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Jun 26. 2019

드라마 <블랙미러 5-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다중 매체-연합의 출현과 ‘사랑’의 재정의



 영국의 SF 드라마 <블랙미러Black Mirror>의 다섯 번째 시즌이 2019년 6월 5일 공개되었다. <블랙미러> 시리즈는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평론가, 그리고 작가이기도 한 찰리 브루커Charlie Brooker가 기획한 ‘합작물anthology’이다. ‘합작물’은 일정한 주제를 놓고 여러 작가들이 만든 작품을 모아서 완성하는 작품을 의미한다.


 ‘블랙 미러’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검은 거울’은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매체media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를 상징한다. 즉 TV나 모니터, 스마트폰 등의 검은 화면에 사람들이 얼굴을 들이대고 자아를 상실하는 현상이, 마치 마법이 검은 거울에 인간이 홀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5에는 모두 세 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으며, 각각 “스트라이킹 바이퍼스Striking Vipers”, “스미더린Smithereens”, “레이철, 잭, 애슐리 투Rachel, Jack and Ashley Too”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에피소드는 영국의 TV& 영화 감독인 오웬 해리스Owen Harris가 감독을 맡았다.


 # 주인공 대니Danny(앤소니 맥키Anthony Mackie 분)와 친구 칼Karl(야히아 압둘마틴 2세Yahya Abdul-Mateen II 분), 그리고 대니의 아내인 테오Theo(니콜 비헤이어Nicole Beharie 분)는 20대 시절 셰어하우스 룸메이트 사이였다. 이제는 중년이 된 대니와 테오는 아들 테일러와 함께 가정을 꾸려 정착했고, 칼은 새로운 연인과 함께 지낸다.


 대니의 38번째 생일, 칼이 선물을 한다. 그들이 예전에 함께 플레이하던 대전게임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최신 버전.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접속해 직접 캐릭터의 육체에 플레이어의 정신이 들어가는 획기적인 게임으로 부활한 것이다.


 대니는 항상 선택하는 무술가 ‘랜스Lance’(루디 린 Ludi Lin 분)로, 칼 역시 항상 선택하던 ‘록시트Roxette’(폼 클레멘티프Pom Klementieff 분)로 접속한다. 첫 번째 대전 후 둘은 충동적으로 키스를 하고, 혼란을 느끼게 된다.



매체가 지배하는 세상



 매체유물론자라고도 일컬어지는 독일의 매체철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F. Kittler)는 일찍이 각각 분리되어 있던 매체들이 결합한 “매체-연합”에 의지해 인간사회가 조직되어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매체가 인간의 지각-경험의 형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TV와 모니터,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화면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이들 “매체-연합”은 이미 우리들의 감각기관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에피소드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매체-연합”인 게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조직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니와 테오의 관계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결합 체계이다. 이들의 관계는 ‘신뢰’나 ‘(온건한) 애정’ 등의 가치들에 대한 기표에 해당한다. 반면 대니와 칼의 관계는 ‘친구’라는 전통적인 결합 체계가, 가상현실접속장치와 게임이라는 다중 매체-연합에 의해 변질되어 나타난 ‘새로운 무엇’에 해당한다. 현실에서 남성인 칼이 가상 세계에서는 여성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칼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젠더 전환을 수행한 것도 아니다.


 칼의 젠더 전환은 차라리 ‘혼종적인 무엇’으로 나타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리고/또는 남성이며 여성인 새로운 무엇인가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구조를 뒤흔드는 파괴력은 매우 강력하다. 독자 또는 관객들은 새로운 다중 매체-연합에 의해, 대니와 테오의 관계까지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로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대니와 테오의 결혼기념일은, 역설적으로 ‘결혼’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하루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체계의 혼란 속에서 독자 또는 관객들은 기존의 의미체계 내에서 발생하는 ‘사랑’이라는 기표의 의미를 다시 정의 내려야만 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항상 고도는 오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