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세찬 바람이 우리 장사를 망쳤어- 고래군
오늘은 토요일,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알파마Alfama에는 매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커다란 플리마켓 ‘도둑시장’이 있다. 작년 머물 때 그녀와 나는 가지고 있는 물건 몇 가지를 들고 ‘도둑시장’에 나와서, 예전에 이스탄불에서 샀던 프렌치프레스를 팔았더랬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그녀는 직접 디자인 제작한 엽서와 북마크를 잔뜩 들고 왔다. 집에 몇 개 남아 돌아다니던 탱글티저도 함께 챙겨 왔다. 이번에도 도둑시장에 나서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니, 상 조르쥬 성Castelo de S. Jorge에 걸린 깃발들이 찢어질듯이 펄럭이고 있고, 집 앞 나무들은 몸부림치듯 흔들리고 있다. 세찬 강풍이 알파마 언덕에, 아니 리스본 전체에 불어 닥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저렇게 부는데도 나가자고? 엽서랑 북마크 다 날아가 버릴 텐데?”
“어! 바람이 잠잠해졌다! 우리 나가자!”
어제 몸도 으슬으슬했겠다. 집에서 하루쯤은 쉬고 싶었던 마음도 담아 다소 부정적인 태도로 오늘 장사에 삐딱했던 나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국 그녀는 잠깐 멈춘 바람 사이로 비행기담요와 물건들과 나를 챙겨서는 포라의 상 빈센테 성당Igreja de São Vicente de Fora 뒷편에 펼쳐지는 도둑시장으로 향했다.
#2. 도둑시장 이야기- 미니양
매주 토요일이 되면 그라싸 근처에서는 도둑시장이 열린다. 늘 시장을 구경하기만 하다가 작년에는 직접 뭐라고 팔아보기로 하고 좌판 비슷한 걸 펼쳐서 프렌치프레스 하나를 팔아 3유로를 벌었다. 돈을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뭔가 기뻤다.
'한국에서도 여행지에서처럼 돈을 쓰기만 하면, 여행처럼 즐거울 수 있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난 돈을 써서 여행이 즐거운 것이 아니란 사실을 무의식 중에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여행지에서 돈을 꼭 벌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행이 돈을 써야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는, 혹은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도 느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도 도둑시장에 가서 뭐라도 해보고 싶단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다. 어차피 합법적(?)으로 열리는 플리마켓이라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었으니... 근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분다. 고래군은 바람이 세게부니 오늘은 나가지 말잔다. 왜냐면 우리가 팔고자 했던 건 캔버스 천으로 만든 북마크와 종이엽서였으니 마구 날아갈 거라는 고래군의 이성적인 판단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바람 많이 부니까 나가지 말자."
"싫어! 그래도 나가볼래."
"그냥 그럼 구경만 하고 오자."
"싫어. 팔거야!"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벌어지고 늘 그렇듯 내 고집이 이겼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고래군은 사실 대부분 그걸 받아주는 편이라 어찌보면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다. 주섬주섬 팔 것들을 챙겨서 나가 바닥에 깔아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마구 날리는 북마크와 엽서들. 그 때마다 북마크와 엽서를 사수하려고 우왕좌왕해야 했다. 결국 자리도 한 번 옮기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1시간 만에 좌판을 접었다. 바람 때문에 제대로 된 장사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져갔던 빗 하나를 5유로에 팔았다.
오늘 저녁 와인값은 벌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