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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an 30. 2018

영화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마음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진정함에 대하여


    

 일본 애니메이션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가 2018년 1월 31일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감독인 ‘유아사 마사아키湯浅政明’는 약간은 비현실적이지만 역동적이고 몽환적인 캐릭터로 유명한데, 이번 작품에서도 인어의 신체 변환 이미지 등을 통해 그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인어의 꼬리 지느러미가 이족 보행 형태로 변하는 과정’을 세세하기 묘사하는 대신, ‘그냥 그렇게 변하게 그리면 돼. 애니메이션이잖아’ 같은 느낌이랄까.     


일본의 ‘인어’는 요괴     


 우리가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를 보기 전에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인어(人魚にんぎょ)’는 수많은 요괴 중 한 종류라는 점이다. 일본에서 전승되는 ‘인어’의 이미지는 물고기에 인간이나 개, 원숭이 형상의 대가리나 상반신이 달린 요괴로 나타난다. 에도 시대에 간행된 요괴 그림책 《今昔百鬼拾遺》(鳥山石燕, 1781)에 수록된 저 인어 그림처럼 말이다.    

                  


 일본에서 ‘인어’에 대해 전승되는 내용은 각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 ‘인어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든가 ‘인어의 피는 극독이다’든가, 혹은 ‘인어는 죽지 않기 때문에 인어의 날고기를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와 같은 내용이다. (영화 〈음양사陰陽師〉(2001)에서도 ‘인어의 고기를 먹고 죽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     


 일본의 이런 문화를 이해해야만 비로소 마을 사람들이 왜 그토록 ‘인어’들을 적대하고 두려워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서 마을 사람들은 ‘인어’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재앙의 근원이라는 믿음 때문에 두려워하는데, 이 점은 특히 나이 든 세대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작품 속의 ‘인어’들이 강아지 등 온갖 동물 형태로도 잔뜩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칭은 ‘人魚’지만 전승설화 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인간 형태 외에도 동물이나 괴물의 형태도 있는 것이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장소는 쇠락해가는 어촌 마을 ‘히나시쵸日無町’다. 지명 자체가 ‘빛이 없는 마을’ 내지는 ‘해가 뜨지 않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인어’들은 어스름한 정도의 빛은 괜찮지만, 햇살만큼 밝고 강한 빛에는 매우 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태양 아래 그들의 몸은 불타올라 사라진다. 그들은 빛을 거부하고, 또한 빛으로부터 거부당한다. ‘빛-어둠’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상징체계에 의해, 이들 ‘인어’들은 ‘야만적’이고 ‘부정적’인 존재이며, ‘재앙’과 ‘죽음’에 속하는 존재가 된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은 배제하고 멸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제목의 ‘새벽’이라는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새벽은 밤과 낮의 경계를 말한다. 빛과 어둠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양쪽 모두를 포용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원제 〈夜明け告げるルーのうた〉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새벽을 지시하는 ‘夜明け’라는 일본어 자체가 ‘밤+밝아짐’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음악, 빛과 어둠을 새벽으로 만드는     


 공식 홈페이지(http://lunouta.com)에 기록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학생 소년 ‘카이海’(시모다 쇼타下田翔大 분)는 부친과 우산장인 조부와 함께 셋이 살고 있다. 도쿄에서 살다가 부모의 이혼으로, 그들의 고향인 어촌마을 '히나시'에 온 것이다. 충격이 가시지 않아 학교에서도 소극적인 카이의 유일한 낙은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뿐이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인 ‘고쿠부国夫’(사이토 소마斉藤壮馬 분)와 ‘유호遊歩’(고토부키 미나코寿美菜子 분)가 그들이 만들고 있는 '밴드 세이렌'에 들어오라고 권한다. 마지못해 그들과 연습을 위해 인어섬에 간 카이와 친구들 앞에, 인어소녀 '루'(타니 카논谷花音 분)가 나타난다. 카이는 루와 함께 하며 조금씩 감춰둔 마음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옛부터 '히나시'에서 인어는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 마을을 덮친 재앙 앞에서 카이가 외치는 진심은 마을을 구할 수 있을까?     


 영화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가 독자 또는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뭐랄까 좀 뻔한 이야기랄까, ‘갈등과 분쟁을 멈추고, 이해와 용서로 서로를 사랑하자’와 같은, 아무튼 비교적 단순하고 명료한 편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Love & Peace’다.   

  

 그런데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독자 또는 관객은 그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등장인물들과 함께 웃다가, 어느 순간 슬픔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며 분노하다가, 박수 치면서 감동한 채로 극장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 이유는 단순한 주제를 전달하는 세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 번째는 감춰진 메시지의 존재이고, 두 번째는 바로 진정성, 그리고 세 번째는 성장 서사라는 이야기 구조다.     


 어촌마을 ‘히나시’에서 ‘인어’는 재앙을 가져오는 부정한 존재들이며, 따라서 배척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어 소녀 ‘루’가 원하는 것은 그저 ‘모두 함께 친하게’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을에 찾아온 재앙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바로 밴드 세이렌의 세 소년들과 ‘인어’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음악’과 ‘사랑’이다. 선량하고 귀여운 인어 ‘루’와 주인공 ‘카이’의 공통점은 바로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인어’가 나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 단순한 서사를 통해 감독인 유아사 마사아키는 ‘Love & Peace’라는 표면적 주제를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그 속에 또 하나의 메시지를 감춰둔 것처럼 보인다. 서사를 되새겨보면 비로소 떠오르는 그 메시지는 바로,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금기’로서 관습화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 소년 ‘아시모토 카이足元海’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하는 ‘노래꾼의 발라드歌うたいのバラッド’는 상대에게 절실한 사랑을 고백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루’와 인어들이 그 노래를 통해 다시 힘을 되찾아 ‘재앙’을 물리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중심 서사다. 그런데 카이가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갈라지는 것처럼 들린다. 버겁게 느껴진다. 결코 가수처럼 노래를 잘 하는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투박한 노랫소리가 독자 또는 관객의 내면에 울림을 만들어낸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애타고도 절실한 목소리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인 것이다.     


 독일에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이라는 용어가 있다. 여기에서 ‘Bildung’은 일단 ‘교양’이라고 번역되기는 하지만, 사실은 가치 있는 교훈이나 삶의 진리 등의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성장서사라고도 번역하는 ‘빌둥스로만’은, 단지 어린 사람이 시간이 지나 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깨닫고 인격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고 도약하는 내용을 가진 서사를 의미한다. 결국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카이’와 친구들의 성장서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은 무엇인가를 깨닫고 한 단계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성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재앙’의 형태가 ‘쓰나미’라는 점도 흥미롭다. 확실히 일본인에게 있어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된 공포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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