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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an 15. 2020

연극 <안녕 후쿠시마>

연극의 밀도


 지난해 모처럼 주목받는 창작극이 등장했다. 연극 <안녕 후쿠시마>는 2019서울연극제에서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하면서 2019년 12월 6일부터 15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아르코 소극장)에서 상연되었고, 이어서 12월 19일부터 29일까지는 한양레퍼토리씨어터로 장소를 옮겨 상연을 이어갔다.


 연극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바리스타(김동현, 김결 분)가 운영하는 카페를 무대로 한다. 여기에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각각의 플롯(Plot)을 구성한다.


 첫 번째 플롯은 대기업에 입사한 여자친구를 둔 취준생 민수(김기훈 분)의 이야기이다. 민수는 지금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참사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모두 상실한 일본인 나츠미(강유미 분)이다. 나츠미는 어머니가 좋아했던 배우 배용준, 이른바 욘사마의 흔적을 쫓아 이 카페에 찾아오게 되었다.


 세 번째는 헤비메탈로 활동하고 싶은 메탈리스트 무진(이갑선, 이창민 분)과 형석(최영도, 박석원 분) 형제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는 철저히 비주류의 음악을 추구하는 그들은 생계를 위해 카페에 재료를 납품하는 부모님의 일을 돕고 있다.


 그리고 연극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나타나는 네 번째 플롯이 있다. 독자 또는 관객들은 줄곧 카페 구석의 테이블을 지키고 있던 여자(표혜미 분)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되면, 그동안 보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바리스타와 여자 사이의 이야기가 연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복합 플롯과 연극의 밀도



 연극 <안녕 후쿠시마>는 이렇게 세 가지 플롯이 나머지 하나의 중심플롯을 중심으로 엮인 복합플롯 구조로 되어 있다. 보통 이렇게 여러 개의 플롯이 얽히는 경우 연극 전체가 꽤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일단 각각의 이야기들이 담긴 커피잔을, 바닥에 흘리지 않고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플롯이 교차하며 무대에 나타나는 바람에, 각각의 플롯에 대한 밀도가 모자라는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각각의 플롯이 전달하는 감정의 울림이나 연극성이, 단절로 인해 미처 완성되지 못하고 완결되어버리는 것이다. 취준생 민수의 좌절과 새롭게 얻는 희망, 나츠미의 즐거운 이야기 뒤에 숨겨져 있는 가슴 아픈 기억, 메탈리스트들의 삶이 보여주는 씁쓸한 유머와 같은, <안녕 후쿠시마>가 가지는 특유의 연극성이 온전히 전달되기에는 각각의 플롯에게 필요한 ‘연극의 밀도’가 모자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각각의 플롯을 순차적으로 엮어 제시하는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거나, 적어도 교차되는 지점의 수를 줄이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후쿠시마, 고통과 기억의 연대



 카페의 바리스타와, 이제는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사이에는 추억이 있다. 후쿠시마의 아름다운 자연과 해변, 그리고 그곳을 함께 여행했던 서로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리고 카페를 찾아온 일본인 관광객 나츠미, 그녀에게 있어 후쿠시마는 가족들과 어린 시절에 대한 시간의 기억에 대한 이름이며 현재의 토대가 되는 공간 기억에 대한 이름이다.


 바리스타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 알고 지냈던 일본인 친구는 자신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농구공이 알래스카 해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나츠미는 쓰나미가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나츠미의 남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통째로 사라진 주택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과 영상을 뉴스를 통해 목격하게 된다.


 연극은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과 추억을 상실하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연극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고통은 이렇게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고향의 상실, 꿈의 상실. 그리고 이 모든 상실의 보편성이야말로, 어쩌면 사람들로 하여금 연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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