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들의 허상에 관하여
영화 <우상>은 단편 독립영화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이수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앞선 2월에 먼저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부문에 초청되어 상연되었으며, 2019년 3월 20일 정식으로 개봉했다.
일단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캐스팅이다. 전작인 <한공주>(2013)에 출연했던 천우희도 눈에 띄지만, 그보다 연기력 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 이미 인정을 받고 있는 중견배우 한석규와 설경구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가볍게 보기에는 조금 무겁다. 살인, 권력형 비리, 인종 차별 등 영화의 소재 면에서도 그렇고,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몇 겹으로 구성된다는 플롯의 중층성 면에서도 그렇다.
악과 악 사이의 대립
소재 면에서 본다면 영화 <우상>은 2019년 대한민국에 대한 사회 고발적 영화로 볼 수 있다. 정치권의 부패 문제, 넓은 의미에서 인종차별 문제로도 볼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 자본의 양극화 문제, 장애인에 대한 정책적 문제와 사회적 인식의 문제, 고령화 문제와 인구 감소 문제, 그리고 나아가 젠더에 관한 이슈로도 연결될 수 있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한국 사회에 대해 이수진 감독은 흥미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청렴한 동시에 유능한 한의사 출신의 정치인 ‘구명회’(한석규 분)는 권력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혀가면서 점차 도덕성마저 상실해 간다. 처음에는 아들과 아내의 범죄를 조작하는 데서 시작했던 그의 타락은 종국에 가서는 대중을 향한 거짓과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은 정신지체 장애를 앓는 아들의 성기를 자기 손으로 훼손했다는 독백을 한다. 그리고 ‘최련화’(천우희 분)는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고향에서 살인까지 불사했던 인물로 나타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주연으로 설정된 세 인물 모두 일정부분 악惡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선한 사람은 없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한국에 살고 있던 자와 외국에서 한국으로 온 자, 남성과 여성, 아버지(들)과 어머니 등 사회 문제에 관련된 이들 중 누구도 선한 사람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수진 감독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어느 한 쪽만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악의 평범성’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영화의 이런 요소는, 감독이 영화 <우상>을 통해 우리가 사회적 문제들의 원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현상들에 대해 그저 악한 자들과 또 다른 악한 자들이 대립하는 현상으로 읽어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나쁜 인물들 모두가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의 결말이 사실은 판타지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염세주의적이기도 하다.
소설이 어울리는 영화
영화의 플롯, 즉 감춰져 있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꽤 묵직하다. 하나의 의문에 대한 진실은 새로운 의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연쇄되어 나타나는 플롯 구조 때문이다. 독자 또는 관객들이 차분하게 영화에 집중만 한다면 내용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끝난 이후 독자 또는 관객들의 뇌근육이 뻐근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겹의 이야기가 쌓여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잔인한 장면들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수련의 시체가 발견되는 시퀀스이다. 최련화의 언니 ‘이수련’(김재화 분)는 련화와 아버지가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매 사이이다. 수련은 련화와 함께 한국으로 넘어온 이후 련화와 떨어져 양계장에서 닭을 키우며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련화는 한국에 넘어오기 위해 수련과 함께 죄(살인)를 저질러야만 했다. 현재 수련은 련화와 사이가 틀어지는 과정에서 얼굴에 얻게 된 심각한 화상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이러한 전제들을 앞세운 다음에서야 비로소 수련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이 배치된다. 카메라는 대들보에 목이 매달린 시체의 실루엣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수련의 시체를 발쪽에서 비춰준다. 수련의 머리 부분에서는 그녀가 수없이 목숨을 끊어내었을 닭들이 수없이 쪼아대고 있다.
그리고 닭들이 쪼아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진실은 중식이 경찰서에서 수련 부부의 살인사건의 참고인으로서 시체를 찍은 사진을 모니터로 보는 장면을 통해 나타난다. 참수斬首. 목이 베어진 것이다. 중식은 수련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수련의 집 근처를 배회하던 수상한 남성이 두 개의 목함을 가지고 수련의 집 쪽으로 향하던 것을 목격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하나의 시퀀스가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어 영화 내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잔인한 장면들이 개입한다. 그런데 그 과정은 ‘서술’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잔인한 장면은 ‘묘사’된다. 마치 소설처럼 말이다.
따라서 영화 <우상>을 보고 난 후 독자 또는 관객들은 일종의 장편 소설을 완독한 것과도 같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가볍게 보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상당량의 서브플롯들의 존재가 영화의 개연성에 탄탄하게 힘을 실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상’이라는 ‘허상’
사회 고발적 스타일의 연속
영화 <우상>이 말하는 ‘우상Idol’은 롤랑 바르트의 ‘신화’ 개념,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된 것을 지칭한다. 독자 또는 관객들은 영화에서 다양한 ‘우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수진 감독이 제시한 대표적인 우상은 바로 광화문 광장에 세워져 있는 ‘이순신 동상’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이 영웅화 신격화된 것은, 이순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자 했던 박정희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던 시기였지만 박정희에 의해 ‘민족과 국가를 구한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구성’되었던 것이다. 물론 명분 없는 군사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광화문 광장에 세워 놓은 ‘이순신 동상’은 일본식 칼을 들고 중국식 갑옷을 입고 있다. 심지어 동상의 얼굴은 이순신보다는 조각가 자신의 얼굴에 더 가까운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순신 동상은 실질적인 측면에서 ‘실체 없는 허상’이기도 하다.
영화 <우상>에는 ‘이순신 동상’ 외에도 ‘정직한 정치인’,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 ‘진짜 한국인’ 등의 다양한 우상들도 존재한다. 이는 영화 <우상>의 중심에는 이수진 감독의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과 현실 세태에 대한 냉소와 우려가 함께 담겨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 전작 <한공주>(2013)와 함께 이번 영화 <우상>을 놓고 본다면, 앞으로도 이수진 감독이 사회 고발적인 작품 성향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영화에 대한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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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회’와 ‘유중식’은 각각 한국의 계층적 양극단에 대한 기표이다. 부유한/가난한, 교육받은/교육받지 못한 등의 대립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구명회와 유중식은 그들이 해당하는 세대 전체에 대한 보편성응 획득하는 상보배타적 대립항이다. 그런데 그들이 속한 세대는 이른바 386세대이다. 이는 현재 한국의 50대 연령에 분포하고 있으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구명회의 아버지가 치매 노인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386세대가 그들의 아버지 시대에 대해 망각할 것을 욕망한다는 비판이거나 혹은 이미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저 한국이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치매를 앓는 노인 인구의 증가라는 사회 현상이 스크린에 투영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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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상>은 최근 한국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공간적 배경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영화이다. 덕분에 독자 또는 관객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다는 설정의 집에 방금 매장 진열대에서 들고 온 가구와 집기들이 가득 차 있는 어처구니가 없는 장면은 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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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을 CGV가 맡았다는 점에서 아마 한동안 배급에는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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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구명회의 아내 역할을 맡은 강말금 배우의 연기가 중간에 조금 이상했다. 구명회가 교통사고 피해자가 생존해서 집까지 도착했던 CCTV 녹화를 본 이후 아내와 집에서 다투는 시퀀스에서 대본을 그냥 읽는 듯한 발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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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회의 아들 ‘구요한’(조병규 분)이 마치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장면은 꽤나 섬뜩했다. 그러나 이후 구요한 캐릭터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