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게 이상하지 않게 될 때
어린 아이들의 엄마, 아빠들!
아마도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이 영화를 찾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10월 들어 다수의 상영관들을 점령한 <아수라>를 제치고 랜섬 릭스Ransom Riggs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팀 버튼의 이름값일까? 아니면 포스터를 보고 가족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 덕분일까? 아마 대다수 상영관에 도배해놓은 <아수라> 관계자들과 극장 관계자들은 다소 초조할 것도 같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라는 사실이다. 결코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의 팀 버튼이 관객들을 위해 마련해온 판타지들이 대체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 영화도 결코 어린 친구들의 행복한 꿈과 동화같은 상상력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자 우선 이것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자. 이 영화의 제목은 원작 소설과 동일한 <Miss Peregrine's Home for Peculiar Children>이다. ‘독특한 아이들을 위한 미스 페레그린의 가정’이라고 해석하는 게 올바를 것 같다. 물론 한국 정서에는 그 아이들이, 아니 스크린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이상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준비한 이들은 그들에게 (마치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느낌마저 담긴) ‘이상한’이라는 수식어를 마련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이상하다는 데 주목한다.
사실 한국어의 ‘이상한’이라는 형용사가 워낙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근래 이 단어는 ‘주류담론의 경계 바깥의 존재’ 내지는 ‘수정해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메시지가 배후에 감춰져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뭐,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 아이들이 이상한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영화의 도입부에서 제시되는 사진들, 그리고 또 주인공 제이크(에이사 버터필드Asa Butterfield 분)에게 할아버지 에이브(테런스 스탬프Terence Henry Stamp 분)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분명 이상해 보인다. 1943년이나 그 이전에 찍은 사진이라는 설정, 즉 초창기 카메라로 찍었고 게다가 사진을 현상한 것도 아주 오래 되었다는 설정을 통해 가뜩이나 이상한 사진 속 인물들이 더욱 기괴해 보이는 것이다.
이상한 게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마법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Eva Gaëlle Green 분)이 마련한 가정(‘집House’이 아니라 가정‘Home’이다.)은 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이상한’ 사람이라며 소외당한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적어도 페레그린은, 그리고 에이브(주인공 제이크의 할아버지)는 그들을 결코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팀 버튼이 마련한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 역시 그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게 된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미쟝센이나 내러티브와는 대조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는 아마도 ‘외면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명제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어쩌면 혁명가의 비극적인 이야기
악몽을 구현하는 팀 버튼의 상상력이 집약된 대상은 바로 ‘할로우’(끝장나게 그로테스크한 그 괴물들)들이다. 사마귀의 그것처럼 길쭉한 낫처럼 생긴 두 팔(질럿?)과 입에서 길게 뻗어나오는 징그러운 촉수들, 그리고 입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져버린 미라mummy같은 얼굴. 기나긴 팔다리는 마치 거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이제부터 꿈에서 나를 뒤쫓는 괴물은 이런 모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산하고 기괴한 이들은 사실 페레그린과 같은 ‘임블린’*들이 돌보는 대상이었던 ‘이상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최종보스 악당인 바론(새뮤얼 잭슨Samuel L. Jackson 분)은 ‘임블린’들을 희생하여 영생을 얻기 위한 실험의 부작용으로 자신을 비롯한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 것이다.
※ 임블린: 작품 속에서 새bird로 변신하며, 시간의 반복구간을 설정한 공간을 분리해내는 능력을 지닌 여성 마법사들을 지칭하는 말.
자, 이 부분을 우리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선량한’ 임블린들을 희생한 악당이라는 대목 말이다.
납으로 만든 신발을 신지 않으면 허공으로 한없이 떠오르는 엠마(엘라 퍼넬Ella Purnell 분)를 비롯하여, 이상한 아이들은 임블린이 설정한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루프Loop라고 부른다) 속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영화에서 그 공간은 평화롭고 따사로운 햇살로 가득하며, 풍성한 식사와 즐거운 일상으로 가득 찬 하루로 묘사된다. 그리고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이 하루는 반복된다. 무한하게 말이다. 작품 속 페레그린의 루프는 1943년이었으니까, 대략 70년 넘는 긴 시간동안 단 하루가 반복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임블린들에게 감금당한 것은 아닐까? 벗어나고 싶지만, 루프가 아닌 외부 세상은 아이들에게 무섭고 외로우며 가혹한 공간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해, 그래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이유로 시간과 공간의 틈새에 갇혀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바론’은 더 이상 악당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지를 마련하고자 시도한 혁명가일 것이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실험한 것이지만, 결국 바깥에서 사람처럼 살고 싶었던 욕망이 더 컸던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아, 물론 그 방법은 확실히 과격했고, 부작용은 그로테스크했지만.
사진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cvPfgDrzq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