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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pr 15. 2019

코임브라, ‘포르투갈’이라는 문화의 중심(2)

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3. 코임브라 대학교, 브리오사 - 고래군


 코임브라 대학교는 산꼭대기에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역은, 일명 ‘학교의 안뜰Pátio das Escolas’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마당과 그 주변에 배치된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북동쪽에 위치한 ‘철의 입구Porta Férrea’라는 이름의 출입구를 통해 들어서면, 북쪽에 왕궁으로 사용되었다가 이제는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왕의 궁전Paço Real’ 건물이 있다. 북서쪽에는 ‘대학교탑Torre da Universidade de Coimbra’이라고 부르는 시계탑이 있다.


 마당의 남쪽 중간 즈음에는 동 주앙 3세 왕의 동상Estátua de D. João III이 북쪽을 향해, 그러니까 학생들과 대학교를 향해 지켜보듯 서 있다. 동상의 뒷편 남쪽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몬테구 강과, 강을 끼고 형성된 코임브라 시내의 전경이 탁 트인 전망으로 펼쳐져 있다.


 마당의 서쪽 건물에는 그 유명하고도 유서 깊은 조아니나 도서관과 학위수여장CEDOUA, 성 미구엘 예배당Chapel of São Miguel 등이 있으며, ‘법학부 강당 식당Bar do Auditório FDUC’이라는 이름의 학내 식당이 있다. 그리고 마당의 남서쪽으로는 언덕 아래 동네로 통하는 길이 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산꼭대기까지 다 올라와놓고 나서야 그녀와 내가 뒷편 길을 통해 학교에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관광객들에게는 도서관과 학교 성당, 박물관 등 16세기 이전 학교 시설물들이 모여 있는 핵심 지역이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곳은 도서관이다. 조아니나 도서관Biblioteca Joanina이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1717년에서 1728년 사이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3층 건물이다. 워낙 오래된 건축물이라 이제는 학생들의 도서관으로 이용되지는 않고, 대신 학생들은 다른 현대적인 도서관을 사용하고 있다. 도서관이나 성당 등의 시설들은 입구 쪽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해야만 입장할 수 있으며, 특히 도서관의 경우 시간대 별로 인원을 한정해서 관람객들을 입장시킨다. 안에 있는 책이나 소품 등이 워낙 오래된 유물들이라 그런 모양이다. 참고로 티켓을 살 때 학생증을 보여주면 할인해주는 모양이다.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우스울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오래 된 도서관과 학위수여실까지 둘러보고 있노라니 뭔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 학교에서 학위를 수여받은 그들이 얼마나 기뻤을까를 떠올리며 부럽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 중에는 역사에 이름을 새긴 위인도 있을 테니, 이 학교의 역사가 곧 포르투갈의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발길을 옮기는 곳 말고도 학교 다른 곳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도 했다. 문득 빈 강의실에 들어가 번갈아 앉아보기도 하고, 기둥에 붙어 있는 법학과 학년별 커리큘럼의 빽빽함에 놀라기도 하며 말이다. 문득 내가 좀 더 어린 시절 이곳을 여행했다면, 어쩌면 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꿈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이 근처 어딘가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랬다면 지금 나는 지금보다 좀 더 Brioso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하는 망상도 하게 된다.




“나 배고파.”

“오빠 나 배가 고파.”


문득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마침 그러고 보니 ‘브리오사’ 빵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는, 산꼭대기 대학교까지 ‘브리오사’하게 걸어 올라와, ‘브리오소’하게 여기저기 둘러보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구나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이 단어가 저렇게 변형되는 것이 맞는지 틀린지는 사실 하나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어쨌든 이런 농담을 그녀에게 꺼내면 그녀가 과연 웃을까? 아마 높은 확률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이 인간한테 과연 욕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나 하게 만들겠지 하는 생각을 이어가던 참이기도 했다.


문득 더블린에서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 갔을 때는 식당을 찾지 못하고, 잔디밭 가장자리 벤치에서 그녀와 앉아 샌드위치를 뜯어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기는 했지만, 어쩐지 서글퍼지는 경험이었다.


다행히 아까 예배당 입구 바로 안쪽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 붙어있는 식당 팻말 “Bar do Auditório FDUC” 방향으로부터, 마침 먹음직스러운 향기가 우리를 감싸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히 구운 닭과 감자 향기, 그리고 커피 향이 뒤섞인 것이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지만 그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배가 고프다. 우리는 ‘대학교에 왔으면 학생 식당이지!’ 하는 마음과 함께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4. 정겨운 학생 식당 - 미니양


 다른 건물에 어떤 학생 식당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찾았던 학생 식당은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다. 강의실 하나 정도의 크기에 식사와 커피를 파는 곳이 나눠져 있고, 어떤 이들은 식사를, 어떤 이들은 커피와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우리는 배가 고팠기에 식사를 파는 곳에 무작정 줄을 섰다. 메뉴판은 따로 없어서 앞에 선 사람이 하는 걸 어깨너머 보고 주문을 했다. 먹고 싶은 음식 3가지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면 아주머니가 알아서 한 접시에 담아주시는 그런 시스템. 가격은 뭘 담더라도 4.5유로로 동일했다. 


"나 치킨이랑 브로콜리랑 해물밥 받았어. 오빠는 뭐 받아왔어?"

"난 치킨이랑 밥이랑 감자튀김?"

"밥에 감자튀김까지... 오빠, 배 많이 고팠구나?"

"응"


 배가 고팠던 우리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제 1의 맛집까지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찾아가서 먹을만 했다. 밥을 먹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학생들이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 것일까?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시험 이야기, 연애 이야기, 학교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리라. 그런 그들을 보며 나의 대학시절이 슬며시 떠올랐다. 


"오빠는 대학교 때 뭐하며 지냈어?"

"술 마시고 그랬지, 뭐. 우리 같이 술 마셨잖아!"

"그러긴 했지. 술 안마시면 뭐했어?"

"방학 때 농활 가고, 장구치고 그랬지. 당신은?"

"난 동아리에 올인 했었지. 덕분에 직업도 이 길로 들어섰고... 

 공연 보는거에 빠지기도 했고... 벌써 오래 전 얘기다. 요즘은 다들 취업준비 하느라 바쁘겠지?"

"아무래도?"


 우리는 각자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며, 에스프레소 한 잔까지 입에 털어놓은 후 식당을 나섰다. 잊고 지냈던 우리의 대학시절이 문득 떠올랐던 즐거운 점심시간이었다.








#5. 커다란 숲길 식물원 산책, 몬테구 강 산책, 그리고 다시 리스본 - 고래군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오늘 하루가 참 길다고 느껴질 무렵이었다. 코임브라 대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그제야 새삼 오늘 우리가 걸었던 길이 학교 뒤편에서부터 시작했던 것이라는 사실이 절실히 와 닿는다. 정문 바로 앞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학생들의 행렬이 시작되는 저 아래편에는 버스 정류장에 이제 막 내린 사람들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코임브라에 도착해서 줄곧 걸어 다녔더니 조금 지치기 시작한다. 벌써 대략 20,000걸음 정도 걸었다.


 이제 그만 언덕 아래쪽 시내로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피곤하면 버스 탈래요?’ 하는 그녀의 말처럼 편히 내려갈까도 생각했지만, 그 뒤에 붙은 ‘나는 괜찮은데 오빠가 피곤한 것 같아서’라는 뒷말에 아직 괜찮다며 함께 걷기로 결심한 것이다. 해는 이제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고, 그림자도 조금씩 길어지며 짙어지기 시작했다.


 코임브라 대학교 정문에서 조금 걸어 내려오다 보니 보타니코 정원Jardim Botânico da Universidade de Coimbra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입구가 보였다. 이곳은 1772년에서 1774년 사이에 조성된 코임브라 대학교의 식물원으로, 관련 학과 건물과 연구소 등이 함께 위치해 있기도 한 곳이다. 우리는 다시 산 아래 시내로 향하기 위해 길을 찾다가, 이 정원을 가로질러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식물원 안으로 들어섰다.


 리스본에서 정원Jardim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은 그래도 제법 규모가 큰 일종의 공원 정도의 녹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곳 보타니코 정원은 그 규모가 남달랐다. 금세 관통할 줄 알았던 길이, 숲속으로 난 길인 마냥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13헥타르, 그러니까 13만 제곱미터의 면적을 자랑하는 큰 규모의 정원이었다.


 한적한 숲길을 그녀와 손을 잡고 걸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도 들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노르스름한 빛이 섞인 햇살이 따스하다. 집 근처에 이런 숲이 있다면 종종 산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식물원’이라는 이름의 숲을 빠져나오고, 우리는 크게 돌아가는 길을 통해 산 아래까지 걸어 내려가게 되었다. 


 이제 해는 서쪽으로 저물어가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의 그림자도 점점 더 키가 길어지고 있었다. 언덕 아래 평지에 내려오고 보니 눈앞에 흐르는 몬테구 강을 따라 조성된 마누엘 브라가 공원Parque Manuel Braga이 나타났다. 지도를 보니 코임브라 역에서 한참 남동쪽이다.


 그 공원은 홀로 혹은 함께 산책하거나 쉬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강 쪽으로 난 둑벽에 앉아 입을 맞추는 연인이 있다. 머리를 모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다 갑자기 환호하는 젊은 여성들도 있고, 이곳에도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웅덩이와 진흙을 피해 걸음을 옮기는 모녀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손을 잡고 걷다가 내 손이 뜨거워서 덥다면서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식히는 그녀와, 이제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뒤따르는 나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상인 이 공간의, 우리에게는 여행인 이 공간의 평화로움과 아늑함이 문득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코임브라가 마음에 들어버리고 만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하루 자고 내일 돌아갈 걸 그랬나보다. 어쩌면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며칠 머물게 될지도 모르겠다. 코임브라 대학교 말고도 이 도시에는 가볼 곳이 더 있을 테니 말이다. 사실 어딜 꼭 가지 않더라도,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아늑하고 행복할 것 같은 장소라는 마음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나는 이제 코임브라와 첫 인사를 막 나눈 참에 작별하고 떠나게 되었다. 그나저나 리스본에 돌아가면 한밤중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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