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판단해보시오.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미국의 극작가 레지널드 로즈(Reginald Rose)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동명의 드라마 각본을 극작가가 각색하여 희곡으로 발표하고, 이후 다시 영화로 각색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게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배심원제도를 다룬 법정드라마로, 일급살인죄로 기소된 한 열여섯 살 소년의 재판이 모두 끝난 직후 평결을 위해 모인 열두 명의 배심원들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연극으로 우리 앞에 찾아왔다.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극단 산수유, 류주연 연출)이 작년과 올해 공연에 뒤이어, 2017년 12월 6일부터 31일까지 물빛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공연은 10월과 11월에 걸쳐 공연된 <고비>(古碑, 이양구 작, 류주연 연출)에 이어 극단 산수유가 올해 연말을 맞아 마련한 [2017년의 마지막, 극단 산수유 연극 시리즈 3부작]의 두 번째 공연이기도 하다. 세 번째 작품 <경남 창녕군 길곡면>도 곧 무대를 통해 우리 앞에 선보일 예정이다.
법정 바깥의 법정드라마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의 입체성을 가지고 서사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독자 또는 관객에게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법정드라마’라는 점으로부터 비롯된다. 독자 또는 관객은 인물들 사이의 논쟁 사이에서 어느 순간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연극은 스스로의 서사에 몰입할 것을 요구하는 대신, 독자 또는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서사극적인 요소는 법정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지는 고유한 특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처음 열두 명의 배심원 중 열한 명이 유죄임을 확신한다. 무대 위에서 피고인 열여섯 살 소년의 범죄는 매우 명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단 한 명의 배심원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쉽게 매듭지어질 것만 같았던 평결 과정에 잡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하나의 생명이 가진 무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사색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고민은 연극이 진행되면서, 이윽고 독자 또는 관객의 몫이 된다. 과연 소년은 유죄인가. 그리고 그 소년이 유죄라 하더라도, 배심원 또는 자신에게 그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고민 말이다.
원작과 달라진, 지금-여기 한국
흥미로운 점은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원작과 달라진 점이다. 1950년대 중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원작은 열두 명의 ‘남성’들을 무대 또는 스크린에 배치시킨다. 그런데 연극은 이야기의 배경을 2017년 한국으로 가져오면서, 그 안의 몇몇 인물들을 여성으로 바꾸기를 시도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효과가 발생한다. 단적인 예는 토론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며 무례하기까지 한 ‘남성들’에게서 나타난다. 이른바 꼰대 기질을 잘 보여준 인물(홍성춘 분)과 ‘야구남’(강진휘 분)은,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과 행동마저 거침없이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이 연극에서 배심원장을 맡아 전체 회의를 진행하는 ‘유치원교사’(김애진 분)는, 원작에서는 사실 고등학교 풋볼 코치라는 점이다. ‘힘세고 거친 남성들의 스포츠’라는 미국의 풋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본다면, 꼰대 남성의 이런 여성 비하적 발언과 행위는, ‘여혐’, ‘XX녀’ 등의 어휘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한국 사회의 정서구조가 반영된 이미지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연극이 독자 또는 관객들로 하여금 페미니즘이나, 또는 법과 정의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이나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인간의 생명이 가진 무게, 법과 정의 사이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모순과 갈등에 대해 인식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진출처 : http://www.imgrum.org/tag/12%EC%9D%B8%EC%9D%98%EC%84%B1%EB%82%9C%EC%82%AC%EB%9E%8C%EB%93%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