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터키 ::: 안탈리아
#1. 다음 여정은 안탈리아Antalya- 고래군
에이르디르 호수의 품 안에서 새해를 맞이한 우리는 다음 여정을 찾아보기로 했다. 언제까지라도 이곳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여행자니까, 이렇게 잠시 머물렀다 다시 떠나는 것이 맞다. 그나저나 어제 무지개송어구이에 곁들인 라키Raki의 환상적인 맛과 향은 결코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어쨌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가기로 한 날짜까지는 별다른 계획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요 며칠 동안 다음에 향할 곳을 찾아보고는 했다.
“오빠는 다음으로 어디 가보고 싶어요?”
“나 배불러. 아무 생각 없어.”
“이스탄불로 돌아갈 거 생각하면 사프란볼루Safranbolu도 좋고, 아니면 앙카라Ankara에 가보는 것도 좋고. 어쨌든 수도잖아 앙카라가.”
“…….”
“또 나 혼자 찾아보게 할래? 너 죽는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도를 펼쳐 보았다. 지도는 나에게 에이르디르Eğirdir에서 바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바다가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안탈리아Antalya’라는 지명도 함께. 공항도 있네? 여기서 더 혼나기 전에 나는 일단 아무 생각 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 여기 가보고 싶어! 안탈리아!”
“거기 며칠 전에 내가 가보고 싶다고 했던 데잖아. 그래도 우리 이스탄불 돌아갈 거 생각하면 너무 멀지 않을까?”
“공항 있잖아. 저가 항공 있지 않겠어?”
“!!!!”
안탈리아를 이야기하자 그녀의 눈빛이 싱그러워진다. 잠시 그 다음 여정을 생각하며 걱정하던 그녀가 항공편 이야기를 하자, 풀리지 않던 난제의 실마리를 잡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빛의 속도로 항공편을 검색, 이윽고 숙소까지도 검색.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안탈리아. 가요 우리.”
그것은 양고기구이와 샐러드와 무지개송어구이를 테이블에 펼쳐놓고, 라키가 담긴 투명한 잔에 물을 섞어 마시기 직전의 일이었다.
#2. 변치 않는 것들- 고래군
3박 4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만 머물기 위해 우리는 급히 숙소를 찾았다. 다행히 가정집을 개조한 민박집 같기만 한 여행자숙소를 찾아냈다. 비수기라 그런지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2층집이었는데 작은 안뜰의 나무 아래에는 테이블과 의자도 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온 안탈리아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내륙 쪽의 동네들도 재미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히 해안가에 접하고 있는, 이제는 사용되지는 않는 항구가 인상적이었다. 항구 안쪽으로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 Kapısı’이 있다. 로마의 제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하는 건축물로, 대략 그 안쪽과 바다 사이가 구시가지이고 그 바깥쪽이 신시가지이다. 지어진 지 거의 이천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양쪽을 오가는 게이트로 사용되고 있다.
바닷가로 발길을 옮기면 해안을 따라 늘어진 절벽 사이로 움푹 들어간 지형 안에서 방어를 위한 벽에 안긴 형태의 부두와 항만이 있다. (항구 지역은 지금은 실제 항구로는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요새의 벽과 항만 사이에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민가와 건물들에는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아왔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배가 저 항구에 도착했을 것이고, 인근의 로도스Ρόδος 섬이나 키프로스Κύπρος 섬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쪽으로 곧장 내려가면 나오는 알렉산드리아를 오가는 배도 있었을 것이고 말이다. 시리아 주로 향하는 로마인들의 배도 있었을 것이다. 하드리아누스도 시리아 주 총독 재임 시절부터 여기 안탈리아를 종종 들렀을 것이다.
어쩌면 천 년 전에도 누군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저녁 햇살에 노랗게 물든 바다와 항구를 보면서 마찬가지로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들을 눈에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 사람이 하드리아누스였을 수도 있고. 뭐 어쨌든 지금은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고대 항구 도시의 풍경을 만나고 있다.
#3. 안탈리아에서 만난 맛집 - 미니양
어딜가든 현지음식을 잘 먹는 나와 고래군이지만, 터키에서는 유난히 잘 먹었던 것 같다. 한국사람의 입맛에 잘 맞는 건지 내가 잘 먹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매 끼 아주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던 아이란도 식사때마다 꼭꼭 챙겨먹었고, 호불호가 갈린다는 생선이 들어간 샌드위치도 폭풍흡입 할 정도였으니. 이스탄불에서 셀축, 파묵칼레, 에이르디르를 거쳐 안탈리아로 오면서 매 끼 뭘 먹지 고민은 했어도, 맛이 없어서 아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안탈리아에서는 길을 가자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있었던 식당이 하나 있었다. 식당 안은 물론이고, 식당 앞 노천 테이블까지 사람들이 가득가득 차 있었던 그 곳에 우리는 발걸음 멈췄다.
"오빠! 우리 여기서 점심 먹을까?"
"응? 여기 뭐 파는데?"
"글쎄. 아마 고등어 샌드위치 같은거 파는 것 같아. 괜찮아?"
"응. 괜찮아요."
이스탄불에서 엄청 맛있게 먹었던 고등어 샌드위치를 떠올리며, 난 신나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생선 샌드위치들이 있었다. 무슨 생선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림과 같이 있었으니까 적당히 괜찮아보이는 샌드위치로 주문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빈 접시 두 개를 주는 것이다. 샌드위치는 안주고 갑자기 빈 접시? 뭐지? 어쩌라는 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웨이터 아저씨는 웃으면서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샐러드바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빵과 생선만 내어주고, 나머지 샌드위치 속은 본인이 원하는 토핑을 원하는 만큼 넣어서 먹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신나서
접시 가득 샐러드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로는 내게 고래군이 물었다.
"당신 그건 다 뭐야?"
"오빠! 샐러드가 무제한이야."
"응?"
"안에 샐러드바가 있는데, 거기서 원하는 만큼 가져와서 샌드위치랑 같이 먹는 거래."
"그래?"
"응! 나 너무너무 좋아."
샐러드가 무제한이었던 생선 샌드위치에 무료 후식까지! 샌드위치에 들어간 생선이 무슨 생선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우연히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해서 아주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