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Jan 22. 2018

영화 <원더 휠Wonder Wheel>

아리스토텔레스, 유진 오닐, 그리고 우디 앨런



 2018년 1월 25일부터 우디 앨런Woody Allen의 영화 <원더 휠>이 개봉한다. 작년 말 미국에서 개봉했던 이 영화는 1950년대 뉴욕의 코니아일랜드 해변의 놀이동산에서 살아가는 네 명의 인물들이 겪는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한 서사를 담고 있다. 영화의 서사는 1950년대 코니아일랜드영화제목의 ‘원더 휠’은 놀이동산의 대관람차(영어권에서는 이걸 휠Wheel이라고 부른다)의 명칭이기도 하다.


 갈등과 서사의 중심에 있는 네 명의 인물들은 이렇다. 지니Ginny(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 분)는 조개요리 가게(Ruby’s clam house)의 점원으로 일하는 전직 연극배우다. 지니의 현재 남편 험프티Humpty(짐 벨루시Jim Belushi 분)는 유원지의 엉성한 회전목마를 관리하고 입장료를 받아 수입을 챙긴다. 믹키Mickey(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분)는 연극 극작가를 꿈꾸는 젊고 잘생긴 해변의 안전요원이다. 캐롤라이나Carolina(주노 템플Juno Temple 분)는 결혼했던 갱스터로부터 숨기 위해 아버지인 험프티의 집을 찾아온 친딸이다. 영화는 네 명의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서사를 담고 있다.


 일단 이 영화는 몇 가지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 또는 관객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최소한 다음 두 가지를 알지 못하면, 그저 뭔가 묘하고 난해한 영화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비극의 원리, 두 번째는 극작가 유진 오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극悲劇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란 인물의 하마르티아Hamartia로 인해 발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마르티아는 명확하게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가 없지만, 보통 어떤 인물이 가지는 ‘결함’으로 해석한다. ‘결함’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보편적으로 나쁘거나 안 좋은 점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마르티아는 작은 습관, 성격적 특징, 소속되어 있는 가문이나 집단 내지는 국가, 그 인물이 과거에 겪었던 사건, 다른 인물 사이의 관계 등에 의해 반쯤은 운명적으로 비극적 결말을 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요소를 의미한다.

이에 대한 힌트는 영화 속에서 극작가를 지망하는 믹키가 직접 대사를 통해 언급한다. 믹키는 ‘모든 인물들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결함을 통해 발생하는 비극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이 대사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 이것이 그리스 비극의 원리 그 자체를 말하는 동시에 영화 <원더 휠>의 서사 구조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하마르티아는 곧 영화 <원더 휠>의 전체 서사의 핵심이 된다. 네 명의 캐릭터들에게 존재하는 고유한 속성들은 곧 서로의 관계 속에서 ‘결함’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서사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가게 되는 것이다. 지니는 전 남편이나 배우였던 시절에 대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며, 친아들 리치Riche(잭 고어Jack Gore 분)의 ‘병적 방화 증상’ 등으로 인해 심각한 두통을 동반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믹키와는 불륜 관계에 있다. 험프티는 늙고 배가 나온 늙은 남성이다. 엉성한 회전목마를 운영하며 얻는 수입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가난한 가장이며, 알콜 중독자이기도 하다. 믹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살아 돌아온 극작가 지망생인 석사 과정 학생이다. 똑똑하며 젊고 잘 생겼지만, 반면 그는 가난하고 어리다. 지금-여기가 아닌 전쟁 중 가봤던 낙원을 꿈꾼다. 지니와 사랑에 빠졌다가, 캐롤라이나에게 첫눈에 반하는 가벼운 남자이기도 하다. 캐롤라이나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사랑했던 갱스터와 결혼했지만, 연방경찰에게 그의 비밀 몇 가지를 누설하고 도피중이다. 젊고 매력적이지만, 가난하고 학업수준이 낮다.



유진 오닐과 연극성

 영화의 도입부는 믹키의 “코니아일랜드. 1950년대.”나 “나는 여기 7번 베이에서 일을 합니다.”와 같은 독백들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대사는 무대 위 인물인 동시에 그가 앞으로 펼쳐질 연극의 배경을 설명하는 서술자라는 점을 함께 알려주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이다. 믹키가 이 대사를 극장에 앉아있는 독자 또는 관객에게 직접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연극의 서술자와 같은 인물이라 점은 이어지는 믹키의 대사 “캐롤라이나 입장(Enter, Carolina.)”에서도 알 수 있다.


 덕분에 영화 <원더 휠>은 ‘연극적인 영화’가 된다. 그리고 그 연극의 성격은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작품 세계를 닮아 있다.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이나 <밤으로의 긴 여로> 등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유진 오닐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인 동시에, 표현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 사회의 주변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안간힘을 다해 살아보지만 결국 절망과 환멸에 빠져버리는 내용의 작품들을 남겼다. 영화 <원더 휠>의 배경인 1950년대 미국은 유진 오닐에 열광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비극적인 사건들의 전말이 드러나는 영화의 결말부에서, 지니와 험프티가 나누는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유진 오닐의 연극으로 완성해낸다. 험프티는 지니에게 다음 날 낚시를 가려 하는데 함께 갈 것이냐고 묻고, 지니는 창문 바깥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자기는 낚시를 싫어한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들의 이 대사는 이 모든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때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다. 결국 <원더 휠>의 인물들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살아보지만, 또다시 비극적인 상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수레바퀴 같은 현실의 완강함에 좌절하게 되는 구조로 귀결된다. 마치 유진 오닐의 연극들처럼 말이다.


 결국 영화 <원더 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쌓은 기초 위에, 유진 오닐이 자재를 제공한 다음, 우디 앨런이 디자인하고 건축한 구조물이 된다.



반복의 상징, 원더 휠

 그렇다면 왜 하필 ‘원더 휠’인가. ‘코니아일랜드’도 아니고, ‘어느 가족의 비극’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왜 하필 1950년대인가.


 대관람차 ‘원더 휠’은 거대한 바퀴, 즉 원의 형태를 하고 있다. 대관람차에 탄 독자 또는 관객은 그 동선을 따라 크게 한 바퀴를 돌아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것은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와 버리는, 바꿔 말하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무한 반복성에 대한 ‘상징’, 그것이 바로 ‘놀라운 수레바퀴’, 즉 ‘원더 휠’이 가지고 있는 의미다.


 그렇다면 일단 이것은 험프티와 지니, 캐롤라이나와 믹키가 결국 비극에서 출발해서 다시 비극으로 돌아가는 연극, 아니 영화 전체의 구조에 대한 상징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를 2017년 미국에게 다시 트럼프와 함께 1950년대로 회귀할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이 끝난 직후 1950년대 냉전시대를 시작하는 그 시기의 미국으로 말이다. 이 질문의 의미는 이명박근혜 시대가 시작할 무렵, 다시 60~80년대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아가버린 한국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2018년 한국의 독자 또는 관객들이 겪은 암울했던 지난 10년을, 어쩌면 이제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미국의 우려와 절망의 서사로서, 영화 <원더 휠>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Z_MNEHQcxC8



이전 18화 영화 <유리정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