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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Oct 11. 2018

영화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새 ‘낡은’ 뮤지컬 영화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배우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가 처음으로 감독을 맡아 만든 영화 <스타 이즈 본>이 2018년 10월 9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이 작품에는 다소 곡절이 있다. 애초에 201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비욘세와 함께 1937년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것인데, 하지만 비욘세의 개인 사정으로 제작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이후 크리스찬 베일, 조니 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크루즈, 윌 스미스 등이 남자주인공으로 거론됐지만 불발했으며 이내 비욘세 마저 프로젝트에서 하차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2015년에야 브래들리 쿠퍼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2016년에는 레이디 가가의 합류가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드디어 전 세계의 관객들 앞에 선보이게 되었다.



고전적인 주제, 음악과 사랑



 ‘잭슨 메인’(Jackson Maine, ‘잭’, 브래들리 쿠퍼 분)은 공연 중이나 공연이 끝나고 난 뒤나 술병을 입에 달고 산다. ‘잭’의 음악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그를 연속으로 매진되는 콘서트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어느 날 잭은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을 멈추고 다시 술을 마시러 길가의 술집-알고 보니 드랙 바Drag Bar였다-에 들렀다가, 그 날 무대에서 노래하는 ‘앨리’(Ally, 레이디 가가Lady Gaga 분)를 만나게 된다. 잭은 싱어송라이터인 앨리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앨리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잭에게 이끌리면서, 둘은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잭은 자신의 공연에 앨리를 초대하고, 그녀가 만든 노래를 무대에서 갑작스럽게 그녀와 함께 공연한다. 이를 통해 앨리와 그녀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유명한 프로듀서인 ‘레즈’(Rez, 라피 개브론Rafi Gavron 분)가 그녀에게 함께 계약하고 활동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이후 앨리는 팝스타로 점점 유명해지는 반면 잭은 술에 취해 몇 가지 사고를 치고, 점점 청력을 잃어가며 나타나는 이명耳鳴과 스트레스 때문에 약(그 약 맞다)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망가져 간다. 결국 앨리가 그래미어워즈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지만, 잭은 수상식에서 노래 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위치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잠시 끊었던 술과 약에 취한 잭은 앨리가 신인상을 받는 순간을 엉망으로 만들고, 이후 재활치료를 위해 입원하게 된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잭은 앨리의 미래를 자신이 망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잭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앨리는 사랑하는 잭을 추모하며 무대 위에서 열창한다.



‘설마’ 하는 장면들의 나열


 일단 이 영화의 진가는 서사보다는 ‘음악’에 있다. 잭이 부르는 포크&록 뮤직들은 뛰어난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며, 앨리 역시 훌륭한 가창력과 뛰어난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반면 영화의 서사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캐릭터들은 평면적이며 플롯마저 ‘고전적’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하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여줘야 할 것을 미처 보여주지 못하고, 대신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하지만 그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잭’이 술에 빠져드는 것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와 현실의 스트레스가 결합된 문제이며, 나중에 그가 약에까지 손을 대는 것은 앨리와의 관계에서 오는 박탈감이나 수치심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스크린에 이 점을 ‘묘사’하는 것에는 거의 실패해버리고 만다. 덕분에 독자 또는 관객들이 유추해서 앞의 사건과 다음 사건 사이의 고리를 연결해서 흐름을 어렵게라도 이어가야만 한다. 덕분에 영화는 한 마디로 진부하고 지루하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1937년의 리메이크 혹은 재현再現


 그 이유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1937년 미국에서 제작된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작은 이후 1954년과 1976년 두 차례 리메이크되었고, 한국에서는 원작과 리메이크작들이 모두 ‘스타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작품은 가장 오래된 1937년의 그것을 원본으로 삼은 것이다.


 잠시 원작의 내용을 살짝 들여다보도록 하자. 1937년의 원작 <스타탄생>은 영화를 배경으로 하는 배우들의 이야기이다. 시골 농장 출신의 젊은 배우지망생 ‘에스더’(Esther V. Blodgett, 자넷 게이너Janet Gaynor 분)가, 선망하는 배우 ‘노먼 메인’(Norman Maine, 프레드릭 마치Fredric March 분)을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스더는 ‘비키Vicki Lester’라는 예명과 함께 배우로서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 노먼의 알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그녀는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노먼은 해가 지는 태평양 바다에 걸어 들어가 목숨을 끊는다. 이후 에스더는 그녀의 새 영화에 대해 전 세계의 팬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노먼 메인의 부인입니다. Hello everybody. This is Mrs. Norman Maine.” 그리고 영화는 에스더의 마지막 장면의 대본을 보여주며 끝난다.

[원작 영화는 유튜브 등을 통해 볼 수 있으니, 흥미가 있는 독자 또는 관객들은 한 번쯤 봐도 좋을 듯하다.]


 그밖에도 원작과의 비교를 통해 일단 우리는 앨리가 잭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자신을 ‘앨리 메인Ally Maine’이라고 소개했던 것이 원작의 꽤나 의미심장했던 장면을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명인 ‘에스더’, 가명인 ‘비키’가 상징하는 분열된 주체성의 혼란 속에서, 그녀가 결국 그녀의 이름(정체성)을 ‘노면 메인의 부인’으로 선택했으며, 동시에 그녀가 대중들 앞에서의 공식적인 ‘선언’이라는 행위를 선택했다는 점이야말로 에스더의 ‘이름 바꾸기’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앨리가 자기의 이름에 ‘메인’이라는 잭의 패밀리네임을 붙인 것은 그녀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서 벗어났다거나 혹은 어떤 의도 내지는 메시지가 담긴 ‘행위’로서 그 이름을 말한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과연 레이디가가는 그 장면에서 그 대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어쩌면 그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랑노래 부르기에서, 대중들에게 얼마나 환호를 받게 될 지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원작과 비교할 때 작품의 배경이 ‘영화’에서 ‘음악’으로, 그리고 캐릭터들이 ‘배우’에서 ‘뮤지션’으로 변화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영화 속 배경도 시대에 맞게 변화했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포크 록’과 ‘팝’이라는 대중성 짙은 음악 요소들을 영화 내부에 삽입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반면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원작은 ‘영화에 대한 영화’ 혹은 ‘영화 속의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스크린 내부와 외부 사이에 극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번 2018년의 <스타 이즈 본>은 그것을 ‘음악’이라는 장르로 각색 혹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작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식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봐야 한다면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이번 2018년의 <스타 이즈 본>은, ‘스타 탄생’도 아니고 ‘어 스타 이즈 본’도 아니고 왜 굳이 한글 제목을 이렇게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이나 이전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풍성한 내용과 의미들이 발생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독자 또는 관객들이 오래 전 작품들을 다시 접할 기회를 가지기는 아마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뭐 이렇게 이해하기로 하자. 초보 감독 브래들리 쿠퍼가, 아직은 조금 서툴렀던 걸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전작들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의 독자 또는 관객들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도 음악 하나는 정말 좋다. 특히 브래들리 쿠퍼, 잭슨 메인의 음악들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앨리의 팝 뮤직보다는 훨씬)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의 전설적인 포크&록 가수 ‘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아들이자 스스로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포크&록 가수로 활동 중인 ‘루카스 넬슨Lukas Nelson’이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고 보면 잭슨 메인의 컨셉이 루카스 넬슨과 닮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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