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고양이와의 짧은 동거 2
3년 만에 다시 찾은 리스본에서 난 고양이와 동거를 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고양이의 일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앞서 했기 때문에 그 이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전편 이야기 참고: https://brunch.co.kr/@minigorae/491)
리스본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자, 어느새 고양이의 일과와 우리의 일과가 서서히 맞춰져 가고 있었다. 우리가 일어날 시간 즈음이 되면 카툼은 우리의 방문을 긁어 우리를 깨우고, 우리가 잘 시간이 되면 알아서 본인의 잠자리인 소파 위로 올라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진 일상들을 지내게 된 것이다. 여전히 쓰다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휴식을 취할 때면 가만히 눈을 맞추거나 옆에 와서 앉아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깐 거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카툼이 소리 없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앉은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나에게 일명 '꾹꾹이'를 시전. 난 너무 놀라 어찌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난생 처음 당해보는 꾹꾹이는 고양이 발톱 때문에 생각보다 아팠다. 그렇지만 이 녀석, 꾹꾹이도 모자라서 내 무릎 위에서 식빵을 구우며 쉬기 시작했다. 정작 난 이런저런 놀라움에 당황하고만 있는데... 꾹꾹이로 인한 발톱의 아픔으로 내가 작게 소리를 내는 바람에 비록 평화로운 시간은 오래 가진 않았지만, 이제는 나를 온전히 친구(물론 고양이는 집사라고 생각했겠지만...)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꾹꾹이 사건 이후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카툼은 이제 더 이상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지 않았고, 우리가 아파트에 머무는 시간 동안에는 늘 우리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테이블에 있으면 옆 의자에서, 우리가 주방에 있으면 주방이 보이는 소파에서, 혹은 주방 바닥에서. 그리고 그런 고양이에게서 나 역시 점점 더 친밀감을 느끼고 정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깐 있다 가는 거라 마음을 주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게 생각한 대로 되나? 이내 작고 귀여운 이 생물에게 마음을 뺏기고 만 것이다. 밖으로 외출해있는 동안에도 늘 아파트에 혼자 있을 고양이 생각이 났다. 덕분에 멀리 가는 일정은 점점 줄어들었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 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하지만 떠나는 날이 예정되어있던 만큼 카툼과 이별하는 날도 눈 앞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리스본을 떠나기 전날 저녁의 일이었다. 분명 침실 문을 닫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문이 덜 닫혔었는지 어느새 카툼이 침실로 들어와 내가 짐 싸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나 불안해 했지만 그녀는 가만히 내 모습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우리가 떠나는 다음 날, 난 아쉬운 마음에 일찍 일어나 고양이 옆을 지키고 앉아서 이번에는 내가 가만히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나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고 내 다리를 할짝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사실 카툼은 만지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여기서 지내는 동안 거의 만지지 않으며 지내고 있었다. 근데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쓰다듬는 손길을 피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곁에 가만히 앉아 내 손길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벅찬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 건가? 이런 기분에 고양이를 키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뭉클해진 것이다. 마치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이 고양이에게도 싫지만은 않았구나 하고 확인 받은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카툼에게 뭔가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동안 내내 출입 금지 구역이었던 침실 문을 열어줬다. 마음껏 뛰놀도록. 그러자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거실과 침실을 오가며 뛰어다니고 냄새도 맡으면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나 보이던지, 진작 침실을 같이 쓸 껄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고양이와의 선물 같은 시간을 가슴에 새기고 이제는 떠날 시간은 오고야 말았다. 눈물까지는 안 났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아파트를 나서기 직전에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하는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현관문을 탈출해버렸다! 카툼은 뒷마당으로만 나가게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은 금지였다. 현관에서 자칫 잘못해서 건물 출입구 밖으로 나가면 바로 앞에 도로가 있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던 녀석이 현관문으로 뛰쳐나와 2층 계단 방향으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문제는 공항으로 가기 위해 우버를 불러 놓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제 몇 분 후에 집 앞으로 우버가 도착하는 상황에서, 그래서 우리도 당장 나가야 하는 이 타이밍에 탈출이라니!! 순간적으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내 정신을 붙들고는 다급하게 계단을 올라가며 소리쳐 이름을 불렀다. 카툼! 카툼! 하고. 그리고 이내 내 목소리를 듣고는 2층 난간에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그녀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이 후다닥 다시 계단을 내려와 집 안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찌나 당황을 했는지, 바로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슬픔이나 아쉬운 마음 따위는 한 번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문을 닫고는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는 길을 따라 다가오는 자동차 한 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이별을 뒤로 하고, 이제는 한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카툼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계속 생각이 난다. 잘 지내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어쩌면 새로 만났을 집사와는 잘 지내고 있는지. 결코 정을 주지 않으려고 내내 노력했는데, 정은 주고받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결코 들릴 리 없는, 카툼이 방문을 긁는 소리가 문득문득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