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테와 라멘의 혼종성, 라멘테
싱가폴과 일본, 프랑스 3국의 합작 영화 <우리가족: 라멘샵>(원제: Ramen Teh)가 2019년 1월의 마지막 날 한국에서 개봉한다. 싱가폴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에릭 쿠(Eric Khoo Kim Hai, 邱金海)의 작품으로, 처음 선보인 것은 작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였고, 싱가폴에서는 작년 3월에 이미 정식 개봉했다.
영화의 서사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마사토’(사이토 타쿠미斎藤 工 분)는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高崎市)의 라멘집 ‘스에히로’에서 아버지 ‘카즈오’(이하라 츠요시伊原 剛志 분), 삼촌 ‘아키오’(베쇼 테츠야別所 哲也 분)와 함께 일하는 라멘 요리사이다. 어느 날 사이가 서먹한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고, 물품을 정리하던 마사토는 자신이 10살 때 먼서 세상을 떠난 싱가폴인 어머니 ‘메이 량’(자넷 오우Jeanette Aw 분)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일기장에는 어린 시절 싱가폴에서 살던 무렵 찍었던 사진, 어머니와 마사토와 외삼촌이 함께 찍은 낡은 사진도 끼워져 있었다. 마사토는 일기장을 들고 싱가폴로 떠나, 싱가폴에 살며 음식 관련 포스팅을 하는 일본인 블로거 ‘미키’(마츠다 세이코松田 聖子 분)의 도움을 받아 외삼촌 ‘아웨이’(마크 리Mark Lee 분)을 찾기 시작한다. 어렵사리 찾게 된 외삼촌은 싱가폴 전통음식 바쿠테bak kut teh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로 살고 있었다. 마사토는 어머니의 일기장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외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다. 외삼촌을 통해 만난 외할머니(베아트리체 치엔Beatrice Chien 분)는 태평양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잔혹했던 일본인과 결혼한 딸 메이량에 대한 분노를 간직하고 있다. 마사토는 아버지의 음식 ‘라멘’과 어머니의 음식 ‘바쿠텐’을 결합한 음식을 만들어 외할머니에게 선물하고 결국 화해하게 된다. 마사토는 싱가폴에 ‘라멘테’ 식당을 개업하고, 싱가폴사람들과 일본사람들 모두 그 음식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한다.
차별, 화해, 그리고 혼종성의 미래
영화는 전쟁에 대한 전시회를 찾아간 마사토를 통해 잔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 영화적 장치는 외할머니가 왜 일본인을 그토록 혐오하는가에 대한 개연성을 형성하는 장치인 동시에 이 영화 <우리가족: 라멘샵>의 주제인 ‘혼종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지점을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영화 속 증언은 매우 잔혹하다. 차마 여기에 글로 적기 싫다. 직접 영화를 보라. 다만 그 잔혹했던 경험을 가진 세대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는 싱가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에릭 쿠 감독은 결국 우리의 미래가 차별과 배타성보다는 서로에 대한 접근과 관심에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에서 외할머니 역시 광동에서 온 외부인으로서 남편이 죽고 나서 집안의 사업인 ‘바쿠텐’ 음식점을 경영하게 되었으며, ‘광동 여자가 어떻게 싱가폴 음식을 만들겠냐’는 차별 섞인 시선을 이겨내기 위해 혼신을 다했던 인물로 나온다.
주인공 마사토 역시 ‘혼혈’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그 시간과 공간을 다시 지금-여기에 존재하게 만드는 향기와 맛을 가진 음식이 바로 싱가폴 음식 ‘바쿠테’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라멘’ 요리사이다. 그는 혈통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싱가폴과 일본 사이의 ‘혼종’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 결말부에 마사토가 탄생시킨 ‘라멘테’ 역시 그 자체로 ‘혼종성’을 상징한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이 ‘라멘테Ramen Teh’라는 점을 기억하자.
영화에서도 소개되지만, ‘바쿠테bak kut teh 肉骨茶’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폴로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탄생한 음식이다. 한자 이름에서 보듯 고기를 다 떼어낸 갈빗대에 남은 고기를 뼈와 함께 우려낸 ‘돼지갈비’(중국에서 肉은 돼지고기) 탕을 먹은 다음 ‘차’를 마시는 음식이다. 그리고 마사토가 설명하듯 ‘라멘’ 역시 중국 음식이 일본으로 건너가 변형되어 탄생한 음식이다. 바쿠테와 마찬가지로 서민들의 음식으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에릭 쿠 감독은 영화 <우리가족: 라멘샵>, 도대체 번역을 왜 이렇게 했나 싶긴 하지만, 영화 <라멘 테>를 통해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두 나라 서민 음식의 결합’과 그 결합을 통한 ‘화해’,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와 문화의 결합은 문자 그대로 맞붙이기만 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영향을 받아 각자가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융합함으로써, 예전과 비슷한 동시에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로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어느 하나가 ‘중심’이 되고 다른 하나를 ‘주변’으로 보는, 민족주의 또는 제국주의적 관점과는 반대편 극단에 위치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10살까지 싱가폴에 살았다던 마사토는 왜 중국어나 싱가폴영어를 하나도 모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