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Jun 21. 2017

연극 <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

연극에 대한 두 가지 입장


 2017년 6월 1일부터 25일까지 연극 <안티고네>(극단 떼아뜨르 봄날, 이수인 각색 및 연출)가 나온 시어터를 통해 무대 위에 올라오고 있다. 이번 무대는 ‘그리스의 여인들’이라는 기획 시리즈 중 첫 번째에 해당하며, 오는 8월에는 두 번째인 <그리스의 여인들, 트로이의 여인들>이 준비되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작년에 있었던 ‘그리스의 연인들 3부작- <메데아 v.s. 이아손>, <오이디푸스 with 이오카스테>, <페드라 without 히폴리터>’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작년 시리즈가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사랑과 애정’을 주제로 삼았다면, 올해의 주제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는 이 연극에 대해 다음 한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번 연극 <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는 원작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대한 사전 지식,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 등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의 유무가 독자 또는 관객의 유형을 가르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안티고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대중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독자 또는 관객의 입장이고, 두 번째는 연극학 내지는 문학 또는 희곡을 전공하거나 적어도 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 또는 관객의 입장이다.


희극과 비극의 압축적 교차, 그리고 크레온 왕의 압도적인 연기


 한 시간 남짓의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독자 또는 관객은 꽤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코러스의 긴 독백, 몇 차례의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 그리고 희극(comedy)과 비극의 교차가 몇 차례 이루어지면서 독자 또는 관객은 꽤 많은 서사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에서 빠른 호흡과 짧은 문장에 익숙한 일반 관객은 다소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반면 무엇보다도 독자 또는 관객을 사로잡은 것은 아마 배우들의 뛰어난 기량이었을 것이다. 원작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서사의 중심축은 ‘안티고네(고애리 분)’와 크레온 왕이 함께 맡고 있다. 안티고네는 죽은 오빠를 장례 지낸다는 점에서 하늘의 법을 상징한다. 혈족 또는 핏줄은 운명 내지는 신의 의지를 통해 정해지는 것이고, 죽은 이를 장례 지내는 것은 일종의 ‘순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크레온 왕은 인간의 법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인간의 법은 국가 내지는 사회, 또는 인위적인 것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점은 <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대장치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두 개의 테이블과 몇 개의 의자들만 채움으로써 간소화된 무대 구성은 독자 또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에 더욱 집중하게끔 만든다.


 그러므로 배우들의 표현, 독자 또는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 더욱 중요해진다. 일단 안티고네는 외적으로 본다면 천륜에 따르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고민과 의심 등이 내재하는 인물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언제나 ‘신념과 의심’, ‘결단과 고민’이라는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요소가 동시에 개입하고 공존하게 된다.

한편 크레온은 ‘왕’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국가 권력, 또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상징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근원적으로 그 역시도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크레온’은 국가라는 거대 담론과 개인이라는 소수 담론이 상보배타적으로 결합한 기호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서 독자 또는 관객이 이 무대의 시간을 꽤 길게 느끼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복잡하고도 강렬한 정서적 현상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연극적 구성 또한 무대의 시간을 (긍정적인 의미로) 길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침묵과 단절이라는 연극적 장치를 통해 분할된다는 점에서 무대의 시간을 (부정적인 의미로) 길게 느끼게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안티고네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기량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크레온’ 역할을 연기한 배우 송흥진의 열연이 눈부신 무대였다. 그는 이강백의 <심청>(이수인 연출)에서 선주(船主) 역할을 통해 2017년 제 4회 서울연극인대상에서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에서 크레온 왕은 기쁨, 희망, 유쾌함 등의 긍정적 감정 상태와 극도의 증오와 분노, 두려움, 슬픔 등의 감정 상태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해야만 하는, 상당히 어려운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송흥진은 강렬하면서도 서로 다른 감정들 사이를 횡단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55분짜리 연극 강의


 한편 전공자 내지는 어느 정도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독자 또는 관객의 경우, <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를 통해 ‘연극의 총체성 실험’을 경험할 수 있다.


 신이 내린 운명으로부터 비롯되는 비극성이라는 고전적 요소가 있다. 동시에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문=아버지’와 갈등하는 부분은 셰익스피어의 흔적이 묻어난 것처럼 보였다. 청춘의 사랑, 모성애, 그리고 부부 간의 사랑이 죽음을 통해 파국으로 치닫는 구성은 어쩌면 한국적 멜로드라마처럼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인물들 간의 외적 갈등, 한 인간과 국가, 인간과 운명 사이의 외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문학적 갈등을 모두 유형별로 마련했다. 독백과 방백, 대화 등 대사 역시 종류별로 모두 준비했다.


 고전 연극 요소인 ‘코러스’가 등장하고, 압축과 반복 등을 통해 운율을 살린 ‘시(詩)적 대사’도 발견할 수 있다. 테이블과 의자 외의 소품을 생략하는 무대 구성, 등장인물이 일종의 서술자 역할을 하는 점이나 ‘편집자적 논평’ 등은 표현주의나 서사극적 요소로 볼 수도 있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가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부분은 잠시 부조리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들게 만든다. 스탠드마이크와 배우들의 의상, 조명과 무대 배경의 반짝거리는 실을 길게 늘어트린 ‘발(簾, string curtains)’은 무대 공간을 1950~60년대 재즈 스테이지(Jazz Stage) 내지는 현대적 뮤지컬의 공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 비극은 연극은 물론이고 거슬러 올라가 근대적 문학의 기원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가 ‘근대적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쩌면 ‘근대 예술’ 내지는 ‘근대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구성체의 기원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는 무대 위에 인간의 문화와 역사를 아우르고자 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Theatrum Mundi’라는 말의 뜻 그대로 말이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5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압축적으로 이루어진다. 마치 연극에 대해 소개하는 ‘강의’ 시간처럼 말이다.


사진출처 :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037581&memberNo=2060019



매거진의 이전글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