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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04. 2023

프리랜서라서, 그래서 떠나지 못 하는 이유

'대체 가능한' 작업자와 대체 불가능한 예술가 사이에서

  

 얼마 전에 우리 책을 읽은 어떤 분이 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의 직업은 쉽게 대체 가능한 직업이라 떠나기가 망설여진다."


 그분의 직업은 나와 같은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비록 그분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직업을 가진 나는 그 한 문장으로 그분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게 다 이해가 되었다. 디자이너는 과연 너무나도 쉽게, 간단하게 대체 가능한 직종인 것인가? 그래서 정말 프리랜서들은 여행을 떠나기가 망설여지는 것인가? 나는 나의 직업이 오히려 떠나기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타의에 의해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어쩌면 자의로 일을 놓고 떠나야 하는 프리랜서가 더 큰 결단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 입장에서 여행을 한 번 가자면, 특히 긴 여행을 떠나려고 하면 확실히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먼저 일을 전부 정리하고 갈 것인지 여행을 가서도 일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거기다 여행하는 동안 들어오지 않을 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리 일을 싸 들고 간다고 해도 여행지에서는 아무래도 일상에서처럼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입도 줄어들 여지가 크다.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사는' 여행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일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었는데, 클라이언트가 내가 해외에 체류한다는 사실만으로 의뢰를 취소한 적도 있다.


 프리랜서들에게 가장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앞서 언급한 어떤 분의 말처럼 내가 계속 진행했던 일들을, 여행을 계기로 다른 디자이너가 대신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분은 주변에 디자이너가 많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디자이너의 숫자가 많다 하더라도 각각의 디자이너가 보여주는 작품의 퀄리티나 경력도 천차만별이고, 더구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다고 해서 모두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실제로 디자인을 예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일반인이 다루지 못하는 소프트웨어로 뭔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체 가능하다'는 말은 디자이너를 후자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디자이너도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또한 내가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는 것처럼 공들여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그저 소프트웨어 조작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정말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가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식은 처음 디자인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같다. 최근까지도 ' 정도는 그냥 만들어주면 되지 않아요?', '만들어 놓은 거니 여기저기 써도 되 않아요?', '친하니까 깎아주세요.', '내가 생각한  그냥 컴퓨터로 옮겨주기만 하면 되니 금방 되잖아요.' 따위의 말들을 듣고 있으니, 한국에서는  일이 아직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라 시간이 많으니 아무 때나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무리가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 스스로가 자신을 상업 예술가라고 제대로 인식해주기만 한다면, 나의 작업은 그 누구와도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자신의 디자인 작업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면, 새로운 문화로부터 불현듯 찾아올 영감님을 만나러 한 번쯤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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