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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y 24. 2022

연극 <고래>

어떤 ‘고래’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배우이자 극작가, 연출가이기도 한 이해성의 연극 <고래>가 2022년 5월 19일부터 6월 5일까지 연우소극장에서 상연을 시작했다. 2007년 초연되고 이듬해인 2008년과 2009년에는 극단 백수광부의 정기공연작으로 재차 무대에 올라갔던 작품이다. 이후 2014년에 마지막으로 공연된 후, 8년 만에 다시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고래>의 이야기     


 바다.

무대에 조명이 켜지기 전, 그 어둠 속에서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가는 소리와 갈매기 소리의 울림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울림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이곳이 바다임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고래.

막과 막 사이의 암전, 그 어둠 속에서 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면 이 연극의 무대 공간은 마치 고래가 죽고 나서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앙상한 백골처럼도 보인다.     


 어쩌면 극장에서 독자 또는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고래의 사체(死體) 또는 죽음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들었던 그 신비롭고도 서글픈 울음소리는 죽은 고래의 유령(Geist)이 말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연극 <고래>는,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는 없는 어떤 고래의 기억 또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가 듣고 목격했던 무대 위의 사건들이, 그 고래가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때의 이야기이며 죽음을 맞이하는 바로 그 순간의 기억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 또는 이야기, 우리는 그것을 다르게는 ‘역사(Histoire)’라고도 부른다.     


그러고 보면 무대 위의 모든 ‘행위’들이 끝나고 조명이 꺼지고 나면, 빛이 사라진 그 캄캄한 공간에는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빨간 고래 사망확인”이라는 소리만 남게 된다.     


고래의 <이야기>
    

 <고래>가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무대를 통해 말하는 이야기는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북한 잠수정 안에서 일어난 사건과 행위’라는 형태로 무대 위에 나타난다. 낡은 잠수정의 승무원들, 그리고 남한에 파견되었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공작원들, 바다 아래 깊은 곳으로 잠겨 들어간 잠수정의 내부는, 마치 연극이 상연되는 동안 극장 공간이 그런 것처럼, 철저하게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정장(잠수정장, 신현종 분)이나 기관장(전형재 분)이 잠망경으로 조심스럽게 훔쳐보는 바깥세상의 이미지는, 마치 극장 안에서 우리의 현실이 잠시 지워지는 것처럼, 결코 무대 위에 결코 나타나지 않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침묵에 대한 말하기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기이며, 망각된 것에 대한 기억하기이기도 하다. 없음에 대한 공간, 침묵에 대한 소리, 망각된 것에 대한 이야기, 죽어서 사라진 것을 행위와 물질로 무대 위에 나타나게 만드는 그런 것이야말로 어쩌면 연극이 가지는 고유성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대에 나타나는 고래의 이야기/기억은 다층적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문제이다. 또한 그것은 한국전쟁과 휴전 이후 분단된 역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신념을 지키고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기 위한 죽음과, 삶을 향한 순수한 욕망 사이의 대립이기도 하다. 아니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의 배타적 관계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앱솔루트 보드카와 말보로 담배, 콘돔이 가득 든 박스 등의 자본주의적 상품들이 연극의 공간 내부인 바다 속 고래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 연극의 공간 외부에는 “멧돼지” 한 마리가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굶주리며 가지지 못해 고통으로 죽어가고 있는” 인민들과, “먹고 쓰고 남아돌아 버리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체제를 위해 뽑아든 총과 발사된 총알이 있고, 인양선이 끊어져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어린 신병의 흐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연극 <고래>는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사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물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열연하는 배우들의 에너지 소모가 매우 심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잔잔한 일상과 끔찍한 폭력, 고요한 정적과 시끄러운 굉음 사이에 놓인 독자 또는 관객들도 많은 에너지를 준비해야 하는 연극이기도 하다. 혐오와 가르기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2022년 지금 이 순간, 이 연극은 그것들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이데올로기에 우리가 이미 속박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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