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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Sep 20. 2019

책 『정적』

당신의 삶에 필요한 ‘고요함’



배철현 지음, 21세기북스, 2019.


1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인문학자 배철현이 책을 출간했다. 그의 여러 저술활동 중에는 인간과 삶 그 자체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담은 시리즈 『심연』(2016), 『수련』(2018)가 있는데, 이번 책 『정적』은 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 정적靜寂은 ‘고요하고 잠잠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항상 부단히 움직이고 흔들리는 상태에 놓여 있다. 아무리 고립된 장소에서 조용하게 움직이지 않고 머무른다 하더라도, 그 인간은 숨을 쉬고 생각을 하며 움직이며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적靜寂’이라는 개념은 사실 인간이 한 번도 완벽하게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를 지시하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 상태, 고요한 평정의 상태를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구도求道를 하는 수행자의 삶처럼 온종일 침잠하는 대신, 잠깐이라도 스스로의 마음을 그 상태를 향해 움직여보자고 권한다. 이를 위해 책은 ‘완벽’이나 ‘간격’, ‘인과’, ‘의무’, ‘경쟁’, ‘회복’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2

 인간이 한 번도 완벽하게 경험해보지 못한 ‘정적’을 언급하는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가장 먼저 ‘완벽, 가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완벽’이라는 단어에는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완벽은 내가 다가가는 만큼 ㅇ너제나 저만치 도망가는 신기루다. - 본문 中, 18쪽.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의 예를 통해, 책 『정적』은 ‘완벽’이란 도달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지향하는 방향’을 의미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 말대로라면 자기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혹은 어떤 일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말하거나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처음부터 결코 완벽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개념이 중요한 것은 ‘완벽’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선 위에 버려진 물고기 대가리나 여객선의 승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의존하는 허접한 갈매기로 생을 마칠 것인가? 조나단은 우리에게 조언한다.


찬란하게 비행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완벽한 비행은 당신이 짧은 일생 동안 시도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 본문 中, 24~ 25쪽.


 불가의 가르침 중 ‘피안彼岸’이 여기에 해당한다. 깨닫고 해탈하여 경계를 넘어가 열반에 이르기 전까지는, ‘저 언덕(彼岸)’은 언제나 항상 ‘여기’가 아닌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3

 ‘완벽’에 이어 책이 꺼낸 이야기는 ‘간격- 사이의 침묵’에 관한 것들이다. 로만 야콥슨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서 말하는 ‘간격’은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관계’와 ‘차이’에 대한 언급은 필연적으로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나와 너 사이를 맺어주는 위대한 감정인 사랑에는 간격이 필요하다. 이 절제된 간격이야말로 내가 너를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표현이다. 간격은 사랑의 완성이다. - 본문 中, 32쪽.


 어떤 대상, 혹은 어떤 사람을 ‘온전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동시에 나는 항상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들을 함께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간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나는 오늘 그 간격을 인정하고 발견하고 싶다. 나는 그 간격을 존중하는가? 아니면 무시하는가? 나는 동료와 부인 혹은 남편과 자식과 형제자매, 그리고 반려견과 자연과의 간격을 인식하고 존경하는가? - 본문 中, 33쪽.


 그러므로 타자에 관해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로 인해 나 또는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거나 침해를 당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간격을 인정하는 사회,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이제야 ‘차이를 인정하기’를 고민하기 시작한 단계에 있다. 혹시라도 나 자신도 간격을 인정하지 못하고 옹졸하게 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4

 한 번에 쭉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 잠깐 꺼내, 목차에서 마음에 닿는 부분을 찾아 잠깐 읽고 한동안 사색에 잠기는 그런 독법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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