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암스테르담, 이렇게 복잡했나요? - 고래군
“오빠, 우리 기내식 없었어?”
“글쎄요? 나도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들었다가, 착륙하는 충격에 눈을 뜬 거라서…. 그런데 내릴 때 보니까 바닥에 빵봉지 같은 게 굴러다니기는 하더라.”
“배고프다. 졸립고.”
아까 새벽 리스본에서 첫 비행기를 타자마자, 우리는 정말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 요즘 몇 년 동안 항상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잠들어버리는 것 같다. 이륙하는 순간 중력이 나를 붙드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여기는 한 달 전에는 인천에서 긴 시간을 날아 새벽에 도착했던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Schiphol Airport이다. 그리 오랜 기억이 아닌데도 마치 몇 년이 지나고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느낌이다. 저번에는 지독한 빗줄기에 우박까지 떨어지는 고약한 날씨였는데, 설마 오늘마저 그런 것은 아니겠지? 오늘 우리는 아침 아홉 시에 여기 떨어져서 밤 아홉 시 비행기를 탈 때까지 한나절을 머물러야 한다.
공항 로비로 나오며 바깥을 내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하다. 누가 암스테르담 아니라고 할까봐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비에 흠뻑 젖어서 추위에 벌벌 떨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대신 세차게 바람이 불어서 추울 것 같기는 하다만…….
“나 여기 와본 적 있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라. 누나 지금 기분 안 좋다아.”
시답잖은 나의 농담에, 그녀는 눈썹 사이를 살짝 찡그리며 경고한다. 리스본을 떠나기 싫어 우울하다고 하더니, 거기에 더해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영 기분이 별로인가보다. 뭐 사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스히폴 공항에서 우리가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을 한동안 구경하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편 말고 버스편도 알아보러 공항 앞의 버스 정류장에도 가보기도 했다. 정류장 한편에는 버스 티켓을 파는 작은 차가 하나 있다. 그 안에 있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197번 버스를 타면 되기는 하지만, 대신 중앙역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의 박물관들이 있는 곳에서 타고 내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더군다나 차비도 기차보다 약간 더 비싸고 말이다. 일단 우리는 버스 대신 기차를 타고 시내로 향하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Amsterdam Centraal에 내리자, 급격하게 허기가 느껴진다. 비행기에서 깊게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아침식사를 못 했기 때문이다.
“오빠 나 배고파.”
“지금 당장 나에게 뭔가 먹이지 않으면 포악해질 테다!”
“까분다. 일단 저기 맥도날드 들어가 보자.”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우리는 입구 근처에 있는 작은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매장은 길쭉한 모양이었는데, 양 옆으로는 10대 후반 내지는 잘 쳐줘도 스물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한껏 멋을 내고 헤어스타일에도 나름 힘을 준 젊은 사람들 말이다.
그나저나 얘들 왜 이렇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리스본에 오래 있다 와서 그런가? 뭔가 옷차림이나 스타일이 좀 어색해 보이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편해 보이지 않고 영 어색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직장인들이나,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는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말이다.
어쨌든 간단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운하를 따라, 그리고 때로는 운하에 놓인 다리를 건너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운하를 빼고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자전거이다.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는 그리 많지 않은 대신,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자전거가 굉장히 많다. 특히 교차로에서는 빨간 불에 줄줄이 멈춰 대기하다가, 파란 불이 되면 일제히 달려 나가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런데 문득 젊은 남성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곁을 지나쳤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라? 쟤들 뭔데 자전거 타고 인도(人道)에서 놀고 있대? 자전거 도로 저기 있는데.”
“말하는 거 들어보니, 미국 애들이네.”
“어라? 쟤들 심지어 아침부터 술 마셨나보네? 아니, 밤새 마신 건가?”
“몰라. 알 게 뭐야. 저런 미국 놈들 따위.”
이상하게 우리가 여행을 다니며 만나는 미국 여행자들은, 특히 젊고 어릴수록 무례하거나 무개념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조용하고 점잖은 친구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공공장소에서도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대화를 하거나 기본적인 매너를 던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뭐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남의 눈치 안 보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뭔가 별로 예쁘게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기는 하다.
그나저나 이 동네 날씨도 우중충한데, 사람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길은 또 뭐 이리 복잡하고, 건물은 뭐 이리 답답하게 붙어 있는 거냐! 저번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한 달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2. 에필로그- 고래군
“우리 비행기는 이제 곧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결국 돌아오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게 원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있어야 할 곳으로부터 떠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우리 동네 그라싸Graça에 있는 미니프레쏘MiniPreço의 안경 낀 직원, 나는 남몰래 똘똘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그 친구가 문득 보고 싶다. 이름이 뭐였더라? 어느 새 낯이 익어서, 서로 눈인사도 나누고 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꽤 긴 여행이 될 것 같았는데, 결국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정말 짧기도 했다. 낯선 곳의 낯선 시간이 간신히 일상이 되고 익숙해지기 시작한 정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항상 낯선 공간의 낯선 시간을 여행하다가, 친숙해질 만큼 머물러보았으니 됐다. 어쩐지 이제 뭔가 돌아가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긴 기분도 들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늦은 오후 공항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의 창문 너머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복잡하고 빡빡한 또 하나의 일상이 그 모습을 보여준다. 붉은빛이 섞인 누런색의 뿌연 안개가 두텁게 지면을 덮고 있는 한국의 일상 말이다. 으으으으으으음……. 지금 저거 스모그야? 세상에…… 저런 공기로 내가 숨을 쉬어야 한다고? 아악!! 리스본 맑은 공기!!
‘우리 동네 그라싸Graça!!’
#3. 에필로그 - 미니양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이야기라. 이 이야기를 쓰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것은 꿈같았던 나의 포르투갈에서의 시간들이 모두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으니까.
시간은 어느 누가 붙잡아도 언제나 그렇듯 흘러가기만 한다. 그 시간과 함께 나의 여행도 끝이 났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어느새 두 달이 넘어가지만, 에필로그는 계속 미루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포르투갈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라고나 할까? 일상 속으로 돌아온 나는 정신없이 일상에 녹아들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을 살고 있다. 때론 웃으며, 때론 힘겨워하며, 때론 우울해하기도 하면서. 다만 포르투갈에서 돌아와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바쁜 일상 와중에도 문득문득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집, 우리 동네가 있다는 점이다. 한 달동안의 짧은 우리 짐, 우리 동네였지만 그 곳에서 만들어진 추억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언제든 다시 그 곳에 돌아가면 나를 기억해줄 것만 같은 그 곳을 떠올리면 슬며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언제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날까지 일상에서 잘 지내야겠다. 그래도 조금은 살 만해진 대한민국이 되었으니, 내 일상도 조만간 조금은 살 만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