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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Oct 08. 2022

어서와, 북유럽 미술은 처음이지?

노르웨이 국립박물관 관람기

 노르웨이 여행의 마지막 날, 오슬로를 떠나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2022년 6월 새로 개관한 the New National Museum of Art,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여행 마지막 날 카페에 앉아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공항으로 향했을거다. '이런 게 저녁 비행의 묘미지.' 하면서 마지막으로 오슬로의 풍경을 즐겼을테지만 이번은 다르게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작품활동에 소홀해서 새로운 환경,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었고, 북유럽의 미술관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 날 방문했던 뭉크미술관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짐이 한가득이었다는 것이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숙소에 맡길 수는 있었지만 숙소와 기차역은 걸어서 15분 이상 떨어져 있었고, 박물관을 들렀다가 다시 숙소에 들러 짐을 찾아 공항으로 향하는 동선이 엄청 길었다. 그래서 짐을 가지고 박물관에 가기로 결정했다. 후에 이 결정이 우리에게 그런 큰 시련을 줄 지 전혀 알지 못했다.


 숙소 체크 아웃 후 좋아했던 가게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캐리어를 끌고 박물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캐리어가 아니라, 가지고 탈 가방이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그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한 나는 낑낑거리며 선택의 기로에 놓여야 했다. '박물관을 포기하고 카페나 갈까?',  '박물관을 꼭 보고 싶은데 그냥 참고 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고래군이 눈치를 채고 말했다.


 "내가 짐을 가지고 카페에서 기다릴테니 혼자 박물관에 다녀와요."


 작품활동에 새로운 영감이 필요하다는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고래군의 배려였다. 소장품들도 많으니 내가 꼭 가봤으면 좋겠다고. 무거운 짐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그 말에 사실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테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그에게도 다양한 영감이 필요할테고 특히나 박물관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이렇게 고생하느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북유럽의 비싼 물가에 돈 쓰기를 두려워한 고래군은 내가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돈을 얼마 쓰더라도 그 편이 훨씬 나았다. 그런데 오슬로는 우리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버스나 트램 정류장을 찾아보고 있던 찰나, 눈 앞에 알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하필이면 그 날이 오슬로에서 큰 규모의 마라톤 행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교통은 통제 되었고, 박물관 앞에 내려주는 트램 역시 운영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인도도 군데군데 막혀있어 짐을 들고 훨씬 많은 거리를 걸어야했던 거다. 정말 이제는 박물관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꽤 걸어간 상태.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겨우 걸어 마라톤 행사장을 지나(박물관 앞이 피니쉬 라인이었다.) 드디어 박물관에 도착! 큰 캐리어도 맡길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우리는 드디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은 다양한 회화부터 역사적인 유물들, 그리고 노르웨이의 디자인까지 생각보다 방대한 소장품들이 있었다. 고래군과 나는 각자의 취향대로 박물관을 보기 시작했다. 회화와 디자인의 관심이 있는 나는 그 쪽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고래군은 유물쪽으로. 작품들을 하나하나 느긋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침에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고 박물관으로 가는 여정이 오래 걸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마라톤 행사 인파를 피해 다시 걸어서 기차역으로 가야했으니... 그래도 그 와중에 박물관에서 많은 작품들과 영감들을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던 시간을 보냈다.


 다른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북유럽만의 색깔이 가득 담긴 작품들이 많았다. 북극의 모습, 노르웨이의 풍경을 비롯한 북유럽의 모습들을 담은 회화 작품들도 꽤 있었다.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들도 멋진 작품들이 많아서 새로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가 그렸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뛰어난 작품이니 전시하겠다는 생각이 멋지게 느껴졌다. 사실 박물관에서 고대유물 같은 것들은 작자미상이 많지만 작자미상의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외에도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뭉크를 비롯해 피카소, 모네, 고갱, 마티스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과 북유럽의 생활들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 현대의 예술작품과 북유럽 디자인들까지 전시하고 있어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는 오슬로의 쇼핑거리나 유명한 레스토랑 보다 더 멋진 장소였다. 우여곡절 끝에 보게 된 전시였는데, 아마 다시 오슬로를 찾는다면 다시 가서 긴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슬로에 간다면 하루 정도 시간을 들여 봐도 좋을 그런 곳이었다. 물론 입장료는 비싸지만(1인 입장료 180크로네) 좋은 작품들도 보고 바다의 풍경도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나도 오슬로에서의 받은 영감들로 작품 활동에 매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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