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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04. 2018

세상에... 이런 미술관이었다니!!

2018. 일본 ::: 데시마

 쇼도지마와 데시마 두 곳을 보는 것은 애초에 나에게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사실 쇼도지마 한 곳만 봐도 하루종일 여유부리는 내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시간이 좀 모자랄 판인데, 막상 데시마까지 가려고 보니 이미 하루치 이상의 에너지를 써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도 데시마 미술관은 꼭 보고 싶었으니까 힘을 내어 보기로 한다.


 데시마는 나오시마처럼 유명한 섬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나오시마만큼 예술의 섬이라고 불러도 충분한 그런 곳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사실 그래서 데시마에서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쇼도지마에서 올리브공원을 보느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뭐 부지런한 여행자들이라면 전부 다 볼 수 있었겠지만 난 게으르디 게으른 여행자이니까 더이상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깔끔하게 데시마 미술관만 보고 다카마쓰로 돌아가기로 했다. 볼 것들이 많다는 '이에우라'항에서 내리는 대신, 나는 데시마 미술관에서 가까운 '가라토'항에서 내렸다.



 처음 만난 가라토항은 마치 시골 간이역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누가 항구 매표소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창고(?)인 줄 알고 지나갈 정도로 작은 오두막(?)이 전부였다. 쇼도지마의 올리브버스처럼 데시마에서도 섬 내를 이동하는 버스가 있다. 하지만 버스가 자주 있지 않기도 하고, 가라토항에서 데시마 미술관까지 1km 남짓이라 걸어가기로 했다.


 구글맵을 켜고 알려주는대로 방향을 잡았다. 완만한 오르막의 연속이었던 길을 설렁설렁 걸어올라가는 와중에 차가 몇 대, 자전거도 몇 대가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나처럼 걸어올라가는 사람은 없었다. 나 혼자 걸어가는 길이 편안하기도 하고 살짝 무섭기도 하다. 그렇게 '언제 미술관이 나오지'라고 생각할 때 쯤, 드디어 데시마 미술관이 보였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미술관 티켓을 끊고 나와 정면을 바라보니 정말 너무나도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게 작은 방석과 테이블이 바다를 바라보는 풀밭에 놓여있었다. 거기에 앉아 멍하게 풍경을 보며 바람을 맞으니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바로 그곳에서부터 그렇게 데시마 미술관의 전시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어나 이번에는 구불구불한 산책길을 따라 미술관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그리고 이제 그 안으로 들어섰는데...


세상에... 이런 미술관이었다니!!


 미술관이라고 해서 누군가의 그림이나 조각이 전시된 곳인 줄 알았는데 그런 미술관이 아니었다. 내부촬영 금지에, 휴대전화 사용금지 등의 주의사항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되었고, 자연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처음 맞닥뜨린 신선한 예술작품이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와 나를 흔들었지만, 이내 나는 곧 편안해졌다.


사진 출처 : 데시마 미술관 홈페이지


 바닥 작은 구멍에서 올라오는 물방울을 보거나, 시원하게 뚫린 천장 위 하늘을 보거나,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거나, 혹은 잠자코 바람소리를 들어보거나...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단순해서 나는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잠자코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기만 하면 되는 곳. 와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람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더니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을 나와,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다카마쓰로 돌아가기로 했다. 왜냐면 더이상 아무 것도 보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지금의 기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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