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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Nov 08. 2018

역시 일요일에는 굴벤키안

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윈터타임 덕분에 한 시간 더- 고래군


“오빠, 그나저나 우리 이제는 리스본은 지도도 안 보고 돌아다닌다.”

“그러게. 하긴 지도 볼 게 뭐 있어.”

“그나저나 오빠 미술관 또 가는 거 괜찮아요? 더블린에서도 주구장창 미술관에만 갔는데.”

“괜찮아. 나도 전시 보는 거 좋아하니까.”


 그녀와 손을 잡고 오늘도 화창한 리스본 길거리로 나섰다. 굴벤키안 박물관/미술관은 일요일마다 무료로 전시를 공개한다. 덕분에 지난 해 머물 동안 일요일마다 들렀던 것처럼 이번에도 굴벤키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날씨도 화창하겠다. 우리는 가는 길은 함께 걷기로 했다. 그녀나 나나 한 해가 넘는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익숙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그녀는 문득 지도 한 번 보지 않고 길을 찾아가는 그 익숙함이 신기했나보다.


 걷는 길 중간에 만나는 공원에서 잠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작년에는 못 보던 마트가 생겼길래 들러서 감자칩과 캡슐커피, 그리고 내가 마시고 싶다고 졸라서 콜라 한 캔도 샀다.


 그렇게 여유 있게 걸어서 굴벤키안에 도착했는데, 무료관람은 오후 두 시부터란다. 손목시계는 한 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어라? 왜 핸드폰은 열두 시라고 나오지?”

“뭐가? 한 시 아니고? 아! 섬머타임 끝났나? 11월부터 바뀌는 거 아닌가?”

“아! 그랬던 것 같다! 이제 곧 바뀐다고 했던 것 같아.”


 찾아보니 섬머타임에서 윈터타임으로 바뀌는 것은 10월 마지막 일요일 새벽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간밤에 자고 있는 동안, 새벽 세 시에 시계들이 일제히 새벽 두 시로 바뀐 것이었다.


 덕분에 멍하니 한 시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비로소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봄에 머물 때 섬머타임이 시작되면서 시계를 돌렸는데, 일 년을 사이에 두고 이번에는 윈터타임으로 시계를 돌리게 되었다. 뭔가 이래저래 작년에 머물 때의 시간과 공간들이 이어지는 것만 같다.







#2. 말하지 않아도 알아 - 미니양


 일요일이 되었으니 굴벤키안을 가야한다. 처음 굴벤키안 박물관을 가고 그 공간에 반하게 된 이후 고래군을 데리고 가고, 고래군도 굴벤키안에 반하게 되어 우리는 이제 리스본에서 일요일을 맞이할 때마다 그 곳을 찾는다. 평일에 가도 되지만 일요일 오후 2시 이후부터는 무료이니까. 그리고 우린 시간에 그다지 쫓기지 않는 여행자이니까.


 아파트가 있는 산꼭대기 동네 그라싸에서 굴벤키안 박물관까지는 2km 남짓. 둘이 손을 잡고 터덜터덜 걸어내려간다. 가방에 간식도 챙기고 가다가 커피도 한 잔 하고... 그렇게 30분 정도를 걷다보면 굴벤키안을 만나게 된다. 1년 7개월이 지났지만 가는 길은 몸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요일 오후에는 우리처럼 굴벤키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다 우리같은 건지 미술관이 있는 건물 식당은 식당 밖까지 줄이 길다. 그 식당 3가지 음식을 골라도 만원 남짓이니 가성비가 꽤나 좋으니까 줄이 길 수 밖에 없긴 하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구경하다 2시가 되어 무료티켓을 받아 여기저기 전시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상설전시관은 이미 여러 번 봤으니 이번엔 건너뛰고 특별전시가 3개. 메인 갤러리가 있는 건물에서 하는 전시 두 군데를 보고난 후 고래군이 말했다.


"우리 이제 집에 갈까?"

"응? 왜? 오빠 피곤해?"

"아니. 나머지 전시 1개는 다음주를 위해 남겨놓자."

"그래! 전시는 하루에 몰아서 보는 건 힘든 것 같아."


다음주 일요일을 위해 우린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산꼭대기이니까 돌아갈때는 꼭 726번 버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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