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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15. 2019

영화 <롱샷>

다양성과 ‘상대주의’의 치명적인 매력


 미국의 로맨틱 코메디 영화 <롱샷Long Shot>이 2019년 7월 24일 개봉한다. 우리에게는 <50/50>(2011)이라는 영화로 기억에 남는 조나단 레빈Jonathan Levine이 감독을 맡았다.


 한국으로 치면 외교부장관에 해당하는 미국의 국무장관 ‘샬롯 필드Charlotte Field’(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 분)는 현직 대통령 ‘챔버스Chambers’(밥 오든커크Bob Odenkirk 분)로부터 차기 대선에 대한 지지를 약속받는다.

 한편 뉴욕의 저널리스트인 ‘프레드 플라스키Fred Flarsky’(세스 로건Seth Rogen 분)는 돌연 실직하게 된다. 미디어재벌(media mogul)인 ‘파커 웸블리Parker Wembley’(앤디 서키스Andy Serkis 분)에게 그가 일하던 언론사가 인수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프레드는 웸블리를 비판하는 여러 편의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상심한 프레드가 잘 나가는 절친 ‘랜스Lance’(오셰어 잭슨 주니어O'Shea Jackson Jr. 분)를 찾아가고, 랜스는 실업자 신세가 된 친구를 자선행사에 데리고 간다. 프레드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 그의 보모이자 첫사랑이었던 누나 ‘샬롯’을 만나게 된다.

 샬롯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팀에 필요한 연설문 작가 자리를 프레드에게 제안하고 프레드가 이를 수락하면서, 둘은 여러 나라를 함께 돌아다니게 된다.



인종, 젠더, 계층 등에 대한 세상의 편견들


 흔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체계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남성/여성’이라는 구도에 대해 ‘단단함/부드러움’ ‘이성적/감성적’ 등의 개념쌍을 연동시킨 체계가 있다. 이와 같은 체계에 대해 보통 우리는 ‘이데올로기’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혹은 좀 더 간단히 ‘편견’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화 <롱샷>은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미국 도처에 존재하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있는 바로 이 ‘편견’들을 보여준다. 간단히 예를 들어 보자.


 랜스가 프레드를 데리고 간 자선행사는, 이른바 사회 유력가들이 참석하는 자리이다. 여기에는 온통 백인들뿐이며, 초대가수로 와서 노래를 부르는 ‘보이즈 투 맨’이 거의 유일한 유색인종이다. 랜스는 지나가는 말처럼 독백한다. ‘다음 앨범이 언제 나오냐는 질문을 세 번이나 받았어.’ 독자 또는 관객들은 그 순간 부유층의 자선행사에 나타난 흑인은 당연히 저 가수들의 일행일 것이라는 ‘인종적 편견’의 작동을 발견하게 된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영화 속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등장하는 ‘챔버스’는 전직 TV드라마 배우로, 대중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당선된 인물이다. 국무장관인 ‘샬롯’을 지나가는 말처럼 ‘비서Secretary’라고 부르고, 샬롯은 비서가 아니라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이라고 정정한다. 이 순간 발견되는 것은 ‘젠더적 편견’의 작동이다.


 옷차림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는 프레드에 대해, 샬롯의 대선 팀원들은 탐탁치 않은 반응들을 보인다. 후줄근한 카고바지에 티셔츠, 바람막이 재킷을 걸친 프레드의 행색에서 경제적사회적 계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가 실제로 얼마나 교육을 받았는가, 혹은 윤리의식은 얼마나 높은가, 혹은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가 등에 대한 판단 이전에 작동하는 '계층적 편견'이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편견들을 모두 뒤집어 엎는 영화 <롱샷>의 플롯은, 다소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신선한 통쾌함을 느끼게 만든다.



다양성, 상대주의, 그리고 책임


 영화의 주제는 명확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각의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성이나 젠더, 계층 등을 분할하고 묶어서 거대한 몇 개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그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이 바로 영화 <롱샷>이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의 가치 판단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견해를 ‘상대주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상대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므로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인주의’(이기주의가 아니다)이기도 하다.


 상대주의가 보여주는 견해는 그 자체로는 분명 옳다. 다만 모든 ‘-주의’들이 그러하듯, 상대주의도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지극히 위험한 사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혼돈, 파괴, 폭력, 불의, 악惡 등의 가치에 속하는 것들 또한 그저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인정하자는 식의 논리로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 영화 <롱샷>에서는 ‘일탈’의 이미지로, 프레드와 샬롯이 클럽 파티에서 LSD나 ‘몰리(엑스터시의 별칭)’와 같은 환각제를 즐기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어서 샬롯이 약에서 덜 깬 상태로 중요한 협상 전화를 받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극단으로 치달은 상대주의는 이런 파티 드럭Party drug도 상관없다는 식의 입장을 취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대주의와 개인주의에서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개인의 책임’ 혹은 ‘책임있는 개인’이다. 어떤 결정에 대해 그 결정자는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책임을 질 수 있는 개인이 내린 결정만을 존중해야만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멋진 캐스팅, 반가운 배우들


 그나저나 영화 <롱샷>에는 반가운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들 배우들의 연기를 한 데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한 번쯤은 관람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일단 세스 로건은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쿵푸팬더>에서 ‘맨티스’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배우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조나단 레빈 감독과 세스 로건은 앞서 <50/50>(2011)과 <나이트 비포The Night Before>(2015)에서도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BBC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에서 모사드 요원 ‘가디 베커’로 나왔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Alexander Skarsgård가 캐나다 총리 ‘제임스 스튜어드James Steward’로 출연하고, 세스 로건이 감독한 정치풍자코메디 <더 인터뷰The Interview>(2014)에서 ‘김정은’을 연기한 한국계 배우 랜달 박Randall Park이 프레드의 언론사 직장상사로 잠깐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미국의 인도계 이민자가 인도 문화와 미국 문화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정체성에 대해 가지는 고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파텔 만나기Meet the Patels>(2014)의 주인공 라비 파텔Ravi Patel이 샬롯의 팀원 중 한 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매번 놀라운 변신과 연기력을 보여주는 샤를리즈 테론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한국에서는 영화 <몬스터>(2003)의 연쇄살인마 ‘아일린’, <핸콕>(2008)의 여주인공 ‘메리’,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의 여주인공 ‘임페라토르 퓨리오사’ 등의 역할로 잘 알려져 있다. 작년과 올해 전 세계의 쇼핑몰과 공항, TV에서 틀어주던 '디올 쟈도르Dior J'adore' 광고의 바로 그 황금빛 여신이기도 하다.



@ 그나저나 어떤 독자 또는 관객들은 은연중 이 영화에서 ‘반反 트럼프’의 정서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기대를 받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미지와, 그리고 어리석은 차별주의자 남성 대통령이라는 트럼프의 이미지, 대비되는 두 이미지를 함께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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