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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Sep 05. 2016

방비엥에서의 깨달음

2012. 라오스 ::: 방비엥

#1. 조용한 방비엥은 아름답다 - 고래군


 우리가 머무는 숙소 승아룬은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널따란 공간이 있고, 무릎 높이의 큰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다. 벽 쪽으로는 긴 의자가 놓여있는데, 나는 그 의자의 딱딱한 감촉이 마음에 들어버렸다.그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멀리 커다란 고래 같은 산들이 구름과 함께 늘어서 있는 풍경이 보인다. 도마뱀은 마치 벽장식처럼 붙어있고,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는 산과 함께 나를 품는다. 방비엥의 어느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그 의자에 아침을 바라보기 위해 방에서 나가 그 의자에 앉았다. 빗줄기는 조금 거칠게 세상을 두드리다가, 이윽고 다시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내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저 자연스러운 소리만 가득 찬 세상 속에서 나는 딱딱하고 조금 차가운 의자에 옆으로 기대어 누웠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2. 하지만 살아가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 고래군


 얼마나 의자에 기대어 누워 있었을까? 그녀를 깨워 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멈추길 바란다 해도 그럴 수는 없을 테니까. 시간은 나 혼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 몸을 일으켜 세운다.그런데 갑자기 왼쪽 등허리 쪽이 뜨끔하다. 나도 모르게 목에서 소리를 내어버렸다.


“억! 아아아. 악!”


 뭐지 이건? 너무 아프다. 그냥 세상이 자기만의 소리로 가득할 수 있게 침묵하고 싶었는데, 역시 살아가는 데는 고통이 따르는 법인가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용한 세상에 내 존재를 알리고 말았다.잠시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한 그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쨌든 방으로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일어서보려 했지만, 결국 다시 의자에 주저앉아버렸다.


 이런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화기도 없고,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기에는 이른 아침이다. 게다가 창피하다.‘도와주세요 나는 허리를 다쳤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쩐지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다. 남자에게 허리는 굳건한 신체의 상징인데 말이야. 아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남자가 맞긴 한가보구나. 도움을 청했다 치자.‘어쩌다 다쳤나요?’ 하는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차가운 곳에 누워 있다 일어나보니 아프네요.’ 라는 대답을 한다면 국적을 떠나 누구나 나를 불쌍한 바보를 바라보는 눈빛을 건네줄 것이다.


 그래 차가운 기운이 근육을 단단하게 뭉쳐놓았는데, 그런 근육을 갑자기 기동하려다 보니 퉁증이 생긴 거니까 따뜻하게 해주면 괜찮아질 거야. 그런데 그러려면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내가 걷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전에 방에 숨고 싶다는 게 그 다음 문제이다.






#3.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 있는 사람 - 고래군


그런데 문득 조용한 세상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뭐 해요?”

“어? 그게 나 지금 허리, 아니 등 근육이 놀랐나봐. 일어설 수가 없네.”

“뭐? 진짜? 많이 아파? 어디 부딪혔어?”

“아니에요. 저기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데 갑자기 뜨끔하더니 그래.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왜 안 들어와요.”

“못 일어나겠어.”

“그럼 심한 거 아니야?”

“근육이 놀란 거니까 쉬면 나아질 거야.”


 갑자기 그녀가 ‘아하하하’ 소리를 내며 자기를 닮아 가냐며 웃는다. 걱정 뒤에 찾아온 안심이 웃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하긴 누가 봐도 내가 웃기긴 할 거야.’ 하고 중얼거리며 그런 그녀를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그녀는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이윽고 나는 그녀에게 기대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에 들어서며 그녀는 잠결에 내가 밖으로 나가는 기척을 느꼈고,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아 나왔다며 나를 침대에 눕게 도왔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왜 차가운 데 누워 눕기를. 특히 자고 일어나서 몸이 굳어있는 상태에서 그러면 안 되지.”

“여기는 서울처럼 병원이나 의원이 길 가다 발에 채일 만큼 많은 동네가 아니에요. 아프거나 다치면 안 되는 거 알아 몰라.”

“아침부터 이렇게 아프면 오늘 하루 그냥 누워 있기만 해야겠네. 기껏 여기까지 와서 아파야겠니?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정말.”


그래도 허리가 아파 주저앉아 있는 그런 모습을 그녀에게 들켜서 다행이다. 다른 사람이 보게 만드는 것보다는 낫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그토록 곤란한 상황인 걸 어떻게 알고 ‘짠’ 하고 나타나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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