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자리
김종관 감독의 새 영화 <더 테이블>이 2017년 8월 24일부터 관객들 앞에 선보인다. 어느 길에 있는 한 카페cafe의 통유리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가 떠나는 사람들의 네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일단 이번 작품에서 먼저 눈여겨볼 것은 김종관 감독의 고유한 스타일 두 가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이다. 옴니버스 형식이라는 것이 첫 번째이고, 철저하리만큼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이 두 번째다. 특히 옴니버스 형식뿐만 아니라 플롯의 측면에서도 <더 테이블>은 전작인 <최악의 하루>(2015)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전작이 길 위에서 하루를 보내며 일어나는 이야기라면, 이번 영화는 ‘카페’라는 고정된 공간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간, 네 가지 이야기
영화 <더 테이블>의 플롯은 일단 시간축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 낮, 저녁, 밤이라는 하루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늦은 아침이다. 사실 이제 곧 점심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점에서 본다면 아침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색한 그런 시각에 두 남녀가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는다. 인기 배우가 된 여자 ‘유진(정유미 분)’의 앞에는 커피가, 그리고 그녀의 앞에 앉은 옛 남친 ‘창석(정준원 분)’의 앞에는 맥주가 담긴 컵이 놓여 있다.
그들은 테이블을 마주하고 함께 앉아있지만, 그들의 대화는 테이블 주변을 계속 맴돌기만 한다. 마치 커피와 맥주가 보여주는 이질성처럼, 이제는 여자와 남자는 더 이상 같은 곳에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낮이다. 카페 앞 통유리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투명하게 보일만큼 햇살이 강한 한낮에, 어딘지 모르게 시선을 자꾸 피하는 여자 ‘경진(정은채 분)’과 이제 막 여행에서 돌아온 남자 ‘민호(전성우 분)’가 앉았다. 그들은 초콜릿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사이에 두고 함께 커피를 선택했다.
어느 날 스쳐 지나듯 하룻밤을 함께 했던 두 사람, 남자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여자는 그 남자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여자는 끊임없이 시선을 여기저기 흩어 놓지만, 남자는 줄곧 여자를 바라본다. 결국 여자는 테이블로부터 떠나려 하지만, 남자가 그런 그녀를 붙잡는다. 그리고 초콜릿케이크와 잘 어울리는 두 잔의 커피처럼, 두 사람은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기로 한 모양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저녁이다. 세상을 노을빛으로 물들이는 해질녘, 젊은 여자 ‘은희(한예리 분)’와, 이제 젊지는 않은 여자 ‘숙자(김혜옥 분)’가 테이블을 찾아왔다. 마치 순수한 커피에 우유를 뒤섞어버린 라떼처럼, 두 사람도 결코 ‘순수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결혼과 관련된 사기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희의 이번 ‘작업’의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친정엄마 역할을 숙자에게 의뢰하는 은희의 ‘작업동기’가 바로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은희는 가짜 엄마 숙자에게서 진짜 엄마를, 그리고 숙자는 가짜 딸 은희로부터 진짜 딸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거짓과 가짜 뒤에 감춰져 있던 것이 그 무엇보다도 진실한 감정들이라는 여운이, 테이블 위의 라떼처럼 부드럽게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스며든다.
네 번째 이야기는 밤이다. 통유리창 바깥으로는 비가 내린다. 이제 곧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 분)’은 홍차 한 잔을, 그리고 그녀와의 결혼을 망설이다가 그녀를 놓친 ‘운철(연우진 분)’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테이블을 찾았다.
뭐, 그런 그들의 관계는 마치 그들의 홍차와 커피처럼 이미 한참 전에 식어버린 것 같다. 어쩌면 그녀는 마지막 남아있던 감정의 찌꺼기를 마저 털어버리기 위해 테이블을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카페의 테이블, 세상이라는 무대
이 영화를 보면서 독자 또는 관객들이 염두에 둘 것은 사실 시간축보다는 ‘공간성’에 있다. 일단 영화 속 공간인 ‘카페’의 위치가 중요하다. 이 카페는 어느 ‘길’ 옆에 있다. 얕은 경사를 둔 이 오르막길은 동네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지나가기도 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보듯,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전에 잠시 찾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어딘가에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독자 또는 관객들이 언제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이른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공간인 것이다.
이렇게 강조된 ‘일상적 공간성’ 위에, 다시 한 번 영화의 공간은 ‘테이블’로 압축된다. 영화의 이야기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인물들이, 그들이 선택한 무엇인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테이블에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이 정리되고 치워지면, 그들의 이야기도 마무리된다.
결국 카페라는 ‘일상성’ 속에 마련된 테이블이라는 ‘무대’는, ‘세상은 곧 무대Theatrum Mundi’라는 관념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은 어디 있는가?
‘하루’라는 시간성과 ‘일상적 무대’라는 공간성의 결합에 의해, 결국 독자 또는 관객은 그들이 결국 그 카페에 앉아있는 손님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이 점은 줄곧 카메라가 인물들을 응시하는 주체의 위치를 통해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영화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시선(카메라)의 주체의 위치가 카페 안쪽 어딘가라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시선 주체의 뒤편에서 바라보고 있는 독자 또는 관객의 위치는 카페의 가장 깊숙한 자리가 된다. 이제 독자 또는 관객이 앉아있는 극장의 의자는 카페의 또 다른 테이블 옆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독자 또는 관객의 위치가 결정된 이후,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제 각각의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 여성 인물들의 뒷머리를 가만히 응시하는 장면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녀의 머리모양, 옷차림, 그리고 어깨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테이블의 모습은 그/녀의 결심이나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녀들이 테이블이 앉는 이유는 세상이라는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 다시 말해 결코 테이블에 앉아있는 타자에게 드러내지 않는 이야기와 생각, 그리고 감정들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독자 또는 관객들이 그/녀의 뒤편에서 응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다음 장면을 통해 영화의 객석의 위치가 극장에서 카페로 이동하고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이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로 다시 되돌아 갈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이 ‘카페’ 공간에는 등장인물들과 몇몇 손님들, 그리고 극장이라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관객들 말고도 다른 한 명의 등장인물인 ‘카페 주인’이 있다. 그/녀는 ‘테이블’이라는 무대를 준비하고, (보이지는 않지만) 이야기 속에 줄곧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마지막에는 테이블에 흩어진 이야기의 흔적들을 정리한다.
영화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페 주인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카페공간 그 자체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 테이블>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서 카페 주인처럼 보이는 여성의 뒷머리를 응시하는 이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카메라가 응시하는 카페주인 그/녀의 이미지는 귀고리가 보여주는 원 속의 휘도는 나선 형태 이미지와 결합된 뒷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지런하게 나열된 사각형 서랍들에 매달린 동그란 고리들의 집합적 이미지로 연결되면서 카페의 공간성이 구축되기 시작하는 셈이다.
뭐랄까, 아마 영화 <더 테이블>의 아이덴티티가 그 장면에 응축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p.s.
롱테이크(Long-take) 샷으로 인물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장면들이 많다. 쉽게 말해 카메라가 인물들의 표정과 몸집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다. 덕분에 배우들에게는 쉽지 않은 연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각각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다. 아마 개개인마다 호불호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숙자(김혜옥 분)’가 보여주는 연기의 결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바꿔 말하면 나머지 다른 역할들의 경우에는 다소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요구되는 난이도가 좀 높기는 했으니까 뭐……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f5osNHiRj_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