로 익숙한 여행자거리의 한 모퉁이가 스쳐지나가고, 이윽고 여행자들이 잘 접근하지 않는 진짜 이 도시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누군가는 버스에서 내리고, 또 누군가가 버스에 올라탄다. 우리가 앉아있는 왼쪽 대각선 앞쪽 좌석에는 한 젊은 아주머니가 아이를 안고 앉아있다. 문득 아이가 우리에게 손을 뻗으며 생긋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단속하며 우리를 흘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다시 앞쪽을 바라본다. 나는 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안녕. 너는 우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너 정말 예쁘다. 건강하게 커라. 건강이 최고다.”


그나저나 로컬버스를 이용하는 여행자가 없긴 한가보다. 버스에 올라서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우리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다음에 또 오게 되면 그 때는 당신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더 보여줘. 언젠가는 또 올 테니까.’






#2. 슝~ 그리고 힘나는 쌀국수 - 고래군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어디서 내려야 하는 거지?”

“나도 몰라요. 물어볼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버스 복도 맞은편에 앉아있던 안경을 낀 중년 남성에게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현지어로 물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경직되더니, 이윽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라오스 말로 우리에게 대답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다시 물었다.


“The airport!(디 에어포트!) Airport!”


그러나 아저씨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손도 절래절래.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오른손을 쭉 펴서 눈앞에 눕히더니 왼쪽 위로 밀어 올리는, 마치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의 제스처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슝~”


그러자 아저씨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졌다. 아저씨는 탄성과 함께 제스처를 따라하며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아! 슝~!!!”


큰 소리로 웃던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앉아있으라고 손짓하더니, 버스 기사에게로 걸어갔다. 갑자기 앞쪽이 웅성거린다. 가만히 지켜보니 자기들끼리 무엇인가 의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더니 아저씨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와서는 다시 한 번 앉아 있으라고 손짓하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슝~은 알아들었다! 당신 대단해!”

“어? 나도 모르게 갑자기 그렇게 나와 버렸어. 어떻게 또 알아들었나보네? 나도 신기하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공항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무사히 내렸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녀와 나는 공항으로 들어서지 않고, 동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일 큰 목적은 ‘비어남콩’을 찾기 위해서였다.


“오빠 저기 슈퍼마켓 있다. 우리 가 봐요.”


가게는 한국의 보통 크기의 슈퍼마켓과 같았다. 대신 더 빽빽하게 진열대가 들어차있어서, 진열대와 진열대 사이에 한 사람이 서면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커다란 배낭까지 메고 있으니. 그리고 비어남콩은 여기에 없다.


“오빠 잠깐 내 배낭도 가지고 나가 있어. 군것질거리랑 비어라오 내가 사서 나갈게. 여기 사람들한테 폐가 되어버리잖아 우리.”

“알겠어요. 천천히 사와.”


잠시 후 그녀는 과자와 건어물포, 그리고 비어라오를 사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어디보다도 여기가 싸!”

“그래? 아무래도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라서 그런 거겠지?”

“그럼요. 여행자 가격이랑은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런데 비행기 타기 전에 우리 밥 먹어야지. 슬슬 배고플 시간이기도 하고, 배가 고파질 거 같기도 하고.”


그녀가 웃으며 답한다.


“그냥 ‘밥 먹자.’ 하면 되지. 누가 국문과 아니랄까봐.”


우린 공항 입구 근처의 음식점에 들어섰다. 젊은 아가씨 세 명이 서빙과 주방을 함께 하는 모양이다. 가게 안에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길게 한 줄로 붙여놓고 식사를 하고 있다.세 명의 아가씨 중 얼굴이 가장 하얀색인 아가씨가 우리에게 쭈뼛거리며 메뉴판을 우리에게 건네준다. 라오스 문자로 가득한 메뉴판에 내가 난감해할 무렵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장 크게 표시해놓은 메뉴를 가리키며 두 개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먼저 와서 식사중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서빙하는 아가씨는 식사중인 사람들 쪽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물었고, 우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냥 저 사람들 먹는 거 달라고 했는데, 알아서 주겠죠 뭐.”

“그런가? 하긴 뭐든 먹을 수 있는 걸 내주겠지 뭐. 그나저나 여기 이런 모습이 진짜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겠지?”

“그렇죠. 여긴 외국인이 올 일이 없는 동네니까. 심지어 공항에서 내리면 곧바로 택시 타고 여행자거리 쪽으로 가버리잖아.”


속도는 공간을 소멸시킨다. 우리도 택시를 타거나 했다면 여행자거리와 공항 사이에 위치한 지금 이 공간은 우리에게는 세상에는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을 터이다. 이윽고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나는 탄성과 함께 음식을 맞이했다.


“쌀국수인데 뭔가 잔뜩 들어있어!”

“정말이네요. 이건 숙주나물이고, 이건 어묵 같은데? 이 빨간 건 뭐지?”


그것을 먹어본 내가 말했다. 


“선지? 선지다. 아 맞다! 루앙프라방 아침 시장에서 선지 만들어서 팔고 있었잖아. 그런데 당신 선지 먹어?”

“네 먹긴 먹어요.”

“그동안 우리가 먹었던 쌀국수는 여행자에게 보여주는 가짜였던 거구나.”

“확실히 그것만 먹어서는 일상생활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모자라지. 오빠, 이건 뭔가 힘나는 쌀국수지 않아?”

“그렇네! 힘나는 쌀국수!”






#3. 이제부터 긴 여행의 시작 - 미니양


힘나는 쌀국수를 먹고, 기운을 내 공항으로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했을 때처럼 떠나는 날도 까만 밤이었다. 이제 고래군과의 첫 해외여행이 끝이 나고 있었다. 나에겐 다시 돌아온 라오스, 반가워! 라는 느낌이었지만 처음 다른 나라의 땅을 밟아본 고래군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난 나의 첫 여행을 뒤돌아보게 됐다. 일정을 짜고, 숙소를 잡고, 함께 갔던 언니를 따라 무섭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한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 


하지만 다녀온 후, 여행에 빠져들고 여행의 기억으로 또다시 다음 여행을 준비했다. 고래군에게 어땠어? 라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은 없다. 여행자의 삶을 꽤나 많이 살아본 나를 따라 다니는 일이 힘들기도 했을테고, 즐겁기도 했을테다. 물론 남자친구라는 입장을 생각해 여자친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을거다. 그런 고래군의 마음을 알지만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기억 속에 즐겁게, 조금 더 좋은 추억이 자리 잡았기를 바랄 뿐.일상에 돌아와 지금까지도 그 때의 여행을 기분 좋게 추억하는 고래군을 보니, 뿌듯하다. 라오스로의 여행은 끝이 났지만, 우리의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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