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걔네들 만나러 가니? 오디벨라스- 고래군
월요일이다. 그리고 오늘도 맑다. 집주인 조안나의 표현을 빌자면 일요일부터 꽤 추워질 거라 했지만 여전히 아침 기온이 12~ 13℃는 넘기 때문에 딱히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늘진 곳은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햇살이 닿는 곳은 겉옷을 벗어들게 만들 정도로 따뜻하다.
우리는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리스본 북쪽에 있는 오디벨라스Odivelas역을 향해 떠나기 위해서이다. 작년 머물 때 이것저것 사들고 돌아왔던, 스트라다 아울렛Strada Outlet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우리 둘 다 입을 옷을 너무 안 들고 왔다.”
“와서 사 입자고 그랬던 거잖아.”
“오빠 속옷이랑 양말도 있어야 하고. 또 뭐 필요하지? 오빠 바지도 안 들고 왔지? 입고 있는 거랑 집에서 입는 거밖에 없는 거지 지금?”
“당신도 양말 없지 않아? 그나저나 우리 빨래도 한 번 해야 할 텐데…….”
리스본 지하철은 보통 색깔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노란선Linha Amarela은 하투Rato에서 출발해서 스포르팅 리스본의 홈구장 에스타지우 주제 알발라데Estádio José Alvalade가 있는 캄푸 그랑데Campo Grande를 지나 북쪽을 향해 올라가는 노선이다. 그리고 노란선의 반대편 종착역이 바로 우리가 내릴 오디벨라스 역이다.
오디벨라스Odivelas라는 지명地名의 유래에는 흥미로운 설이 있다. 아라곤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Aragon로도 알려진 포르투갈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결혼한 디니스(Rei Dinis de Portugal)라는 왕이 있었는데, 밤이 되면 여자들을 만나러 몰래 이 지역으로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번은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밤에 떠나는 남편의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Ide vê-las senhor...?” (걔네들 만나러 가슈? Going to see them sir?)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그 말 ‘이데 벨라스Ide vê-las’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지금의 ‘오디벨라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으로는 수로水路를 뜻하는 아랍어 ‘odi’와 풍차의 날개나 돛을 가리키는 라틴어 ‘velas’가 결합하여 탄생했다는 설도 있다. 리스본을 포함하는 이베리아 지역을 지배했던 두 세력 아랍과 로마의 언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2.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탕진잼- 고래군
그러고 보면 작년에도 느낀 거지만, 오디벨라스는 그녀와 내가 둥지를 튼 알파마Alfama나 다른 오래된 시가지와 다르게 대부분 현대적인 건물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리스본 시내에 값싼 주택이 부족해지면서, 바로 외곽에 위치한 이곳에 새롭게 주택들이 지어진 모양이다. 여기라면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나 승용차를 통해 얼마든지 리스본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작년과 마찬가지로 볼타스 버스를 타고 스트라다 아울렛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면 작년에는 일찍 지친 나를 3층 맥도날드에 남겨두고, 그녀 혼자서 마저 둘러보고 쇼핑도 하고 했더랬다. 그러고 보면 여성들의 쇼핑 체력은 정말 경이롭기 그지없다. 종아리와 허벅지, 무릎까지 아파올 정도로 걷다 서기를 반복했건만, 정작 그녀는 여전히 보지 못한 것들을 마저 보고 싶은 모양이다.
서로 마음에 드는 것들을 들어서 가격도 살펴보고, 몸에 맞는지 입어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함께 정신없이 둘러보며 쇼핑을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비스타 알레그레Vista Alegre에서 유리컵 두 개를 샀고, 그녀와 나의 옷가지들도 잔뜩 샀다. 특히 그녀가 나의 겨울옷들을 많이 챙겨줬는데, 덕분에 여행비용을 꽤나 지출하게 되어버렸다.
“오빠 옷 또 샀다아!! 아싸 탕진잼!”
“그게 뭐야!!”
“왜? 내가 웃겨? 그 표현이 웃겨?”
생각보다 많이 지출했지만, 마음껏 그리고 싸게 잔뜩 샀으니까 즐겁단다. 그래서 ‘탕진잼’이라는 거다. 덕분에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느라 고생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작년처럼까지는 지치지는 않아서 끝까지 그녀와 함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작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3층 푸드코드에는 값싸면서도 엄청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오빠, 확실히 리스본이 대도시이기는 한가 봐요. 여기 물가가 더 싸다요.”
“런던이나 더블린이랑 비교해보면 포르투갈 물가가 훨씬 싼 건데, 여기는 거기서 한 번 더 싸네.”
“우리 뭐 먹지?”
#3. 점심미션 클리어하기 - 미니양
작년에는 아울렛을 찾아오는 길에 이미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제대로 구경을 못했었다. 한 두군데 점포에 들러 옷가지들을 사가지고 온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샀다;;) 점심도 간단하게 맥도날드에서 먹고, 일찍 지친 고래군을 두고 혼자 쇼핑하러 다녔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번째 찾아가는 길이라 익숙하게 찾아갔고, 고래군도 쇼핑에 같이 동참하면서 나와 함께 지름신을 맞이했다.
몇 군데 쇼핑을 다니다보니 출출해졌다. 잠깐 쉴 겸 앉아서 에스프레소나 한 잔씩 할까 했는데, 사람이 유난히 많이 몰려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오빠 우리 그냥 밥을 먹을까? 어차피 점심 먹을 시간도 됐고."
"그럴까?"
"응. 점심먹고 또 쇼핑하자요."
"그래."
제일 사람이 많았던 식당 앞에 가서 우리도 줄을 섰다. 영어 메뉴판 따위는 없는 그 곳에서 음식사진과 포르투갈어로 된 메뉴판을 보며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고른 메뉴는 믹스고기구이 세트와 치킨 엠빠나다 세트였다. 메뉴판이 몇 개씩 롤링이 되는 터라, 손가락으로 가르켜서 주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줄을 서 있는 내내 우리는 열심히 메뉴이름을 외우기에 바빴다.
드디어 우리의 주문차례. 외운 메뉴명을 말하는데 성공은 했는데, 그 다음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트라서 음료수를 고르라는데 음료수는 생각 안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주문했던 고래군이 고민하는사이(고래군은 선택하는데에 꽤 오랜시간이 걸린다) 내가 옆에서 레드와인과 샹그리아를 달라고 말해버렸다. 다행히 먹을때 필요한 단어들은 외우고 있어서 적당히 알아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주문은 성공했고, 그 다음은 옆에서 음식을 받아가야 하는데, 그냥 주지 않고 물어보는게 참 많다. 감자튀김 줄까? 밥 줄까? 샐러드는 뭐가 좋아? 등등 주는대로 먹는 밥에 익숙한 우리에게 뭘 잔뜩 고르는 것도 생소한데, 포르투갈어로 자꾸 뭘 물어보니 난감했지만 음식들이 쇼케이스에 보이게 진열되어 있어서 손짓과 고개짓으로 겨우 주문할 수 있었다.
모든 주문미션(?)을 당당하게 클리어한 후 우리는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낯선 과정들을 거쳐야 하니, 관광객들이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를 가는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곳에서는 어느정도 프로세스를 다 알고 있으니, 이렇게 낯설어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진땀나는 것 까진 아니었지만 꽤나 신경쓰였던 점심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받아든 순간, 우리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이거 엄청 많아."
"그러게. 양이 꽤 많네."
"근데 이게 전부 다 합해서 15,000원이야."
"한국에서도 이렇게 먹긴 힘들텐데."
"리스본 시내보다도 엄청 싸."
"그래서 그렇게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건가봐."
메뉴판에 있었던 음식사진의 양보다도 많고 맛도 있다. 덕분에 우리는 한참동안 열심히 먹는데만 집중해야만 했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다시 쇼핑모드로!
#Tip!
https://brunch.co.kr/@minigorae/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