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은 ‘인과 연’ 속에 있다.
<국가대표>(2009)로 기억되는 김용화 감독이 작년 말 자신의 표제작을 갱신하는 데 성공하게 만들었던 영화 <신과함께: 죄와 벌>(2017)의 뒤를 잇는 작품이 개봉했다. 2018년 8월 1일부터 <신과함께: 인과 연>이 수많은 상영관을 차지하며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또 반쯤은 새로운 이야기
전작을 리뷰하면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시리즈도 주호민 작가의 원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반쯤은 새로운 스토리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일단 전작과 마찬가지로 원작 웹툰의 ‘원귀’ 에피소드 주인공 ‘유성연’을, 전작의 주인공 ‘김자홍’(차태현 분)의 동생인 ‘김수홍’(김동욱 분)으로 등장시킨 배경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진기한’ 변호사를 비롯하여 원작의 독자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들은 이번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이번 <신과함께: 인과 연>은 전작인 ‘죄와 벌’과 동시에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시리즈에서 ‘김수홍’의 캐릭터에 대해 ‘사시 1차 합격’을 유독 강조한 점, 그리고 막판에 ‘염라’(이정재 분)가 스카웃한 점을 떠올려본다면 시리즈의 후속작에서는 김수홍이 진기한과 마찬가지로 저승의 변호사 캐릭터로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어쩌면 하정우가 연기하는 ‘강림’은 다음 3편부터는 못 볼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김병장니임’을 노래하는 관심사병 ‘원동연’(도경수 분)의 비중도 좀 더 커질 수도 있겠다.)
재발견한 배우의 ‘재발견’
일직차사 ‘해원맥’을 연기한 주지훈은, 전작 <신과함께: 죄와 벌>을 통해 그가 기존에 보여주지 못했던 여러 가지 가능성과 매력을 여지없이 발산했다. 기존에 보여줬던 차갑고 무거운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이번 <신과함께: 인과 연>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능글맞고 유쾌한 캐릭터’와 ‘무겁고 진지한 캐릭터’를 동시에 스크린에 표현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는 대중들에게 다른 작품에서도 충분히 주연급의 비중과 연기력을 동시에 지닌 배우로 인식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일직차사 ‘해원맥’이 보여주는 유머러스한 모습과, 영화 속 천 년 전 ‘하얀 삵’이 보여주는 치열하며 처절한 모습이 나타내는 분명한 대비는 그만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하얀 삵’이 보여주는 냉철하고 차갑지만 내면에는 선의를 간직하고 있는 이미지가 오히려 원작 웹툰의 해원맥 캐릭터에 더 가까워 보이기는 하다.)
전작의 계승, 혹은 연속성
이번 <신과함께: 인과 연>을 구성하는 큰 서사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천 년 전 스토리’이다. 이를 통해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관과 캐릭터,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구축한다. 이 스토리는 동시에 고려시대와 현재라는 두 개의 시간축을 통해 ‘한국적 역사성’을 영화 내부에 형성하는 효과도 함께 나타낸다. 덕분에 성주신(城主神)이나 저승차사(또는 저승사자)라는 ‘한국적 무속관(巫俗觀)’에 기반을 둔 <신과함께> 시리즈의 정체성과 특징도 함께 확보된다.
동시에 영화 <신과함께: 인과 연>은 나머지 두 개의 서사를 통해 전작 ‘죄와 벌’이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화두를 계승한다. 두 번째는 ‘이승 스토리’이다. 전작에서는 소방관 ‘김자홍’의 삶을 중심으로 그려졌다면, 이번 ‘인과 연’에서는 어린 손자 ‘허현동’(정지훈 분)을 보살피며 어렵게 살아가는 ‘허춘삼’(남일우 분) 할아버지와 이들을 곁에서 지키는 ‘성주신’(마동석 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의 오늘이 그려진다. 이를 통해 영화는 가난하지만 선량한 이웃들이 ‘자본의 논리’라는 폭력에 얼마나 무력하게 노출되어있는지를 보여준다.
세 번째 서사는 나머지 두 개의 서사를 묶는 중심(main stream)이기도 한 ‘김수홍’의 재판과정, 즉 ‘저승 스토리’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이들 ‘귀인’의 재판 모습은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언제나 진실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이 ‘저승 스토리’는 어쩌면 우리에게 ‘법’은 그 자체로 ‘정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의’라는 것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이기보다는, 거의 언제나 대립과 갈등 구도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인과 연’과 전작 ‘죄와 벌’은 확실하게 서로에 대해 연쇄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독자 또는 관객들을 포함하는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죄’, 그리고 이에 대한 ‘벌’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는 우리의 ‘인’과 ‘연’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