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파루Faro의 추억 한 조각- 고래군
파루에는 바다 바로 곁으로 높다란 벽이 감싼 오래된 구시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 도시가 점차 확장된 결과가 지금의 파루이다. 나름 신시가지의 중심부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들이 모여 있는데, 우리가 묵었던 파루의 게스트하우스 호스텔리셔스Hostellicious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파루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이제 리스본으로 떠나는 아침. 우리와 같은 방을 사용한 할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더니 일어나서는 끙끙대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잠시 그러고 말았으면 신경을 안 썼을 텐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불편한 표정과 몸짓을 그만두지를 않는다.
결국 그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야 말았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엉덩이를 까 보이며 허리부터 엉덩이까지 넓은 부위에 걸쳐 검붉게 물든 멍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빠른 속도로 쏟아내는 수다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어딘가에 부딪히는 바람에 많이 아프고 힘들다고. 그래도 이제는 좀 나아진 거라고. 그의 이름은 토니Tony이며 아일랜드 사람이고 오늘 더블린으로 돌아가는 날이란다.
그리고는 자기는 켈트어로 글씨를 쓰는 사람이라면서 나와 그녀의 이름을 물어봤다. 그리고 그는 우리 이름을 라이언에어 보딩패스를 출력한 종이에 셀틱 알파벳으로 근사하게 써서 선물해줬다.
그녀는 침대 속에서 나와 토니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우리도 토니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줄 수 있었다. 그녀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어온 북마크와, ‘토니,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한글로 써서 건네준 디자인 엽서를 준비해줬기 때문이다.
#2. 리스본행 주간 열차- 고래군
파루에서 리스본으로, 우리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보통은 버스를 많이들 이용한다고 하는데, 마침 프로모션 티켓으로 반값에 나온 게 있었던 덕분이다.
파루를 출발한 열차는 일단 동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포르티망Portimão을 거쳐 포르투갈 중남부 내륙을 관통하며 리스본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량을 지나고부터 열차가 고원지대로 접어들면서부터 핸드폰에 ‘신호 없음’이 뜨기 시작한다. 덕분에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은 사람이 없다.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도 없다. 대신 열차 안에는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그냥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나도 있다.
그리고 문득 잠든 그녀도 있다. 나도 그녀를 따라 눈을 감아본다.
#3. 그리운 그 풍경- 미니양
이제 리스본까지는 세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기차를 내리면 익숙한 공기와 익숙한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리스본에 가기 위해 참 많은 곳을 거쳐왔다. 단 세 시간인데 시간은 참 더디 흘렀다. 잠을 청해보기도 하고, 간식도 먹고, 고래군과 이야기도 하는 사이 어느덧 도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 예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리스본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풍경이었다.
"오빠 드디어 리스본이야!"
"응"
"나 너무 좋아. 어쩌지?"
"나도 좋아."
"우리 이제 내리자요."
파루에서 출발한 기차는 리스본 오리엔떼(Oriente) 역이 종착역이지만 우리는 세테 리오스(Sete Rios)역에 내리기로 했다. 왜냐면 우리가 지낼 곳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언덕 꼭대기의 그라싸(Graça)인데, 세테 리오스에서 726번 버스를 타면 무거운 짐을 들고 언덕을 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그라싸로 가는 길, 익숙한 풍경, 익숙한 하늘, 익숙한 분위기가 기분을 편안하게 만든다.
726번 버스는 언덕을 올라 꼭대기에 있는 그라싸 동네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무거운 짐도 가볍게 느껴지는 걸음과 함께, 헤매지도 않고 숙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기다린다던 호스트는 보이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고, 메세지를 여러 번 보냈지만 답장조차 오지 않았다.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별 수 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이 지나 나타난 호스트는 우리가 늦어서 다른 손님들을 체크인 시켜주고 왔단다. 자기가 1시간이나 기다렸다나? 분명 5시쯤 세테 리오스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간다고 말을 했는데, 우리가 빨리 도착할 줄 알았나보다.
호스트는 동네에서 여행자에게 아파트를 빌려주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한 터라 인상이 그닥 좋진 않았다. 어차피 우리도 딱히 까다롭지 않아 자주 볼 것 같지 않으니까 괜찮았다. 이런 저런 아파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드디어 우리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짐을 내던져놓고 집 앞 전망대로 달려갔다. 익숙한 멋진 풍경!
그래, 드디어 리스본에 왔다!
#Tip!
작년에 왔을때랑 달라진 것이 없기에 링크로 대신!
https://brunch.co.kr/@minigorae/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