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Sep 26. 2018

그리움을 남기고_터키에서 불가리아로

2015. 터키 ::: 안탈리아, 이스탄불


#1. 땅 넓은 나라는 비행편도 좋더라- 고래군


“오빠! 우리 어떡해?”

“뭐가요?”

“불가리아로 넘어가려면 이스탄불로 가야 하거든? 아침 일찍 출발해도 도착하면 거의 저녁이나 밤이니까 하루는 자야 하지 않을까?”


 침대에 누워서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있다. 사실 그냥 멍하니 누워 있느라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어떻게 할 거냐는 그녀의 질문이 줄지어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나는 일단 뭐라도 알아보는 척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문득 그녀가 비행편을 검색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워낙 여행에는 이골이 날 정도로 자주 다니다 보니, 그녀는 요령 좋게도 값싼 티켓을 잘도 찾아내고는 한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이방인으로 어딘가에 찾아가는 일이 여전히 서툴고 어색한 나에게는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우리 이스탄불까지 버스 타고 가는 것보다 그냥 저가항공 타는 게 낫지 않나?”

“……. 어라? 그런가? 어라, 가격 차이 얼마 안 나네 정말?”

“아, 아깝다. 불가리아로 가는 비행편은 버스보다 훨씬 비싸네.”

“오빠오빠!! 나 왜 비행기로 이스탄불 가는 걸 생각 못 했지? 오오!!!”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검색해보고는, 이내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가벼워진다. 가장 싼 티켓을 알아봤더니 이른 아침 첫 비행기다. 그리고 시간대가 좋아질수록 가격대는 급격히 상승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주 비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아껴둬야 앞으로 남은 여행이 좀 더 풍성해질 것 아니겠어?

우리는 결국 새벽 첫 비행편을 예약했다. 그리고 아주 이른 시각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는 전날 밤에 짐을 싸서 안탈리아 공항으로 향했다. 이방인들이 흔히 그러하듯, 혹은 가난한 여행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하룻밤 노숙하기 위해서이다. 하룻밤 먹을 에크멕Ekmek과 아이란Ayran, 그리고 마트에서 파는 올리브 절임을 쏟아 넣은 샐러드도 준비했다. 그렇게 우리는 중간에 틀어버린 터키 여행의 마무리를 준비했다. 이제 이스탄불로, 그리고 터키를 떠나 불가리아로 가게 될 것이다.







#2. 여행자의 일상/ 이방인의 숙명- 고래군


 이스탄불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다. 유럽 대륙에 속하는 서쪽에는 터키의 국부(國父)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딴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Atatürk Havalimanı’이 있고, 아시아 대륙에 속하는 동쪽에는 세계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의 이름을 딴 ‘사비하 괵첸 국제공항  Sabiha Gökçen Havalimanı’이 있다. 그녀는 앞서 언급한 아타튀르크가 입양한 아이들 중 한명이기도 하단다. 한 마디로 아버지와 딸의 이름으로 공항이 지어진 것이다.

이륙하기도 전에 잠들었다가 착륙하는 진동에 눈을 떴더니, 사비하 괵첸 공항이다. 처음 이스탄불에 올 때는 아버지가, 그리고 다시 찾아오니 이번에는 딸이 우리를 환영해주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그녀에게 몹쓸 개그 그만 하라는 핀잔도 들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

“뭐가?”

“이스탄불 시내에서 오늘 하루 쉬고 내일 떠나거나, 아니면 이대로 곧바로 불가리아로 가거나.”

“왠지 이대로 떠나기는 아쉽지 않아?”

“내 말이. 그래서 보통대로라면 그냥 소피아로 가는 건데, 오빠한테 물어보는 거야 하루 머물고 내일 갈 거냐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숙소를 안 알아보고 왔다는 거야.”

“뭐, 저번에 파티흐Fatih 동네 돌아다니다 보면 여행자 숙소 많더라. 가보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방 있나 물어보지 뭐.”


 날씨도 화창하다. 버스를 타고 카디쾨이Kadıköy까지 가서는, 여객선을 타고 파티흐 에미네뉘Eminönü에서 내렸다. 저번에 먹었던 고등어 샌드위치Balık ekmek를 파는 가게를 그녀가 가리켰다. 문득 허기가 엄습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새벽에 먹고 나서는 계속 굶고 있다. 배가 고프다. 하지만 조금 더 참자고 말했다. 일단 짐을 풀자고, 그리고 나서 다시 와서 먹자고 말이다.


 짐이 없을 때는 ‘화창한’ 날씨가, 무거워진 배낭을 짊어지고 있노라니 ‘무더운’ 날씨가 되어버렸다. 그녀와 나는 골목골목을 헤매고 또 헤맸다. 저번에 머물 때는 그렇게 많던 여행자 숙소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오빠!!!!”

“네에….”

“안 되겠어. 숙소 다 어디 갔냐. 우리 그냥 불가리아로 가자. 하늘이 그러라고 숙소 못 찾게 하나보다.”

“네에…….”


 우리는 지친 몸을 붙들고 에센레르 터미널Esenler Otogarı로 향했다.







#3. 좋은 사람들- 고래군


“정 안 되면 환전해야지 뭐.”

“안 돼!! 다시 물어보자!”


 우리에게는 저번에 이스탄불에 머물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보증금을 내고 사서 충전했던 교통카드가 있다. 구매할 때 알아보기로는 보증금과 잔액을 환불받을 수 있다고 해서 조금 넉넉하게 충전해두었더랬다. 그런데 터미널에 와서 물어보니 환불해줄 수 없단다. 알고 봤더니 얼마 전부터 환불 제도가 사라졌다고. 우리가 찾아봤던 게 좀 옛날 것이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불가리아로 건너가는 티켓을 사려고 보니 남은 리라가 모자란다는 데 있다. 환불받으면 살 수 있고, 안 되면 모자란 딱 그 정도. 그렇다고 환전하자니 남게 될 터키 리라를 어디서 쓰기도 그렇고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터미널 건물 안의 상가들을 30분 넘게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터키어를 모르고, 상점의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은 한국어도 영어도 모르시고. 덕분에 그녀와 나는 교통카드를 보여주며 손짓발짓으로 혹시나 환불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찾아갔던 곳을 또 찾아가고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어쩌겠어. 그냥 환전 하자.”

“안 돼!! 꼭 환불 받을 거야! 오빠 저 쪽으로 가보자.”

“저기 아까 물어본 거 같은데…….”


 안절부절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는 모습이 절실해보였는지, 세 번째 물어보는 작은 가게의 할아버지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우리를 데리고 다른 상점으로 우리를 데려가서는 젊은 사장에게 뭐라고 설명했다. 이윽고 젊은 사장은 우리 교통카드를 받더니, 보증금과 잔액만큼 돈을 우리에게 줬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보니 할아버지와 젊은 사장의 생김새가 아버지와 아들인양 서로 똑 닮아 있다. 아무래도 아들에게 돈 주고 카드 받아서 너 쓰라고 한 모양이다. 얘들이 불쌍하다고, 너 어차피 교통카드 쓰지 않느냐고 말이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니 감동에 흠뻑 젖은 표정이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의 표정이겠지.


“오빠…… 나 눈물 날 거 같아. 할아버지가 빵도 먹으라고 줬어…….”

“이미 눈물 나 있거든요 당신?”

“너무 고마워서 어떡해? 우리 티켓 사고 나서 돈 쪼금 남는데, 아까 할아버지네 가서 뭐라도 사드리자.”



 화물칸에 커다란 배낭을 구겨 넣고 버스에 올라탔다. 앉자마자 금세 다시 잠들어 버렸다. 잠결에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구나 터키는.

언젠가 다시 또 찾아오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먼 옛날의 풍경 속에서_안탈리아(Antaly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