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Nov 05. 2018

리스본, 조금 더 새로워진 도시

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익숙한 이 동네에도 소소한 변화가- 고래군


 리스본에 다시 둥지를 튼 기념으로 어젯밤 우리는 구운 돼지고기에 샐러드를 곁들여 와인 한 병을 함께 비웠다. 굶주린 상태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고기를 샀더니, 두 팩 중 하나는 덩어리 채로 포장된 것이었다. 덕분에 그녀가 짐정리를 마칠 동안 나는 저녁 내내 작은 팬으로 고기를 구워내느라 탈진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른 아침에 잠이 깨어버리고 말았다. 한국 시각과는 아직 8시간의 시차가 있는데, 그녀의 디자인 일 덕분에 한국에서 연락이 오기 때문이다.


 아침을 챙겨 먹고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섰다. 딱히 목적지가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지내던 이곳이 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에 나선 걸음이다. 대체로 그라싸Graça의 풍경은 거의 그대로였다. 소방서 앞 광장에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노란색 28번 트램은 오늘도 관광객들을 가득 채우고 지나간다.



 반면 소소하게 변한 것들도 꽤 있다. 소방서와 그라싸 수녀원 사이 한창 공사 중이던 곳은, 이제 벤치가 있는 광장이 되어 있다. 여기 지명이 왜 그라싸 광장Largo da Graça인가 했더니, 저번에 왔을 때 공사 중이던 이곳 때문이었나 보다. 미니프레쏘Minipreço의 간판색도 밝은 노란색으로 변했고, 갈림길의 커다란 폐건물은 이제 ‘그라싸 레지던스’라는 건물로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랫동네(?)에 내려와 보니 《눈먼 자들의 도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주제 사마라구José Saramago의 문학관이 생겼다. 작년 한창 공사 중이던 곳들은 이제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본질적으로는 아직 그대로라는 것을 말이다.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 대서양 쪽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여전히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보이면 일제히 멈추는 자동차들, 카페(여기서는 에스프레소를 그냥 ‘카페’라고 부른다)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들까지.


문득 난 이렇게 말했다.


“어쩐지 우리 작년에 이어서 계속 여기 있는 것 같지 않아?”






#2. 한 달 살기를 위해 준비할 것들- 고래군


 우리가 함께 사용할 머그컵을 하나 샀다. 로스팅 카페 ‘파브리카 커피(FÁBRICA COFFEE ROASTERS)’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는, 집에서 내려 마실 원두도 한 봉지 샀다. 달콤한 꽃향기와 싱그러운 산미가 있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란다.



 어제 밤에는 지치고 굶주려 있던 까닭에 당장 먹을 것들만 장을 봤다. 대신 오늘은 우유와 5리터 생수, 파스타와 쌀, 샐러드와 함께 먹을 치즈, 토마토 소스와 참치 캔 등 식료품들을 장보기 했다.


 집에 돌아와 물건들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려 그녀와 함께 나눠 마셨다. 이윽고 해가 지는 시각이 다가왔다. 그녀는 어제처럼 오늘도 해가 저무는 풍경 사진을 찍겠다며 집 앞의 전망대로 향한다. 이제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이런 생활들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아직까지는 밤에 부는 바람도 꽤나 포근하게 느껴지는 리스본인데, 정작 그녀는 어제부터 밤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두바이에서 런던, 더블린, 파루를 거쳐 여기까지 오는 길이 꽤나 고되었던 모양이다. 밤이 되자 갑자기 나까지 몸이 으슬으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이러다 감기라도 오면 큰일인데……






#3. 반가워, 리스본! - 미니양


 리스본에서의 첫 날, 익숙하지만 새로운 기분. 고래군은 작년을 이어서 사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단절 후에 새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1년 반 전, 그 때는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 무급휴직으로 리스본에서 살게 되었고 이번에는 일을 놓을 수 없는 프리랜서가 되어 이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정도가 되면 메세지나 전화가 올 수 있기에 그걸 대비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오전 10시는 리스본 시각으로 오전 3시. 3시부터는 언제든 일어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는 꽤나 번거롭고 힘든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1년 반 전과 같이 그저 휴가를 온 것이 아니라, 출장을 겸해서 온 것이기에 더더운 일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올빼미형인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준 시차는 첫 날 리스본에서의 생활을 일찍 시작하게 만들었다. 나 때문에 고래군까지도 강제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만 했고,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는 하루를 꽤나 길게 썼다. 첫 날이니까 무작정 동네를 비롯해서 걸었고, 걸으면서 리스본의 공기와 풍경에 다시금 익숙해졌다. 걷다걷다 만난 파브리카에서 커피와 함께 쉬어가며 첫 날을 마무리했다.



 덕분에 리스본에서의 기억과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반가워, 리스본!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찾은 리스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