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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흔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규칙

by 미니고래


오랜만에 캐리비안의 해적들이 다시 한국을 찾아 왔다. 전작인 네 번째 시리즈가 2011년에 나왔으니 말이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인지, 이번 작품에 대한 수많은 감상들이 벌써 쏟아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까지 영화의 줄거리나 단편적인 인상들을 소개하지는 않겠다. 대신 우리가 살펴볼 것은 이번 시리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고유의 몇 가지 문법이다.


1.

자, 우선 우리는 지금까지 잭 스패로우의 모험 이야기를 보고 듣는 동안 한 번도 등장인물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다치거나,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려져도 말이다. 이 규칙은 이번 시리즈에서도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 악당으로 선택된 캡틴 살라자르(하비에르 바르뎀 분)가 캡틴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분)의 선원들을 한 명씩 처형함으로써 그의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악당스러움을 물씬 내뿜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2.

두 번째 규칙은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신화 또는 환상이라는 영화 장치가 동원된다는 점이다. 이번 시리즈의 경우에는 캡틴 살라자르와 그의 선원들, 그리고 배가 나타나는 형식이 전적으로 이 요소에 기대고 있다. 이번 모험의 목표인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물론이고 말이다.


이 두 가지 규칙 덕분에 전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후속작에 짜잔~하고 다시 등장시키는 문제는 굳이 개연성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전편에서 죽은 줄 알았다고? 아니야,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게다가 바다의 신비와 환상, 그리고 마법과 주술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죽은 자도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이미 헥터 바르보사도 한 번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잖아?


따라서 이번 시리즈가 한 번 상영될 때마다 객석 바닥에 몇 리터의 눈물을 흘러내리게 만들어버린 우리의 캡틴 바르보사는,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죽음에 대해 감동은 하되, 너무 슬퍼하지는 않아도 좋을 것 같다.





3.

세 번째 규칙은 잭 스패로우가 결코 내러티브의 온전한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갈등의 중심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있다. 일단 1편 ‘블팩펄의 저주’부터 3편 ‘세상의 끝에서’까지는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링 분)과 윌 터너(올랜도 블룸 분)의 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나마 4편 ‘낯선 조류’에서는 비로소 주인공이 되기는 했지만 반쪽에 그치고 말았다. 서사의 다른 반쪽은 선교사 필립 스위프트(샘 클라플린 분)와 아름다운 인어 세레나(아스트리드 베르제프리스베 분)의 러브스토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언데드Undead의 상태로 그에게 악의를 품고 갈등을 형성하는 캡틴 살라자르와의 분쟁 역시 결국 헨리 터너(브렌턴 스웨이츠 분)와 카리나 스미스(카리나 바르보사, 카야 스코델라리오 분)가 주인공들이 되어 해결하는 서사로 볼 수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결국 잭 스패로우는 한 번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던 셈이다. 대신 그는 관객들을 그가 경험하는, 주인공들의 모험으로 안내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즉 영화의 서술자와 비슷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의 배 ‘블랙 펄’은 우리를 태우고 캐리비안 바다에서 일어나는 ‘환상적’ 모험을 향하는 배다. 그러니까 독자 또는 관객이 앉아있는 극장이 바로 블랙 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잭 스패로우를 반드시 ‘캡틴(선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yrXnrwf08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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