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두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D-1
#1. 하지만 잠시 돌아가야만 했다- 고래군
더블린의 가을은 꽤나 춥다. 요행스럽게도 하루이틀 동안 하늘은 맑았지만, 하늘의 그 푸른빛이 차갑게 느껴지리만큼 옷과 피부의 틈새를 파고드는 더블린의 가을바람은 시리다. 그리고 다시 흐려진 하늘 아래에서 무거운 짐을 메고 16번 버스에 올라타 공항으로 향하는 이른 아침의 바람은 유난히 춥다. 이제 곧 겨울이 올 거라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속삭이듯 말이다.
두바이와 런던, 이스트 서식스 지방의 작은 마을 히스필드Heathfield를 거쳐 더블린을 경유하는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리스본Lisboa. 작년 봄에 한 달 정도 머물렀던 기억에서 스며 나오는 그리움을 쫓아 그곳에서 다시 한동안 머물기 위한 여행이다.
원래 우리 예정은 더블린에서 에어 링구스Aer Lingus를 통해 리스본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출발 직전에야 예약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행 날짜가 임박한 시점에 와서는 티켓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있는 상태였다. 뭐 이런 일은 흔치는 않더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길은 파루Faro로 가는 라이언 에어,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 머물며 잠시 쉬었다가 리스본으로 들어서는 여정이다.
우리 둘 다 외투의 옷깃을 여민다. 가을 더블린의 새벽은 꽤나 춥다. 이제 곧 겨울이 올 거라고, 그러니 붙잡히기 전에 떠나라고 속삭이듯 말이다.
#2. 반짝이는 파루의 오후- 고래군
파루 공항에 내린 그녀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 시도 때도 없이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로 떠오를 것처럼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이러다 날개라도 돋아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까지 된다.
“오빠! 나 저기도 사진 좀 찍고! 우리 버스 어디서 타는 거야? 어! 저기 버스 떠난다!”
여기저기를 렌즈에 담느라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이윽고 덥다며 외투마저 벗어 던지고는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항 앞 저편에 서 있던 16번 버스가 우리를 외면하고 떠나버렸다. 뒤늦게 정류장에 가서 버스 시각을 보니 다음 차는 30분 후에나 있다.
“아하하. 나 때문에 버스 놓쳤나? 아 몰라 괜찮아. 우리 저기 가서 커피나 마시면서 앉아 있자. 오빠 나 조증 왔나봐 어떻게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몫으로 커피 대신 맥주 한 잔을 주문해서는 들고 왔다. 그런 그녀를 살짝 타박도 해보지만, 사실 나도 그녀만큼이나 들뜬다. 그렇지만 나만이라도 진정해야지, 괜히 사고라도 날라. 그렇지만…… 역시 포르투갈의 가을은 따뜻하고 행복하구나.
#3. 포르투갈은 내게 그런 곳 - 미니양
이번 리스본 한 달 살기는 서론(?)이 아주 길었다. 영국에 사는 친구를 만나 일도, 친목도모도 하기 위해, 두바이를 경유하는 런던행 비행기티켓을 끊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리스본 아파트 예약 날짜까지 남은 며칠동안 런던이 아닌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간을 보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인종차별을 경험하고 나니 런던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영국에 사는 친구 말에 의하면 인종차별이 꽤 많은 듯했다.)
처음 가 본 더블린은 영국이랑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나라였다. 다만 크게 먹을만한 게 없다는 것이 영국과는 비슷했다. 3박 4일을 더블린에서 지내다보니 날씨는 추운데 먹을 건 별로 없는 느낌? 짧은 일정 탓에 제대로 더블린을 보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더블린에 있는내내 유명하다는 곳은 다 제쳐두고 미술관만 줄창 보다 더블린에서의 시간이 끝이 났다.
원래의 계획은 앞서 고래군이 말했 듯 더블린에서 에어링구스를 타고 리스본에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출발 전 항공권을 확인하는 순간 알았다. 비행기표가 예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오빠! 오빠!"
"응?"
"우리 큰일 났어!"
"왜왜!"
"우리 리스본 못 가!"
"못 가? 왜?"
"더블린에서 리스본 가는 비행기 예약이 안 되어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예약이 됐는 줄 알았는데, 보니까 카드결제가 제대로 안되었나봐."
"그럼 어떻게해?"
"지금 찾아보니까, 에어링구스는 너무 비싸고 라이언에어로 포르투갈 남쪽 도시 파루를 거쳐가는게 그나마 제일 싸. 파루에서는 기차타고 리스본 올라가면 될 것 같아."
"그래? 할 수 없지, 뭐."
그래서 리스본에 가기까지 이렇게 긴 여정을 하게된 것이다. 더블린의 찬 새벽공기를 마시며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 남짓 따스함 가득한 파루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나는 조증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파루 숙소에 짐을 풀고 고래군을 잡아 끌고 무작정 시내로 나갔다.
처음 도착한 파루 시내는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였고, 해변을 끼고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충분했다. 꽁꽁 싸맸던 옷을 반팔로 갈아입고 어슬렁거리며 파루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포르투갈은 내게 추운 겨울을 지나 만난 봄 같은 그런 곳이었다는 것을.
#Tip
파루 공항-시내 14, 16번 버스 2.30유로 (버스기사에게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