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슬로베니아 ::: 루블라냐
#1. 사랑스러운 도시에서 감옥에? - 미니양
이곳 말로 ‘사랑스럽다’는 뜻을 가리키는 말을 이름으로 가진 도시가 바로 루블라냐이다. 영어로는 러블리 정도일까? 블레드에서 루블라냐로 돌아온 우리는 남은 시간을 들여 구시가지를 둘러보기로 했다.숙소는 감옥을 개조한 호텔인 ‘셀리카’로 잡았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도 같은 이 곳은 조금 비싼 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숙소이기도 한 까닭에 사실 나는 다른 숙소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여행 날짜가 임박해 숙소를 알아보다 보니, 그 시점에서는 그나마 싼 곳이 여기라서 이곳에 잠시 둥지를 틀기로 한 것이다.
#2. 루블라냐에서 만난 것들 - 미니양
흐린 겨울 하늘 아래 만난 루블라냐의 구시가지는 1월이었지만 마치 한국의 늦가을 같은 담백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운동화들을 매달아 놓았다. 의미가 뭘까? 광장에는 슬로베니아에서 유명하다는 한 시인의 동상이 있다. 문득 문학을 사랑하는 그들의 문화가 부러웠다. 문학을 사랑한다는 말은 다른 예술도 사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살면서 교과서 외에는 책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몇몇 한국 사람들이 떠올랐다. 맞춤법을 엉망으로 사용하면서도, 영어 철자는 조금만 틀려도 호들갑 떠는 사람들은 분명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또는 그림을 그려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영혼을 채우는 즐거움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회는 앞으로 점점 더 삭막하고 피폐해져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팍팍해지는 건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몰라.길을 더 걷다 보니 다리가 걸린 강을 만났다. 다리에는 수많은 자물쇠들이 달려 있었다. 자물쇠에 연인들의 이름을 함께 써서 이곳에 채워두면 오래오래 사랑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어딜 가나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원하는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사납게 생긴 용이 나를 노려본다. 사랑스럽다는 이름과는 다르게 무섭게 생긴 이 용이 도시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을 상징하는 것은 뭐였지? 시청 공무원들이 무엇인가를 정해놨긴 할 터이다. 그게 또 언제 바뀌어버릴지 모르는 사실이고. 하지만 그런 임시방편 말고 정말 서울다운 것, 서울스러운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긴 이민족의 신을 믿는다면서 전통 신앙의 상징인 장승을 잘라 내거나 불을 지르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그런 게 남아있을 리가 없지. 반면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랑스러운 도시의 자물쇠 이야기를 전해주리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지기만 한다.
#3. 낫지 않았을 때까지만 상처 - 고래군
간밤에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잠을 잤기 때문일까. 입술이 몇 군데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거울을 보니 하얗게 메마른 입술에 붉은 선 몇 개가 선명하다.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나을 테고, 낫고 나면 이내 잊어버릴 테니까.어쩌면 지금 잠시 여행 중인 그녀의 부재 역시 일종의 상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있는 시간에 이 상처는 나아버릴 테고, 그러고 나서는 아무 흔적도 없이, 마치 원래 없는 것처럼 부재는 망각 뒤편으로 숨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벌어진 상처는 조금 쓰라리고, 계속 신경 쓰이게 만들면서 그녀의 부재를 확고한 부피를 가진 무엇인가로 만드는 것이다.아, 입술 갈라져서 아프다고 투정부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