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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y 09. 2018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Like Crazy>

연인 사이의 사랑은 대체로 삐걱대다가 어긋나버리는 것이다



 보고 있으면 달콤하고 행복한 사랑이야기 ‘로코’ 형식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대다수 한국 대중들에게 있어, 이 영화는 솔직히 좀 불편하다. 사랑과 연애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영화적 ‘환상’ 대신, 두 주인공의 사랑은 대체로 삐걱대다가 결국 어긋나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의 실제 연애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말이다.

2018년 5월 30일, 드레이크 도리머스Drake Doremus 감독의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2011)가 개봉한다.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심사위원 대상 the Grand Jury Prize을 수상하면서, 아직까지도 이 작품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젊은 감독 도리머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장거리 연애Long-distance Love에 대한
지독하게 사실적인 영화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사랑의 감정은 그리움의 흐릿한 형태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영국에서 LA로 유학을 온 ‘애나Anna’(펠리시티 존스Felicity Jones 분)는, 학교에서 미국 남자 ‘제이콥Jacob’(안톤 옐친Anton Yelchin 분)과 사랑에 빠진다. 학교 과정을 마치고 허용된 학생비자 기간이 끝나면서, 애나는 출국 후 재입국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녀는 제이콥의 곁에 머물기로 선택하고 만다. 그 선택의 결과로 인해 애나는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장거리 연애는 점점 어긋나고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게 된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의 서사는, 우리에게 ‘사랑과 연애’라는 감정affect에 있어 얼마나 ‘거리’가 중요한가를 일깨워준다. 그 관계의 ‘거리’는 둘 사이의 친밀도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둘 사이의 삶의 반경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덕분에 독자 또는 관객은 사랑의 온도가 조금씩 식어가는, 지독하리만큼 사실적인 장면을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바라보기만 하게 된다.



그들의 감정이 더 사실적인 이유

 흥미롭게도 도리머스 감독은 본인이 LA에 있는 동안 런던에 사는 여성과 장거리 연애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를, 감독의 기억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도리머스 감독과 벤 존스Ben York Jones가 함께 작업했다. 그런데 그들은 대략의 줄거리만 설정하고, 대신 그 안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대사들은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말하게 했다. 애나와 제이콥의 연애 이야기가 더욱 ‘사실적’인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그 연령대의 젊은 연인들이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만도 한 감정들로부터 비롯된 언어들로 영화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그냥 ‘미국’ 영화

 그나저나 식어가는 사랑 이야기라는 점 말고도 이 영화가 불편한 지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런던에서 매거진의 부편집장까지 오르며 자신의 커리어를 충실히 쌓던 애나는, 결국 비자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게 된다. 작가Writer이자 편집자editor라는 그녀의 삶은 통째로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 포스터의 문구처럼 제이콥을 향한 ‘미칠 듯한 그리움 I Miss You Like Crazy’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이런 서사는 미국인이 아닌 우리가 보기에는 그다지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왜 굳이 거만한 미국 정부가 질질 끄는 비자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건데?’

‘가구 디자인을 하는 제이콥이 자유롭게 영국에 갈 수 있으니까, 런던으로 이주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니야? 왜 굳이 여성이 남성에게 가는 이야기여야 하는데?’


 하는 질문이 생기고는, 이윽고 자연스럽게 ‘지긋지긋한 남성중심주의, 미국중심주의’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뭐 미국의 가구 디자이너가 유럽인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어쩌면 진짜 여주인공은, 제이콥의 곁에 머물다가 결국 애나에게 자리를 내주고야 마는 비련의 인물 ‘사만다Samantha’(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 분)일지도 모르겠다. 네 명의 연인 관계 사이에서 유일하게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동정과 호감을 얻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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