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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30. 2018

영화 <레이디 버드>

미국인에게는 ‘응답하라 2002’

 2018년 4월 4일, 영화 <레이디 버드>가 개봉한다. 아카데미나 골든 글로브 등 수많은 시상식에 여러 부문에 걸쳐 노미네이트 됐고, 골든글로브에서는 여우주연상과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도 획득했다. 덕분에 연출과 각본을 맡은 영화배우 그레타 거윅(Greta Gerwig)도 자신의 영화적 재능을 대중들에게 분명하게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청소년/여성의 성장 서사     


 일단 이 영화의 서사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춘기 청소년의 성장과 여성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나’의 정체성을 찾는 서사로 나타나고, 후자는 ‘여성’의 일상적인 동시에 ‘사실적’인 서사로 나타난다. 이 점은 영화 제목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크리스틴 맥퍼슨(서어샤 로넌Saoirse Ronan 분)’은 영화 전체의 표제로도 드러나는 ‘레이디 버드’라는 명칭으로 자신을 정의 내린다. 독자 또는 관객은 어렵지 않게 ‘레이디’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상징으로, 그리고 ‘버드’를 억압이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자유로움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다소 유치할 수도 있는 이 표제는, 사춘기 청소년이라는 크리스틴의 캐릭터와 맞물려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크리스틴’이 영화 전체의 ‘서술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거윅 감독은 그/녀가 겪는 사건과 갈등, 그리고 감정의 움직임에 대해 줄곧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영화 주체는 크리스틴의 서사를 보여준다기보다는, 독자 또는 관객들의 곁에서 함께 지켜보고 크리스틴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게 된다.     


 이 점은 영화가 공간을 나타내는 점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처음 장면에서 크리스틴이 엄마인 ‘마리온(로리 멧카프Laurie Metcalf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크린에 나타나는 새크라멘토의 풍경과,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틴이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풍경의 이미지가 크게 차이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두 장면 사이의 차이는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에게서 나타난다. 느닷없이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레이디 버드’와, 이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독백하는 ‘크리스틴’으로 말이다.     



응답하라 2002     


 한국에서 살아왔고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별다르게 다가오지 않았겠지만, 영화 <레이디 버드>는 영화판 ‘응답하라’ 시리즈이기도 하다. 시공간적 배경으로 나타나는 2002년 미국의 일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버블 붕괴로 인한 주가 하락과 불황이 야기한 실업률 증가는, 아빠 ‘래리(트레이시 레츠Tracy Letts 분)’와 오빠 ‘미구엘(조단 로드리게스Jordan Rodrigues 분)’의 실직 상태로 나타난다. TV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소식이 새어 나온다.     


 덕분에 영화 <레이디 버드>는 2002년 당시를 살았던 (미국의)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는, 그 당시 ‘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80년대 중반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한국의 독자 또는 관객들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났을 것이다.     



여백 있는 연기     


 영화 주체의 거리두기 방식은, 서사에 ‘현실’ 그 자체를 담아내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레이디 버드>의 서사는 특별하게 ‘인과성’을 중시하지 않는다. ‘줄리(비니 펠드스타인Beanie Feldstein 분)’가 별다른 이유나 계기 없이 틀어진 감정을 풀게 된다거나, ‘크리스틴’의 첫 연애가 실패하는 이유, 그러니까 ‘대니’가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이 급작스러운 식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삶 그 자체가, 그러니까 그들의 연애나 다툼, 사랑과 우정 등이 사실은 특별한 원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현실이 그런 거니까. 별다르게 특별한 이유나 계기 없이도 삶은 다음 시간과 사건으로 건너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는 좀 낯선 느낌     


 이렇게 ‘일상성’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진정성이 2002년의 미국인의 기억과 결부되면서, 영화 <레이디 버드>는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점은 한국의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다가서기 힘든 원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AP4HXhKcb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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