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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pr 09. 2019

코임브라, ‘포르투갈’이라는 문화의 중심(1)

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가까운 이동이라도 여유 있게 움직일 것- 고래군


 그러고 보니 이곳에 깃들어 살기 시작한지 벌써 보름도 더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각이 조금씩 늦춰지기 시작한 걸 보니, 이제는 이곳 살이에 조금 적응한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와 나 모두 새벽같이 일어났다. 산타 아폴로니아 역Estação de Santa Apolónia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잡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다섯 시. 어제까지 내린다던 비는 새벽까지도 떨어졌던 모양인지, 문에 달린 창을 열었을 때 바깥쪽에 달린 유리창에 물방울이 흘러내리면서 습기 실린 내음이 아침 바람에 실려 집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녀와 나는 서로 번갈아가며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빵에 치즈를 올려 접시에 담았다. 나는 우유와, 그리고 그녀는 오렌지 주스와 함께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서둘러 접시를 씻어두고 간단히 꾸린 짐을 둘러맨 우리가 집을 나설 때까지도 알파마Alfama 언덕은 여전히 어두운 시각이었다.


“기차 타면 다시 잘 거야. 잠이 너무 부족해.”

“오빠 어제 몇 시에 잤는데?”

“잠이 잘 안 와서 조금 뒤척이다가 잤어. 몇 시였는지 모르겠지만. 바닥 젖어서 미끄럽다. 조심해요.”

“조심할 시간 없어. 너 때문에 기차 놓치면 알아서 해!”


 일찌감치 나섰다고 생각해서 여유를 부렸는데, 기차역까지 가는 시각을 미처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 덕분에 마음이 급해져서는 거의 뛰듯이 급한 걸음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코임브라-B Coimbra-B 역에서 한 번 갈아타서 코임브라 시내까지 가야 한다. 그녀가 며칠 전에 CP(Comboios de Portugal, https://www.cp.pt/)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프로모션 티켓을 발견한 덕분에 싼 가격에 구한 티켓이다. 아마도 포르투Porto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리는 모양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타야 하는 열차의 플랫폼을 찾기 위해 전광판을 올려다 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직 아침 일곱 시도 안 됐는데, 출발 시각이 여덟 시 반이라고 나오는 열차들이 떠 있다. 열차가 출발하는 시각은 십 분 남짓 남은 상황. 그녀의 표정이 당황과 다급함, 그리고 (아마도 나를 향하는 듯한) 분노와 짜증으로 뒤섞여 굳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매표소로 발걸음을 옮겨 어떤 할머니 뒤에 얌전히 줄을 섰다. 시각은 급했지만 그렇다고 새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급할수록 냉정하게. 기다리는 동안 혹시 몰라 전화기 화면에 티켓도 미리 띄워 놓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오자마자 전화기 화면부터 보여주며 ‘플랫폼 알려줘요!’라고 말했다. 직원은 전광판을 보란다. ‘고장났어!’라는 다급한 나의 대답이 뒤를 잇자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확인한 직원이 매표소 바깥으로 나와 우리를 데리고 전광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우리와 함께 올려다 본 직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7번 플랫폼으로 가라’는 말을 건네며,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잠시 그녀가 ‘기차 놓치면 가만 안 둘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플랫폼에 서 있는 열차가 보인다. 출발 시각은 아직 4분 정도 남아 있다. 뛰던 걸음을 늦추고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다소 굳어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열차에 올라탔고, 우리의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는 이런 말을 그녀에게 건넸다.


“열차 타기 전에 카페 콘 레체Café com leite라도 마시려 했는데…….”


 그러나 늑장부리다 늦은 게 누구 때문이냐는 듯 흘겨보는 그녀의 따가운 눈초리만 돌아온다.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금세 잠이 들어 버린 모양이다. 눈을 떴을 때 기차는 어떤 역에 정차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역 이름은 ‘퐁발Pombal’. 리스본에 같은 이름의 광장이 있었는데……. 저게 포르투갈의 어떤 장군 이름인가 그랬지 아마? 이름을 딴 도시도 있네? 시각을 확인해보니 아마도 한 시간 정도 더 가야 하는 모양이다. 곁을 보니 그녀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


 그나저나 날씨가 무척이나 맑다. 짙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있는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몇 번이나 말하는 것 같지만, 포르투갈의 맑은 하늘은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한국도 미세먼지가 없어지면 이런 하늘을 볼 수 있게 될까? 적어도 서울은 거의 불가능할 듯하다. 도로를 굴러다는 차가 지나치게 많은 도시니까. 서울에서는 도로를 걷다 신호에 걸려 정차해있는 차들을 보면 운전자 혼자 타고 어딘가를 향하는 차들이 대부분이다. 어릴 때 가까운 거리를 저렇게 다니는 사람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자동차에 남는 공간을 그렇게 낭비하는 부조리와 모순 때문에 참 답답해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내가 숨 쉬는 공기 때문에 걱정이지만 말이다. 뭐 중국에서 날아오는 스모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온 이후로 지금과 같은 생각을 몇 번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벤칸타Bencanta라는 이름의 기차역을 지나자 이제 코임브라-B 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원래는 이 역이 코임브라 기차역이었는데, 시내에 새로 역이 생기면서 B라는 별칭이 뒤에 붙었다고 한다. 기차역에 내리자 건너편 플랫폼에 사람들이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이 코임브라 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각이 아직 아침 아홉 시도 안 되었다.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나와 그녀는 여행자인데,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잠시 끼어있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무엇인가 묘한 느낌이 드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뭐랄까…… 새삼스레 지금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강렬히 느끼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2. 포르투갈 문화의 중심, 코임브라- 고래군


 나는 이번이 첫 방문이지만, 예전에 그녀는 여행 중에 코임브라에 며칠 머물렀던 적이 있다고 한다. 구시가지의 초입이라며 그녀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포르타젱 광장Largo da Portagem이었다. 작은 광장에는 시내를 등지고 몬데구 강Rio Mondego을 바라보는 동상이 높게 서 있다. ‘여기서부터 시내투어 시작’이라는 그녀의 말에 새삼스레 동상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코임브라 출신이며 19세기 포르투갈의 중요한 정치인 중 한 명인 호아킴 안토니우 데 아귀아르Joaquim António de Aguiar의 동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보다는 그 뒷편으로 보이는, 허기진 우리에게 손짓하는 빵집이 더욱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일단 배부터 간단히 채우고 걸음을 옮기자며 그녀와 함께 들어선 곳의 이름은 브리오사 빵집Pastelaria 


 Briosa Coimbra. 꽤나 유명한 가게인 모양인지 이미 안에는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혼자 와서 식사하시는 할머니도 계시고, 네 명이 모여 앉은 테이블도 있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동유럽 억양의 말로 대화하는 커플이 앉아서 아침식사를 잔뜩 주문해 먹기도 했다.



 두 번째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여행하는 방식처럼 그저 걷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시내를 구경하기도 하고, 문득 우리 앞에 나타난 산티아구 성당Igreja de Santiago 층계에 앉아 잠시 쉬기도 했다. 그리고 언덕길을 거슬러 올라 꼭대기에 있을 코임브라 대학을 향해 등반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로 가는 길이 알마파 언덕 가파른 남동쪽 오르막길만큼이나 가파르다.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하는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더러 내려오거나 혹은 우리를 앞서 올라가기도 한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대학교 부속 건물인 듯 입구에 학교 시설 명칭이 붙은 건물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적은 꽤나 드물다. 아직 학기 중일 텐데 아침 시간대라 사람이 없는 걸까 했는데,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인데 지금 이 길은 정문이 아니라 대학교 뒷문 혹은 쪽문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코임브라는 포르투갈 문화의 중심을 자처하는 도시이다. 포르투갈 표준어의 기준이 코임브라 지역의 언어로 규정될 정도인데, 이는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이기도 한 코임브라 대학교Universidade de Coimbra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기도 한 코임브라 대학교는 전 세계 대학교 중 일곱 번째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대학교이기도 하다. 1290년 리스본에서 처음 설립되었다가 1308년 코임브라로 이전했으며, 14세기 중반 잠시 리스본으로 다시 이전했다가 되돌아오는 등, 긴 역사만큼이나 곡절도 많다.



 원래 포르투갈에는 알렝떼주 쪽에 하나 코임브라에 하나 이렇게 두 개의 대학이 있었는데, 알렝떼주에 있던 대학이 폐쇄되면서 코임브라 대학만 홀로 남게 되고, 이후 긴 세월동안 유지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오랜 기간 동안 포르투갈에서는 ‘대학교Universidade’라는 명칭이 곧 코임브라 대학교를 지칭하는 단어로 통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이 지역 축구팀 이름까지도 ‘아카데미카Académica’이다. 여담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팀에는 ‘황문기’라는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여담으로, 1887년 설립된 축구팀 로고와 같은 해 구성된 대학교 총학생회 로고가 동일하다. 또 여담으로, 축구팀 별명이 오전에 들렀던 빵집 이름과 같은 ‘브리오사Briosa’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대충 ‘힘찬’, ‘용감한’ 내지는 ‘자존심’, ‘자신감’ 정도의 의미인 듯하다.


(다음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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