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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Nov 10. 2019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김현균 지음, 21세기북스, 2019.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의 저자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김현균 교수이다.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라는 부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은 한국의 독자들과 대중들에게 익숙하지만은 않은 중남미 지역의 문학과 시에 관해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 ‘서어서문학(西語西文學)’은 스페인어권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학문분과의 명칭으로, 스페인뿐만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 문학도 연구 목록에 포함한다.


 저자는 먼저 문학에 관한 일반론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개체성을 보여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동아시아에 대해 질문하는 것처럼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이게 과연 하나의 통일체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적 정체성, 즉 라틴아메리카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담론이 구성한 허구적 신화, 즉 일종의 시뮬라크르는 아닌지 하는 물음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물론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21-22)


 위와 같은 설명은 ‘동아시아’라는 단어가 실제의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역사적 문화적 특징이나 정체성을 담아내는 데 거의 실패하는 표현인 것처럼, ‘라틴아메리카’라는 표현 역시 그러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식의 글쓰기가 보여주는 학자로서의 정체성이다. 지금 이 부분만 놓고 봐도 푸코나 들뢰즈, 바르트나 보드리야르 등 근현대 철학과 문학예술이론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진 독자를 전제한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사전 지식들이 없다 하더라도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는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유럽중심의 문학권력이 생산하는 담론의 관점에서 소설의 경우 ‘서사로의 귀환’과 ‘혼종성’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설명한 이후, 시의 영역이 어떠한가에 대해 함께 살펴볼 것을 제안하고, 이후 네 명의 시인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흐, 니카노르 파라]들에 관해 차례대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치 학부 신입생 시절 수강했던 문학개론 수업의 강의실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비교적 쉬운 설명과 예시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즐거운 강의 같은 이 느낌, 강의실에 앉아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이 책의 처음과 끝을 가로지르는 일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서도 문학의 위기, 혹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이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중이다. 1부 말미에는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비단 (인)문학의 위기 담론에 대한 반박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왜 문학을 읽거나 혹은 써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할 것이다.


 시를 무기로 비뚤어지고 부조리한 세상을 변혁할 수 있을까? 시로 돈을 버는 것도 당장 현실을 바꾸는 것도 아닌데, 왜 시인들은 식은 새벽 방바닥에 엎드려서 시를 쓴다고 끙끙대는 걸까? (49)


 이런 질문에 대해, 저자는 문학학자이자 평론가였던 김현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며 답을 대신한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50)


 지난 10여 년 동안 (인)문학이 위기에 부쳐졌던 이유는 아마도 속물적 자본논리가 지배하던 어두운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기는 지난 정권까지 유지되었던 기업국가의 담론이 패권을 쥐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그 담론은 아직까지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시민성의 발견 또는 회복, 다양성의 추구, 정의에 관한 보편 담론과 공공성에 관한 건전한 논의를 수행하기 시작한다면 그 때 다시 사람들은 (인)문학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과 같은 텍스트들은, 도래할 그 시기를 한 발 앞서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된 것일지도. 마치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라는 부제의 울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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