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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an 28. 2019

책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신예희 지음, 21세기북스, 2019.


 ‘나’는 누구인가. ‘나의 길’은 무엇인가. ‘나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적어도 그 답이 지금-여기의 ‘나’는 아닐 테니, 저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어쨌든 우리는 어쨌거나 방황을 시작해야만 한다. 때로는 도전을, 때로는 일탈을, 그리고 때로는 여행이나 모험과도 같은 방황들을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대다수 젊은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방황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두려운 무엇인가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젊은 그들이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기숙학원 같은 곳에 스스로를 감금하는 모습들을 보면 말이다. 그들은 방황이나 모험을 포기하는 대신,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생존 보장을 꿈꾸는 것처럼도 보인다.



‘프리랜서’의 향기와 ‘디지털 노마드’의 이미지


 이런 현실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풍기는 향기는 꽤나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프리’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자유로움’, 그리고 ‘랜서(Lancer, 기사)’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는 ‘자신의 길을 걷는’, 그리고 여기에 더해 ‘현대적인’ 등의 향기들이 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프리랜서라는 단어에서 ‘디지털 노마드’를 연상하는 이들도 많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이렇지 않을까? 수많은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하나씩 들고, 아마도 외국의 어딘가가 분명할 이국적인 공간에서,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하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이 향기와 이미지들을 섞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디지털 노마드와 프리랜서를 상상해보자. ‘디지털’과 ‘인터넷’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언제든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당신은 ‘디지털 노마드’이다. 당신은 지금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聖地라고도 불리는 치앙마이의 한 카페에 있다. 당신은 방금 런던의 한 회사로부터 새로운 일거리를 제안 받았고, 이를 위해 베이징의 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에게 연락해 협업할 수 있는가를 질문했다. 그 프로그래머는 지금은 바쁘다며, 베를린에 거주한다는 다른 프로그래머를 소개해줬다. 당신은 시차 때문에 일단 이메일만 보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당신은 서울의 어떤 회사로부터 맡게 된, 먼저 작업 중이던 프로젝트를 위해 노트북에 의식을 집중한다. 내일은 예약해둔 쿠킹클래스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오늘 안에 이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사한, 자유롭고 멋진 삶이라면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다. 일이 있을 때 어디서든 일하고, 시간이 날 때면 언제든 여행하며 여유를 즐기는 삶. 어쩐지 그 삶에는 ‘나’라는 존재가 분명히 존재할 것만 같다.




디지털 노마드의 조건



 디지털 노마드의 전제조건은 크게 보자면 두 가지이다. 컴퓨터와 온라인만 있다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직종일 것이 하나이고, 프리랜서일 것이 둘이다. 이 조건들이 충족된 상태에서 정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른다. 바꿔 말하면 디지털 노마드란, 떠돌아다니는 프리랜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는 이와 같은 삶에 대해 다룬 에세이 또는 지침서이다. 저자 신예희는 일러스트와 글쓰기, 번역, 방송 및 강연 등의 일을 하는 20년차 프리랜서로, 프리랜서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과 생각,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백한 문체로 책에 담았다.


 그러고 보면 내 곁에도 저자 신예희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있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함께 연극과 영화를 보다가, 이제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에는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녀’로가 종종 겪던 이야기, 그리고 그녀에게 자주 듣던 이야기들도 담겨 있었다.



책이 어땠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마치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다고 답했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그녀’와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를 읽었다. 책의 문체가 마치 카페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대화하듯 편안하다. 덕분인지 책을 읽는 동안 마치 ‘그녀’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종종 투덜거리듯 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프리랜서는 결국 자영업자’라는 말도 있었다. ‘여행 와서 일하려니, 이건 여행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투덜거림도 있었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도 일어나 연락을 주고받아야 했던 ‘그녀’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에는 ‘그녀’의 이야기 말고도 다른 무엇인가가 더 있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년차 프리랜서인 저자는 이와 같은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지속가능성’이라고 설명하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지속가능한, 태도]에서는 막연하게 상상하는 이미지와는 다른 치열함에 대하여, [지속가능한, 휴식]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직무 형태를 정하는 가운데 휴식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재능]에서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발전해야만 하는 프리랜서들의 불안에 대해, [지속가능한, 돈]에서는 돈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두 부분인 [지속가능한, 자립]과 [지속가능한, 나]를 통해 저자는, 그가 지난 20년 동안 프리랜서로서 살아오며 얻었던 교훈과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여성 프리랜서로서의 경험, 갑을 관계에서 ‘을’로서의 경험 등도 함께 녹아 있다.



그것이 ‘나의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최근 대중매체에서 공무원시험을 위해 기숙학원에 스스로를 감금하는 젊은이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다른 매체에서는 그렇게 몇 년이라는 시간과 많은 돈을 투자하여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오래지 않아 공무원생활을 그만두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매일 쳇바퀴를 뛰는 삶을 꿈꾸는 사람은 드물다. 거기에는 가슴 뛰는 모험이나 설레는 낭만 대신 ‘생존’에 대한 욕구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은 한국의 젊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 나라는 살기 어려운 나라로 느껴지는 듯하다. 전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별다른 기반 없이 독립생활을 시작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조건들이 아무래도 팍팍하기 때문이다.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중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세상도 예전보다 더 살기 좋아졌다고 하던데, 실상 삶의 조건은 수십 년 동안 나아지지는 않은 것도 같다. 수십 년 전 미래를 몽상하던 그 때 젊은 사람들이 만든 수십 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은, 아마도 결코 그들의 몽상과 비슷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도 안 됐고, 사회적 약자들은 여전히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하고 말이다. 뭐 다행스럽게도 이제야 비로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도 같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프리랜서로서의 삶, 나아가 공기 맑은 다른 나라에서의 디지털 노마드로서 사는 삶도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말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겠다. 그 길이 결코 걷기에 쉽고 만만한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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