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언제나 무대에서 완성된다.
1.
지금보다 훨씬 어린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한참 여러 극작가들의 희곡집들을 찾아 읽던 때였다. 가지런히 서가에 들어차 있는 극작가들의 작품집들, 영화 시나리오들의 행렬을 손가락으로 톡톡톡 제목들을 훑으며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오태석의 희곡집을 펼쳐본 적이 한 번 있었다. 그 책을 펼쳐 제일 먼저 읽은 것은 대표작으로도 유명한 <태(胎)>였다. 그리고 고백하지만, 나는 간신히 세 페이지를 읽고는 그의 희곡집을 그대로 덮어 다시 서가에 꽂아 넣었다.
그때 당시 나는 ‘좋은 대사란 울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일상적 언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오태석의 대사는 소름이 끼칠 만큼 유치하게 느껴졌고, 심각할 정도로 뚝뚝 분절된 것처럼 읽혔다. 게다가 플롯의 앞과 뒤는 각자 분리된 채 서로가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그 때 당시의 나에게 있어,
그의 텍스트는 정말 ‘읽기 힘든’ 것이었다.
2.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무대 위로 다시 올라왔다. 2017년 5월 28일부터 6월 1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오랜만에 찾은 명동은 여전히 사람이 많다. 한국인도 많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다. 어쨌든 사람이 많다. 평소라면 복잡해서 싫었겠지만, 오늘은 길을 메운 사람들로부터 활력을 느낄 수 있어서 오히려 메마른 가뭄 속에 숨어버린 촉촉한 생기를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다.
객석에 앉아 연극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무대 위에 ‘꽁지머리 총각’과 ‘갈머리집 처녀’를 비롯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덜컥 겁이 났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오태석의 희곡에 대한 낯설고도 두려운 느낌 때문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 마법이 펼쳐졌다.
그들의 대사는 여전히 일상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대 위에 나타나는 서사의 흐름 역시 현실적이지 않았다.
마치 ‘연극’처럼 말이다.
이러한 점은 무대에 나타나는 온갖 기호들, 즉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과 대사들, 의상의 색채와 스타일, 그들의 분장은 물론이고 모든 소품과 장치들, 음향효과를 비롯한 모든 것들, 모든 기호들이 그러했다. ‘연극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가 스스로를 ‘마치 현실인 것처럼’ 꾸미는 현상을 ‘극적 환상’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잘 짜인 영화와 연극은 독자 또는 관객이 자신의 의식을 그 서사 안으로 내던지는, 이른바 스스로 ‘몰입’하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반면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극적 환상을 배제한 연극적 장치들이 비교적 날것 그대로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직접 전달되고 있었다. 극적 환상을 걷어냄으로써 무대 위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연극’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오태석의 이러한 특징은 보통 서사극과 같은 실험적인 연극에서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이른바 ‘낯설게 하기’와는 조금 다른 묘한 구석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낯설게 하기’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독자 또는 관객들이 무대 위의 상황에 대해 자발적인 비판적 사고와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인데, 반면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히려 극적 환상을 배제한 상태에서 독자 또는 관객의 의식이 무대 안으로 흡수되어버리는 효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극적 환상이 제거되어 발생한 그 빈 공간은, 대신 독자 또는 관객들의 상상력이 커지고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 다시 말해, 표현주의 연극들처럼 최소한의 소품들을 제외하고 모두 덜어낸 무대의 빈 공간은 몇 가지 색채, 배우들의 몇 마디 대사를 통해 독자 또는 관객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가득 채우는 ‘연극적’ 경험을 하게 만든 것이다.
3.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다시 나는 명동의 분주한 길거리에 던져졌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와서 ‘나’라는 지점을 지나쳐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윽고 나도 걸음을 옮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연극은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오태석의 작품들은 그렇겠다.’고 말이다.
텍스트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난 극작가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강백이나 이근삼 등의 희곡들, 노희경의 시나리오 등과 같이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그런 텍스트들이 좋은 작품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이라고 굳게 믿어 왔다.
그러나 희곡이나 시나리오가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 등으로 실현되기 전에는 언제나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진다는 장르적 특징을 떠올려본다면, 어쩌면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 때문에 말이다.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exEBzcLxl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