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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an 02. 2018

영화 <원더Wonder>

따스한 幻想과 소중한 想像


 한 해가 저물어가는 2017년 12월 27일부터 영화 <원더(Wonder)>가 상영을 시작했다. 감독인 스티븐 슈보스키(Stephen Chbosky)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우리에게는 영화 <미녀와 야수>(2017)의 각본가로 먼저 알려졌다. (그의 라스트네임 ‘Chbosky’는 /ʃəˈbɒski/로 소리 나며, 한국의 외래어표기법으로는 ‘슈보스키’라고 적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사실 슈보스키는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감독이자 작가이다. 그의 소설 <월플라워(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1999)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고, 2012년에는 그가 직접 이것을 영화로 각색하고 감독하면서 각종 영화제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 감독은 소설을 영화로 전환하는 데 있어 검증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 <원더> 역시 동명의 소설 <원더(Wonder)>(R. J. 팔라시오 작, 2012)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편견과 따돌림
그리고 진정한 인간성(Humanity)의 승리     

영화는 유쾌하고 똑똑하며 사려 깊은 소년 ‘어기Auggie’(제이콥 트렘블레이Jacob Tremblay 분)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켜나가는 서사를 담고 있다. 독자 또는 관객은 영화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소년 어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은, 우리들에게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어기의 일그러진 얼굴 형태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어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는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외면이 아닌 내면에 있다는 당연한 명제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결국 따스한 영화의 끌림을 따라 함께 흘러가 우리가 도착하는 곳에는,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혹은 ‘진정한 인간성이란 어떤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에 대해 구질구질하게 이것저것 설명하는 대신, 매력적인 소년 ‘어기’와 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만 치중한다. 덕분에 독자 또는 관객은 영화가 주는 감독의 여운 속에서 이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정도 되면, 한국의 초중등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것과 선한 것이 사람들을 어떻게 웃게 만드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잘 만든 좋은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영화가 말하지 않은 것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 영화는 매우 나쁜 영화다. 영화의 서사는 장애를 가진 소년 ‘어기’가, 사실은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소년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은 선택되지 못하거나 배제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어기’의 학교와, 그의 누나 ‘비아Via’(이자벨라 비도빅Izabela Vidovic 분)가 다니는 학교는 경제적으로 중상위 계층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처럼 보인다. 비아의 남자친구 ‘저스틴Justin’(나지 지터Nadji Jeter 분)은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아들에게, 그 대신 연습하라며 (그 비싼) 바이올린을 안겨주는 집의 외동아들이다.     


 게다가 ‘어기’가 입학하고 다니는 그 중학교는 정말 ‘환상적’이고 끝내주게 좋은 학교다. 약간 못된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오래지 않아 스스로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한다.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좋은 인간성을 지닌, 교양 있는 사람들이다. 이 학교에는 ‘어기’를 향한 약간의 괴롭힘과 따돌림이 있지만, 그 어떤 성적 인종적 차별도 없으며 마약과 범죄도 없다. 심지어 교사들도 하나같이 멋진데, 그 중 백미는 ‘교장 선생님’(맨디 파틴킨Mandy Patinkin 분)이다. 지혜롭고 현명한데다 친절하며 배려심도 깊은 근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뭐랄까, 가장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인물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이 학교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존재하기 어려운, ‘정말 거의 완벽한 학교’의 모습으로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그래서 영화는 침묵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폭력에 대해서 말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총기와 마약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미국의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양질의 교육을 받는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계층의 자녀들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영화 <원더>는 가난과 범죄를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 지역의 학교와 가난한 계층의 아이들 이야기에 대해서는 스크린 바깥 어딘가로 추방해버린 것이다.     


소중한, 따스한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것     

 그러나 이 나쁜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향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학교’와 ‘가정’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긍정적인 인간성Humanity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별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을, 마치 무법지대처럼 왜곡하는 파렴치한 ‘깡패영화’보다는 좋은 영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경찰대학 신입생들이 범죄를 수사하고 해결한다는 엉터리 ‘범죄영화’보다는 좋은 영화다. 적어도 이런 거지같은 영화들보다는, 무엇인가 소중하고 따스한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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